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사물들 - 고작이란 말을 붙이기엔 너무나
정영민 지음 / 남해의봄날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 정영민 작가의 이 글 속 장면을 계속 생각했다.

운동장 반 바퀴를 겨우 한 걸음씩 내디디는 반복을.


운동장



운동장을 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다섯 바퀴도 돌고 열 바퀴도 돈다. 기억 속 운동장은 마냥 평화롭지만도 않고 아이들이 뛰노는 공간도, 치고받고 싸우는 공간만도 아니다. 사람들이 도는 공간이다. 새벽이건 밤이건 숨차도록 달리고 또 걷는 공간이다. 별일 없어 운동장을 쉬엄쉬엄 걷고 또 가끔은 달리고 하늘 한 번 바라볼 여유를 갖는다.

한 사내가 생각난다. 말을 걸어 본 적은 없으나 마주치면 꾸벅 눈인사 몇 차례 나누었다. 한 손엔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늘 오그라져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쓰러져서 반신불수 상태로 누워 지내다 어느 날 깨어나 다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언제나 오후에 운동장을 돌았다. 내가 한 바퀴 반을 돌 동안 그는 운동장 반 바퀴를 겨우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그때 나는 열아홉에서 스물을 넘어가던 때였다. 엄마 품을 벗어나 세상에서 혼자서 잘 살아가려고 운동장을 서너 바퀴씩 돌면서 처음 알았다. 운동장은 단순히 아이들만의 놀이 공간이 아니라 삶이 다시 재생될 수도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사내도 몰랐을 거다. 어느 날 갑자기 지팡이를 짚지 않고선 한 걸음조차 쉽사리 뗄 수 없을 것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슬렁슬렁 걷다가 또 뛰기도 했던 운동장 한 바퀴가 이다지도 험난한 고행길이 될 줄은 전혀 몰랐을 거다.

몰라서 사내도 나도 대책이 없었다. 그저 운동장을 돌았다. 운동장을 돌다 보면 잊혀진다. 단순히 도는 것이 전부다. 돌며 어떤 반복과 견딤을 배운다. 삶은 견딤과 반복의 끝없는 연속이다. 매번 사람들은 새로운 걸 꿈꾸고 도전하며 열정을 불태운다지만, 모든 도전을 낱낱이 쪼개 보면 남는 말은 견딤과 반복, 그리고 지루함이다. 그 단어들을 빼놓고 이루어 낼 수 있는 삶은 없다.

누구나 거니는 운동장이며, 운동장이 둥글다는 점도 모두 안다. 나는 삶도 둥근 거라 믿는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도 순간순간을 견뎌 또 살아갈 수 있다. 만일 그마저 믿지 말아야 한다면 나는 이미 몇 번이고 털썩털썩 주저앉아 버렸을 테다. 내 삶에서 견딤을 제하면 남는 말들이 없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산산이 흩어져버릴 말들이지 내게 남은 말은 아니다. 내가 여전히 삶을 놓치지 않고 사는 것 역시 어느 한순간을 견디고 버틴 까닭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운동장을 돌고 운동장을 돌면서 스스로를 견딘다.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건 타자가 아니라 바로 나다. 과장하면 나의 모든 부분을 견딜 수 없다. 나라는 이유에서 완벽해야 하지만 나는 본디 불완전하다. 불완전하기에 예쁜 척을 하고 아는 척을 하고 가진 척을 하고 견딘 척도 한다. 척하는 걸 나는 또 견딘다.

삶은 특별하지 않으니까. 그저 운동장을 돌고 또 돌다 보면 단련되어 어느 순간 지치지 않고도 거뜬히 운동장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니까. 견딜 수 없는 것들마저도 다 견디는 거다. 아마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씩 발을 내딛던 사내도 그랬을 거다. 한 걸음씩 걸어 운동장 백 바퀴를 돌고 나면, 조금은 빨라진 걸음으로 운동장을 돌 걸 믿어 제 느려 터진 발걸음을 견디며 그때의 운동장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별일 없이 운동장을 도는 사람들 사이에 누군가는 간절해서 운동장을 돈다. 운동장이라도 돌지 않으면 어디라도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릴 것 같으니까 운동장만 도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한 번 삶에서 내몰린 사람들에게 운동장을 돈다는 것은 견뎌 내는 일. 견디고 버티다 보면 삶이 재생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