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성소수자인권포럼 "안에 싸도 돼요?" 발제
2019년 1월 26일 서울대학교 101동 220호
이렇게 많은 분들이 홀을 메워주셔서 아주 뿌듯하고 이렇게 노콘 항문섹스에 다들 관심이 많으시구나.. 제가 여기에 박탄 사람도 있고 박탈 사람도 있고 앞으로 저와 성접촉의 가능성이 있으신 분들이 있는데 아, 나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는 우리가 섹스하는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고 다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박탄 사람이 여러분과 박탄다면 그것은 저와 박탄 것과 비슷하겠죠? 그러니까 난 일대일 관계를 했어, 라고 생각하더라도 그 사람이 찜방에서 돌림빵을 당하는 그런 바텀과 노콘 항문섹스를 했다면 여러분은 동일한 수준의 위험을 공유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나의 행동만, 혹은 너의 행동만 통제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여러 가지 취약함에 노출된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이 발제를 하기 전에 이제 만나서 회의를 했었을 때 성에 대한 낙인을 좀 얘기해보자 그랬는데 전 별로 낙인이 없었어요. 그냥 항문섹스가 좋았고 항문섹스를 좋아하고 잘하고 그러다보니까, 네 잘합니다. 그래서 저는 별로 여기에 대해 할말이 없다, 그런데 하나 이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제가 계속 에이즈에 관심을 갖고 한 몇 년 동안 지켜봐온 요즘 오늘날 변화한 환경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전엔 에이즈에 걸리면 치료할 수 없다, 예방약이 없다 그랬는데 지금은 예방약이 등장했고 한국에서도 작년 2월에 예방 목적으로 처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고 현재는 고위험군, 게이들을 대상으로 무상 프로그램도 1년짜리 지원이 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인 관심이 좀 부족해요. 게이커뮤니티들도 이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거다, 하는 관심과 목소리가 있어야 이걸 정책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접근성을 높여달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현재는 이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거나 쉬쉬하거나 어디에 검색하거나 어디에 물어봐야 하지? 약간 이런 상황이라고 생각하고요. 오늘 발제문에는 그렇게 자세하게 정보를 친절하게 써놓진 않았어요. 그런데 앞에서 타리님도 말씀하셨지만 이반시티에 들어오시면 배너에 “안에 싸도 돼요?”라는 팝업창이 뜰 텐데요. 거길 눌러보시면 오늘 들으셨던 내용들 중에 잘 모르겠거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그걸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고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페이스북이라든지 이메일이라든지 여러 가지 경로로 질문을 남겨주시면 확인하고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저는 되게 제가 사는 것을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 했었어요. 그러니까 지금처럼 제가 위험에서 저를 관리할 수 없을 때 제가 위험에 저를 빠뜨리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걸 계속 하고 있었고 제가 이걸 하는 행동을 멈출 수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어요. 그거는 저의 우울감과 굉장히 연관이 있었고.. 그거는 되게 간단한 건데 설거지 같은 게 쌓여 있으면 저 설거지를 해야 된다는 건 아는데 설거지를 할 순 없는 그런 기분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건강하게 살려면 폭식하지 말고 밤에 일찍 자고 잠 충분히 자고 야채 많이 먹고 이런 건 알고 있지만 우리가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폭식을 하고 뭔가 나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게 어디서 오는 걸까. 만약에 이 위험을 열 가지 위험 중에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면 방법은 뭘까.. 근데 저는 이제 그중에 하나로 게이들이 사회에서 받고 있는 차별이나 이런 것을 일시에 없앨 순 없지만 그런 것이 개인에게 위험 행동으로 나타날 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한 가지 방편으로 지금 트루바다나 프렙이 등장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저는 사회에서 이제 변화시킬 수 있는 조건과 변화시킬 수 없는 조건을 생각해보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쉽죠. 노콘 항문섹스를 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야? 콘돔 쓰면 되는 거 아니야? 근데 그거는 바꿀 수 없어요. 노콘 섹스를 하는 사람은 프렙이 있든 없든 하고요. 뭔가 내가 자해를 하고 싶어, 그러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기본값이고 그 사람의 그 행동에서 어떻게 하면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그래서 ‘어떻게’, 노콘 항문섹스를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주제로 이 글을 써봤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하 발제문 낭독)
노콘 항문섹스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PL과 MSM의 새로운 관계맺기
버섯
0.
2014년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에 발표했던 「외로움의 조건」이라는 글은 도입부의 경험만을 잘라내 “[혐]에이즈에 걸린 게이가 쓴 수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 오늘 발표하는 이 글 역시 마찬가지의 오해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그것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어째서 누군가가 ‘문란한’ 섹스를 했다고 하면 마땅히 에이즈에 걸렸으리라, 걸리리라 생각하는 걸까?
나는 2018년 11월부터 프렙 시범사업에 참여해 에이즈 치료제이자 예방약으로 사용되는 트루바다를 복용하고 있다. 프렙 시범사업은 HIV 항원항체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야만 참여할 수 있다. 즉, 나는 ‘아직’ 감염인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은 두 가지다. 첫째. 사람들이 가지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합리적이려면 나는 이미 감염인이어야 할 것 같은데, 왜 아닐까. 둘째, 누군가를 HIV감염인이라 여겨 그를 혐오하고 두려워했을 때, 그가 감염인이 아니라면 사람들의 분노와 혐오는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다만 이번 글의 독자는 MSM으로 한정하려 한다. 게이가 아닌 MSM이라는 용어를 택한 이유는, 성정체성과 상관없이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MSM 중에서도 노콘섹스를 좋아하는 남성, 그리고 노콘섹스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MSM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우리가 타인과 성접촉을 하는 한, 어디에서든 서로 교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나는 노콘섹스를 좋아하고 일대일 관계가 아닌 익명의 사람들과 가지는 그룹섹스, 바텀 한 명에 여러 명의 탑이 섹스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그러한 행동을 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건강 상태나 행위에 대해 굳이 묻거나 따지지 않는 관계가 편하다. 나는 내 행동이 나에게 성병 감염의 가능성, 나아가 다른 문제를 안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은 그 행위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거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PL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건강하다고 과신하고 있었을까? 그보다는 굳이 HIV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그들의 상태에 보다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2.
내가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본격적으로 게이들을 만난 것은 전역한 이후였다. 하지만 커뮤니티로 진입하진 못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엔 돈이 들었고 나는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만원으로 주말을 보내야 할 때,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상대가 부담하고 싶어할 만큼 잘생기거나 잘나지 않은 사람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몇 안 됐다.
ㄱ. 술벙개에 가서 1차 비용을 내고 집에 온다.
ㄴ. 원샷바에 가서 혼자 칵테일 한잔을 마신다.
ㄷ. DVD방 입장료 오천원을 내고 들어가 실컷 섹스한 뒤 나와서 남은 오천원으로 햄버거 세트를 사먹는다.
ㄹ. 밤에 휴게텔 입장료 만원을 내고 들어가 다음날 오전까지 실컷 섹스한다.
ㅁ. 비용이 들지 않는 크루징 장소를 찾아가 모르는 사람들이랑 섹스한다.
ㅂ. 벙개를 잡아서 커피만 마시고 헤어진다.
아마 나에게 다음 단계를 부담할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만나는 사람들도, 만남의 형식도 많이 달랐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최소 비용으로 만족을 추구하려면 휴게텔과 DVD방에 가는 것이 최선이었고 나는 그걸 좋아했다.
3.
이미 구축되어 있는 구성원 간의 친밀함,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외모 자원에 따른 힘의 차이는 나로 하여금 내가 어울리는 곳은 게이 커뮤니티가 아니라 상대방이 누군지 신경쓰지도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익명의 섹스 공간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하룻밤에도 열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과 노콘 섹스를 하는 내 삶은 커뮤니티 내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계몽하거나 바꿔야 할 행동양식으로 취급되었다. 간혹 DVD방이나 휴게텔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해도 다른 사람들이 둘이 어떻게 만났느냐고 묻는다면 ‘어플’로 만났다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고 휴게텔에 다니는 것을 비밀로 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 섹스하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존재하지 않는 이들처럼 여겨지고 있었고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보다 정확히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보다 섹시하고, 식이 되는 사람이 섹스 이야기를 해야 재미있고 매력적이지 그런 이야기를 식이 안 되고, 자고 싶지 않은 게이가 한다면 그는 그 자체로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4.
나는 콘돔을 언제부터 안 썼을까? 나는 거의 탑을 했었는데(바텀을 할 때에도) 콘돔을 사용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콘돔 없이 바텀 안에 싸는 기분이 더 좋았고, 내 항문에서 새어나와 흘러내리는 정액의 느낌이 좋았다. 굳이 콘돔을 쓴다면 바텀이 센조이를 하지 않았을 때 말고는 없었다. 콘돔을 요구하는 상대와는 애널을 거의 하지 않았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 상대와 주로 애널을 했다. 이때 노콘을 요구하거나 허락하는 사람과 콘돔을 꼭 착용해야만 삽입을 허락하는 사람은 나에게 차이가 있었다. 내 상대는 주로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연상 바텀들이었는데 그들은 내가 콘돔을 사용할까 염려하는 듯 나보다 서둘러 노콘으로 자지를 삽입했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노콘으로 섹스를 했기 때문에 성병도 자주 걸렸다. 성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았다.
나는 노콘 섹스를 너무나 좋아했고 지난 십여 년간 게이들과 섹스를 하면서 나만큼이나 노콘을 좋아하는 게이들이 적어도 한국에는 삼백만 명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없는 사람 취급당한다.) 콘돔 없이 섹스하면서는 똥이 묻을까봐 염려했지 에이즈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에이즈의 위험에 대해 무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십대 시절 나 자신을 이해하려 도서관에서 뒤적였던 동성애자들의 이야기에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빠지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여러 이유로(아마도 사회 분위기가 지닌 동성 항문성교에 대한 높은 수준의 낙인에서 받은 영향을 포함해서) 나 자신에 대한 낮은 자존감, 불안정한 감정 상태는 HIV 감염 가능성보다 더 우선하는 충동이 있다고 믿게 했다.
노콘을 허락하는 사람은 최소한 콘돔을 고집하는 사람보다 나의 감정 상태와 더 가깝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콘돔을 고집하며 자신에게 발생할 여러 가능성들을 차단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사람은 미래를 계획하거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고 내가 만난 노콘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런 것보다는 ‘살 만큼 살아서’ 별로 겁나는 것이 없거나 상관없다고 여기는 쪽이었다. 그들이 감염인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최소한 찜방에서 만났던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콘돔을 착용할 것을 나에게 요구했다. 나는 감염되어도 상관없어요, 하는 태도를 취했지만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그들은 자신이 감염될까봐 염려한 것이 아니고 자신을 통해 내가 감염될까봐 우려했다는 점이었다. 그제야 나는 콘돔 착용을 요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사람도 있지만 그와 달리 이미 자신이 감염인이기에 콘돔 착용을 요구했다는 것도 짐작하게 되었다.
5.
이번 시간에 U=U, PrEP을 비롯해 HIV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야 할까? 자신이 HIV에 대해 무지하다는 이유로 감염인을 모욕하고 혐오를 선동하는 일부 사람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감염인이 누구인지 찾아내고 그들을 욕하고 배척하면 안전해지리라는 착각을 하나본데 그렇게 극성스럽게 감염인을 차별하고 낙인찍을수록 감염 사실을 서로에게 숨기게 되어 결국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 된다. 더 나아가 감염인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를 마땅하다 여기게 하여 그들이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하고, 직장에서 해고당해도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없게 만든다. 누군가를 탈락시키고 사회의 안전망 밖으로 밀어내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평생 성접촉 없이 살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일대일 관계든 아니든 누구나 감염 가능성에 노출된다. 특히나 일대일 관계는 문란하지 않다, 일대일 벙개는 괜찮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은 일대일이었어도 상대방도 그랬을까? 상대방이 이미 수십 차례 하고 다녔다면 자신도 그와 섹스함으로써 같은 수준의 위험을 공유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와 섹스하든 나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일은 감염인을 낙인찍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감염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그가 필요한 치료와 지원을 언제라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짜증나는 것은 자신이 ‘비감염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뭐라도 된 듯 PL을 타깃으로 삼고 공격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취약성에 대한 이해, 삶에 대한 이해는 전무한 무례하고 무식한 인간들이 쏟아내는 공격과 비과학적인 막말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사라지는 것이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리라 여기게 된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비감염인들(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은 2018년 동인천에서 열린 퀴어퍼레이드에서 행진 행렬을 가로막고 몇 시간째 바닥에 앉아 통성기도하며 혐오발언을 쏟아내던 개독 세력과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극적인 변화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인권감수성과 발전한 과학적 사실 앞에 무지에서 비롯한 혐오를 전시하는 이들은 빠르게 도태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을 위해 너그럽게 충고하자면 지금이라도 U=U가 무엇인지 HIV가 무엇인지 공부해야 할 것이다.
6.
HIV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PL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그는 약을 먹지도 않았고 병원에 다니지도 않았다. 그는 에이즈에 대한 높은 수준의 낙인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그로 하여금 미래를 계획할 의지를 빼앗았으며 함부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내가 공부하고 알게 된 에이즈는 그렇게 살아갈 필요가 없는 질병이었다. HIV에 감염되었어도 치료받고 약을 꾸준히 먹으면 타인에게 전파할 우려도 없이 비감염인과 다름없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HIV에 대한 잘못된 오해와 부정확한 편견으로 지레 삶을 포기하는 행위였다. 이러한 오해와 편견은 사회 전반에 퍼져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결합해 그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정당화하며 이를 개선할 긍정적인 분노를 끌어낼 수 없게 만든다(상대방이 PL이고 아니고가 중요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세상 살아보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무례하고 어리석게는... 살고 싶지 않다.).
나는 HIV 페티시라고 생각할 정도로 PL이 좋고 PL과 섹스하고 싶고 PL의 정액을 먹고 싶어하고 PL의 안에 노콘으로 싸거나 노콘으로 받고 싶어하는데 왜 그럴까? 비감염인들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꼬워서 그렇다. 뭐가 잘나서? 몸에 HIV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누군가와 연애할 때 그가 몸에 HIV를 가지고 있다 아니다 보다 더 짜증나는 문제는 존재한다.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사랑하지 않게 되는 계기는 더욱 복잡하다. 그렇게 마음이 변하는 핑계를 상대방이 감염인이어서라고 쉽사리 떠넘길 수 있다면, 과연 그 감정이 사랑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알아가고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PL이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한계와 조건들을 결정한다고 믿게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인생을 좀더 살아보면, 인간이라면 쉽사리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와 충동을 몇 가지쯤은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안고서 뒤뚱거리며 살아가는 법임을 깨닫게 되지 않는가.
7.
노콘섹스와 다수의 사람들과의 성접촉을 선호하는 내가 십여 년간 이 바닥에서 체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노콘섹스에 대한 욕망이 있는, 안전하지 않은 섹스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프렙이나 U=U가 퍼지기 전에도 그랬다. 에이즈가 불치의 질병이고 죽음의 병이라는 인식이 있을 때에도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일까? 누군가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왜일까?
그것은 단순히 노콘에 대한 선호만으로 설명하긴 힘들 것이다. 나는 문제에 다가가는 열쇠로 게이들이 처한 조건과 상황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섹스를 서로가 원하는 매력을 교환하는 거래관계로 만드는 어플 문화, 거기에서 자원이 부족한 사람이 섹스를 성사시키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조건들엔 무엇이 있을까? 노콘을 허락하는 사람과 콘돔을 고집하는 사람 사이에 있는 힘의 격차. 나이가 많아서, 돈이 없어서, 관계 맺는 문법을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커뮤니티에 참여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성정체성과 항문성교를 불법화하여 낙인찍는 국가와 그것이 재생산해내는 사회의 차별과 억압이 주는 스트레스.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성소수자로서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는 불안과 언론과 혐오세력들로부터 끊임없이 불려나가 모욕당해야 하는 불쾌감들이 표출되는 한 방식이라는 생각 등 복잡한 조건들이 서로 얽혀 있다.
성에 대해 쉬쉬하는 태도는 질병을 질병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도덕적 가치판단의 대상으로 취급하게 만든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윤리와 도덕이 개입해 특정 질병을 그릇된 행동의 결과로, 일탈 행위의 마땅한 벌로 여기게끔 만든다. 어떤 행동이나 존재방식은 그릇된 것,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금지당한다. HIV 감염 및 성병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방법들을 배우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보호하는 대신 무조건적인 금지를 통해 정체성과 성행동을 비난의 대상으로 만든다. 어리석은 일이다. 어떠한 욕구도 그것을 단숨에 끊어내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 이 사람이 이러한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자기 인식은 어떤지, 자신이 반복하는 행동과 상황에서 위험한 요소를 줄이기 위해서, 혹은 다른 삶을 기획하기 위해선 어떤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지 이해가 필요하다.
8.
하지만 위의 조건들을 배제하고 순전히 흥분과 만족감 때문에 노콘섹스를 택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떨까? 내 관심사는 이것이었다. 나는 콘돔을 사용한 섹스가 싫다. 나는 노콘섹스가 좋다. 나는 노콘섹스를 통해 감염될 수 있는 성병의 종류와 위험과 그 대처법을 숙지하고 있으며 상대방 역시 그러길 바란다. 그렇다면 행복한 노콘섹스를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내린 결론이다.
ㄱ.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고 있으며 꾸준히 치료제를 복용해 바이러스가 억제된 상태의 감염인과 한다.
ㄴ. 프렙을 복용한다.
ㄷ. 감염인 인권을 증진시켜 그들이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모두가 행복하게 노콘섹스할 수 있게 일조한다.
ㄹ. 의학적 사실에 반하고 구시대적이며 예방에 도움 안 되는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을 없애고 게이 커뮤니티에 프렙 접근성을 높이도록 정부에 압력을 넣는다.
현재 프렙은 시범사업으로 1년간 무상으로 약제와 검사비용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프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C형 간염을 비롯해 다른 성병을 예방해주지 못하지만 HIV 노출에 있어서는 복약법을 지키면 감염 가능성에서 안전하다.
서로 원한다면 부카케를 해도 되고, 노콘섹스를 해도 된다. 그것이 폭력이 아닌 서로 합의한 관계라면 말이다. 질병에 대해 불필요한 편견과 판단을 더할 필요가 없다. 즐거운 노콘섹스를 하자.
질문
예. 그. 프렙 얘기 해주셨는데. 프렙은 일단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범사업 진행하고 있는 거는 길리어드 사에서 약제 1년치를 지원하고요. 검사비용, 병원에 방문했을 때 검사받고 차트 발급받고 하는 모든 비용을 1년 동안 지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MSM들에게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때 그걸 바탕으로 정책을 마련하라는 요구를 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예를 들면 트루바다 먹으면 더 문란하게 노콘섹스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게 지표로 포착된다면 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겠죠.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트루바다를 먹어서 막 맘대로 노콘섹스를 해야겠어 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이것이 한국에서는 별로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상황이고요. 지금 저 같은 경우는 트루바다는 이제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복제약이 있어요. 제네릭이라고 해서 동일한 성분이지만 가격은 한달치가 오만원 정도, 이 정도면 크게 부담되지 않는 선이죠. 지금은 한달치 약값이 검사비 포함해서 약 사십오만원~오십만원 정도인데 그게 10분의 1로 뚝 떨어지는 건데 지금 이런 약을, 복제약을 따로 구해서 드시는 분들도 계세요. 근데 이런 경우는 우리나라 현행법상으로는 불법이지만 여튼 복용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고, 그런 경로를 통해서 복용하시는 분들도 자기가 HIV에 감염되었는데 무증상잠복기 시절에, 그리고 창기간이라고 해서 감염되었어도 양성 확진판정이 뜨지 않는 동안 복용을 했을 경우 내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감염내과를 방문해서 HIV항원항체검사를 받으셔야 하고요. 만약에 어둠의 루트로 복제약을 구해서 복용하고 있다면 비뇨기과나 그런 병원에서 진료소견서를 받아서 감염내과에 방문하면 그런 검사 같은 것들을 받을 수 있고요. 내가 만약에 프렙을 그냥 하고 싶다, 나는 돈이 있어, 여유가 있어, 한다면 마찬가지로 방문하셔도 되는데 그냥 감염내과, 대학병원 감염내과를 가시게 된다면 모든 검사가 비보험처리 되기 때문에 비싸요. 그래서 그런 경우에도 일반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아서 방문한다면 검사라든지 여러가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약값만 비보험으로 하면 되시는 경우거든요.
트루바다는 저 같은 경우는 먹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변화가 있어요. 아까도 제가 우울감을 얘기했지만 제가 문제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가장 크게 도움이 된거는 제 연봉이 크게 올랐을 때. 제가 더이상 주말에, 이번 주말에 쓸 돈이 이삼만원밖에 없는데가 아니라 내가 내 맘대로 써도 돼, 일 때 우울감이 많이 사라졌고요. 찜방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맘에 드는 애를 만나서 모텔을 가도 되고 데이트를 해도 되고 맛있는 걸 먹어도 되고요. 제가 밤에 예를 들자면 찜방에 가서 한번 했더라도 밤에 심야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올 수 있어요. 전에는 집에 갈 택시비가 없기 때문에 거기 있거나 밖에 나와서 24시간 하는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이런 데 있어야 했던 거고. 근데 이거랑 비슷하게 프렙을 하면서 제가 겪는 변화들이 있어요. 전에는 제가 애인과는 성관계를 잘 하지 못하는 그런 게 있었는데 프렙을 하면서는 오히려 일대일 관계에 대한 욕구가 좀 높아졌고요. 내가 남모르는 사람들과 섹스하는 행동을 통제할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로 인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내 안에 있었고 그것이 이제 제 일대일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는데요. 물론 여러 가지 성병 감염의 위험은 있지만 최소한 HIV에 있어서는 안전하다라는 이게 주는 변화는 좀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어, 누군가와 어둠 속에서 섹스를 할 때 나는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이 사람으로 인해서 내가 어떤 질병에 감염될 수 있을 때와 최소한 HIV에서는 안전할 수 있다는 감각이 주는 건 삶을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게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아까 염려된다고 하셨는데 제 생각에 1년은 충분히 긴 시간이에요. 긴 시간이기 때문에 그걸 복용하면서 내 삶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체험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지금 이 트루바다는 특허성분이 만료된 상태이기 때문에 국가에서도 복제약을 제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 대한 요구나 목소리가 없기 때문에 그러지 않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드는 의문은 그거예요. 지금 사람들이 의료비를 가지고 감염인을 공격하지만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복제약을 먹이면 돼요, 만들어서 국가가 보급할 수 있게, 필요한 사람이 먹을 수 있게 하면 되는데 이게 작동하지 않는 데엔 뭐가 작용하고 있을까. 저는 어떤 소수자 혐오, 혐오할 대상, 희생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질병관리본부에서도 트루바다나 프렙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건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 에이즈에 걸리면 니 인생 좆돼, 라는 메시지가 공중보건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에이즈에 대해 안전하다 했을 때 너도나도 문란하게 노콘섹스를 해서 성병에 감염되는 것보다 아, 에이즈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콘돔 껴야지라는 게 공중보건상 이득이거든요. 아까 병원에서 곤지름 얘기하신 경우도 사실 우리가 몸이 아프면 치료받으면 돼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한국사회의 분위기가 가치판단을 하는 상황에 있고 의료인들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거든요. HIV감염인도 보편적주의지침으로 모든 사람은 전파매개성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진료를 해야 하지만 HIV감염인에 대해서만 특별하게 무슨 김장김치도 아닌데 수술시트를 비닐로 둘둘 감는다든지 식기를 분홍색 파란색으로 구분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들이거든요. 나 스스로 그런 데 낙인이 없어야 하는 게 중요하고. 내 권리가 침해받고 있는 거, 내가 동등하게 아플 때 치료를 요구해야 되는데 이게 침해받는 상황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이거에 대해 분노하는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