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107호 - 2021.여름
문학동네 편집부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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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꽤나 많은 연락을 받았다. 프로필 사진의 공로가 컸다. 신입생 시절 나는 공부보다 상체 운동에 열중했다. 이듬해 잡힌 가슴 절제 수술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의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처진 물방울 모양은 어느새 상하좌우 탄탄한 대흉근을 빼닮은 모습으로 거듭났다. 앱에는 젖꼭지 위까지만 찍어 올렸다. 우람한 ‘슴근’의 인기를 절감했다. 어린 아시안의 육즙을 노리는 또래들이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나방처럼 몰려들었다. 통계상 ‘탑’으로 더 자주 읽히자 자신감은 롤러코스터처럼 급부상했다. 이내 고꾸라질 걸 뻔히 알면서도.

몇 번 상냥하게 메시지를 교환한 끝에 정체를 밝혔다. 지금이야 트랜스젠더 남자가 게이 사회의 생태교란종쯤으로 인식되지만 그때는 멸종위기라고 할 만큼 드물었다. 수적 열세는 나를 위축시켰다. 자지가 있냐는 추궁에 “안 알랴줌!”이라고 되받아칠 패기가 없었다. 상대방이 혐오 발언을 던지고 퇴장하면 나는 익숙한 현실에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

2020년의 나는 내면의 경고음에 신경 끄기로 했다. 대신 김소월처럼 쿨해져보기로 했다. 내 보지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그래, 보지에 넣을 배짱이 없는 게이는 똥구멍만 있는 남자에게 보내주는 것이 순리다. (-)


선글라스를 뚫고 나오는 J의 욕망은 집에 돌아온 뒤에도 나를 맴돌았다. 내가 트랜스젠더인 걸 아는 데이트 상대에게서 그렇게나 노골적으로 접촉을 갈구하는 시선을 받아본 건…… 어라, 처음이었다. (-)

문득 스스로가 남자답게 느껴졌다. 성별 이분법이 말하는 전통적인 남자다움이 아니라, 게이 무리 속에서 욕망하고 욕망받는 남성으로서 ‘동지’의 타이틀을 드디어 얻어냈다는 의미에서 그랬다. 나는 그 고추밭 울타리 안에서 존재 자체로 환영받으며 연대할 수 있기를 늘 희망했다. 희망만 했다. (-) 진짜 남자도 진짜 게이도 못 될 거라는 트랜스젠더 동성애자의 이중고를 십자가처럼 짊어지고 살았다. (-)

(-) J가 내게 보인 성적 관심을 도저히 소화할 수가 없어서 도로 게워내고 싶었다. 나도 언젠가는 예쁨받을 가망이 있었던 건가. (-)


J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내 몸에 매력을 느꼈다. 그게 살짝 무례하다고까지 느껴졌다. 가령 그가 주물럭댄 나의 엉덩이는 트랜지션 초기 시절 남성으로 패싱하는 데 방해가 되는 제1의 걸림돌이었다. 얇은 허리와 함께 모래시계 형상을 만들었던 까닭이다. 과거 나의 젠더 자의식을 돋우던 악의 근원이 오늘 누군가의 눈에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 어쩌면 내 몸이 매력 있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건 신세계였다. (-)


호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나의 초등학생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기억 속에 없다. 사실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아빠보다 늘 덜 옳았다는 게 중요했다. 그의 명령으로 아파트 뒷산에 가서 회초리로 쓰일 재료를 구해와야 했다. 어쭙잖은 후보를 가져갔다간 어떤 벌이 더해질지 몰랐다. 인삼 캐듯이 적당히 길고 적당히 얇은 걸 찾아 집으로 모셔왔다. 꼴깍 침을 삼키며 아빠가 연필 칼로 나뭇가지를 깎아내는 걸 지켜보았다. 찬 바닥에 꿇어앉으니 하반신이 저려왔다. 공예를 마친 목수가 나를 일으켜세우며 말했다. “감각이 없는 게 좋을 거야, 이걸로 맞으려면.”


(-)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J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이건 예순 살의 몸이 아니었다. 전봇대처럼 딱딱한 복근이 신기했다. 경이로웠다. 웹 서핑을 하다보면 ‘은퇴 후 항암 치료로 시작한 트레이닝으로 전국 보디빌더 대회에서 우승한 XXX씨’ 같은 기사를 접할 수 있지만, 그런 고행의 값진 결과를 직접 더듬는 건 또다른 차원의 감동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예순 살의 몸이 아니었다. 언젠가 진짜 나이를 터놓을 만큼 나와 신뢰가 돈독해지기를 바라며 배꼽 밑의 살을 주시했다. 수상하리만치 자글거렸다.

“흉터야.” J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는 십 년 전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 나는 대꾸 없이 반바지와 속옷을 끌어내렸다. 독백의 주제는 병력에서 후유증으로 바뀌었다. “한동안은 처방전을 챙겨 먹으면 어려움 없이 사정했는데, 요즘은 기둥에 바늘을 꽂지 않고선 세우기도 쉽지 않아.” J는 혼잣말 끝에 침묵했다. 회초리 이야기를 마친 누구처럼.

나는 개의치 않았다. 멋쩍어하는 J를 감상하는 게 즐겁다못해 흐뭇했다. 나처럼 성호르몬 없이는 생체항상성 자체가 위태로운 사람 앞에서 발기력 저하로 남성성의 규범에 뒤처진다며 두 볼을 붉히는 게 귀여웠다. (-)


(-) 그는 자기 차례라며 내 속옷을 벗기려 들었다. 나만 애무해주는 편이 나았다. 게이에게 마지못해 애무받기는 죽어도 싫었다. 


대뜸 그가 번들거리는 입술로 말했다. 클리토리스를 마주하는 게 십몇 년 만이라며 흥분했다. 나는 단칼에 교정해줬다. “아뇨, 당신은 내 좆을 빠는 거예요.” (-)

그래서일까,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자극적인 오랄도 부담스러운 칭송도 아니었다. 우리는 침대에서 뒹굴었다. 엎치락뒤치락 땀을 빼며 치유받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 레슬링은 J보다는 나라는 남자와 어울리는 과정이었다. 나는 확신했다. 내가 여자였다면 이처럼 다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내가 이렇게 ‘함부로’ 대해졌다면 기분 나빠지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

나는 이 같은 공평한 참여를 얼마나 기다렸던 걸까. 침대라는 사각 링 위에서 펼쳐진 우리의 몸싸움은 남자 대 남자의 정면승부보다 게이 대 게이의 스포츠맨십에 가까웠다. (-)


(-) 나는 내게 적합한 섹스의 모양새를 실전으로 부딪쳐가며 구축하기보다는 성적 모험 자체를 등한시해왔다. 객관적 현실과 피해자 의식을 가로지르는 종이 한 장의 경계선에 베이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나의 성은 젠더이건 섹슈얼리티건 괄시받은 기억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소외받는 몸이니 혹여나 섹스하게 된다면 그건 나도 함께 참여하는 활동이 아니라 남이 나에게 하도록 다만 허락하는 활동일 거라 간주했다. 침대 위에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지 궁리하는 건 사치를 넘어서 금기였다. 양보는 배려가 아닌 의무였다. 따라서 오르가슴의 책임 전가는 남성성의 피라미드 하단에 위치한 꼬꼬마 동양인 트랜스젠더 게이가 가지는 유일한 옵션이라고 되뇌었다. (-)

여타 게이들과 달리 나에게 삽입받는 일은 선호의 문제가 아닌 숙명적 처지다. 그렇게 스스로 세뇌한 까닭은 그 외의 사고실험이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찌꺼기 같은 몸을 갖고 놀아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지, 감히 제 판타지를 실현시키겠다고 나선다는 건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

트랜스젠더, 보지, 바텀….. 나를 마땅히 규정하도록 이런 개념들에 힘을 실어주느라 정작 나의 실재는 간과했다. 나의 소수자성에 매몰된 나머지 미처 구경해보지도 못한 내 욕구의 개성마저 편의적으로 몰살시킬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있는 구멍을 내어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질 거야, 스스로에게 둘러댔다. 이런 속 편한 인과관계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그에 정비례하는 양의 성적 능력을 애꿎은 좆에 투영해야 했다. 내게 있어야 하지만 없는 무언가로 회자되며 나아가 나의 젠더를 부족不足의 사태로 정의하는 존재이니 막강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좆이 각별한 감흥의 출처일 거라는 나의 기대감은 가히 우주처럼 팽창했다. 

(-) 정녕 성기가 섹스에서 가장 쓸모 있는 도구가 아니라면, 정녕 삽입이 섹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나라는 굼벵이에게도 그간의 직무유기에 대한 죄를 물어야 했다. 진심으로 반성했다면, 트랜지션을 통해 젠더를 가꿨던 것처럼 이제는 시행착오를 통해 섹슈얼리티를 다듬어갈 순서였다. (-)


나는 겁쟁이다. 괜찮은 척, 멀쩡한 척하라고 나의 감정을 타이르는 데 익숙하다. 그래도 두려운 건 두려웠다. 나의 젠더가 쓸데없이 까다롭다 비난받았던 것처럼 나의 섹슈얼리티도 손이 많이 간다며 내쳐질까 두려웠다. J에게 빚진 것도 아닌데 삽입 없이 만나자고 하면 연락을 두절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


(-) 내가 받은 상처는 책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파는 서점은 없었다.


류진오_나는 홧김에 개집을 샀고 할아버지랑 섹스했다_문학동네 2021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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