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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
이춘수 외 지음, 강맑실 엮음 / 사계절 / 2022년 4월
평점 :


책 옆자리 못지않게 팔순 엄마 옆자리로 돌아왔을 때에도, 작열하는 사막을 겨우 건너고 중년으로 삶의 구간이 확 바뀌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혼자 지내기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비혼인 큰딸의 측은지심이 발동해서 한 결정이지만 30여 년 만에 한집에 살며 복닥거리는 생활은 모녀지간의 뒤엉킨 애증이 수시로 아픈 데를 할퀴고 핥기를 반복하는 징글맞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파는 자영업자도 엄마의 딸 노릇도 쉽진 않았지만 매운 공부가 그렇듯 조금씩 몽돌처럼 매끈해지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1942년생 부모의 세계가 무섭고 답답하고 고루해서 오래전 “난 엄마처럼 안 살아.” 하며 뛰쳐나간 딸이었습니다. 이제는 “엄마처럼만 살면 좋겠네.” 하는 마음이 되어 삶을 겪은 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젊을 때에는 마흔 넘은 사람들을 고루하고 답답하고 피하고 싶은 꼰대들로만 여겼는데 시나브로 그 나이에 도착해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제대로 속은 기분이어서 그저 씁쓸합니다. 더 섬세하게 나의 태도와 시선을, 삶의 방향을 헤아려야 하는 난이도 높은 구간을 지나고 있다고 짐작합니다. “엄마처럼만 살면 좋겠네.” 하는 마음은 죽음을 앞둔 노년의 엄마를 바라보고 사유하는 마음자리 탓이고 나 역시 나아가는 길이어서 그렇습니다. 엄마는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팔십 년 어떵 살아져신고(어떻게 살았을까).” 자문하고 “죽으면 어디로 감신고(갈까).” 질문합니다. 아프고 쑤시는 몸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움직여야 한다고,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자연의 시계에 맞춰 성실합니다. 늘 “마음 크게 먹으라.”고 꽃무늬 손수건 건네주듯 말합니다. 진정 닮고 싶은 사유이고 태도이고 좋은 기운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은 모든 나이 대에 걸쳐 있고 그래서 매번 첫 질문처럼 당도합니다.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허물어져가는 신체와 정신을 자각하며 거듭 새롭게 다른 상상을 해봅니다. 그리고 이런 사유와 성찰이 언제나 책방의 큐레이션과 소모임의 바탕을 이룹니다.
마음은 아직도 명랑해서 동네 골목에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관록 있는 책방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밥벌이가 서툴러서 종종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나이 먹어가는 일은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침침해지고 천천히 뒤처지고 도태되는 과정이라서 그렇습니다만 고민은 언제나 쓸데가 없습니다. 바다에서는 가라앉지 않으려고 부단히 헤엄칠 뿐입니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50대 중년 여성 책방지기 두 명이 책 옆에서, 80대 여성 옆에서, 책을 좋아하는 이들 옆에서 사는 법과 늙는 법을 그리고 이 삶을 곱게 빚는 법을 느리지만 여전하게 배워가는 중입니다. 언제나 책이 알려주고 바다가 가르쳐주고 엄마가 응원해줍니다.
박진창아 _매일 비양도 노을을 새기는, 달리책방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