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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ㅣ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뭐라도 써야 한다고 제야는 생각했다.
오늘 겨우 한 단어를 쓰게 되더라도 내일 다른 단어를 얹고, 또 단어를 쌓아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왜냐면, 다들 지우려고 하니까. (-) 평소 일기를 쓸 때 제야는 단어의 한계를 답답해했다. 단어들은 너무 납작하고 단순해서 진짜 감정의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바람이나 햇살, 풍경과 냄새를 표현할 때도 궁핍했다. 입체를 평면에 구겨 넣는 것만 같았다.
지금 제야는 단어의 한계에 안도한다. 자꾸자꾸 커지는 그날의 기억을 얄팍하고 단순한 단어에 가둘 수 있을 테니까.
(-)
'끔찍한'까지 쓰고, '끔찍하다'가 무슨 뜻이더라 생각했다. 무슨 뜻이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끔찍한'이라는 글자를 백배 천배 부풀리고 진하게 두껍게, 종이가 찢어질 만큼 칠해도 그때의 감정을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