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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닮은 도시 - 류블랴나 ㅣ 걸어본다 4
강병융 지음 / 난다 / 2015년 5월
평점 :
‘빈으로 가는 길’, 그 이름 참 마음에 든다.
이 길은 류블랴나 시내로부터 북동쪽으로 쭉 뻗어 있다. 류블랴나에 몇 안 되는 대로 중 하나이다. 이 길을 따라가다보면, 종국에 빈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직접 지도를 펼쳐 길을 따라 쭈욱 가보니 정말 그럴 것도 같다.
길의 이름이 길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길의 이름이 길이 지향하는 바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빈으로 가는 길’을 걸을 때마다 모스크바에는 없는 모스크바 기차역이 생각난다.
서울에는 서울역이 있지만,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 기차역이 없다. 대신 모스크바 기차역은 러시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 모든 역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에는 소재지가 아닌 행선지의 이름을 딴 기차역들이 꽤 있다. 그러니까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 기차역이 없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기차역이 없다. 대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모스크바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면 모스크바에 갈 수 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아닌, 내가 ‘앞으로’ 갈 곳을 일러주는 역 이름.
멀지만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일러주는 것이 꼭 마음에 든다.
영원히 걸어도 테헤란에는 도착할 수 없는 ‘테헤란로’보다는 언젠가는 빈을 만나게 해줄 ‘빈으로 가는 길’이 훨씬 좋다.
누군가에게는 이 길이 너무 평범해서 시시할지도 모른다. 적당한 높이의 빌딩들이 드문드문 서 있고, 차가 많이 다니는 대로인 만큼 간혹 주유소가 보이고, 가로수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버스 정류장이 나타나고, 레스토랑과 키오스크kiosk가, 자전거 도로가 있는 그런 흔한 길을 걸으며 난 생각한다.
정말 이 길의 끝에 이 길 이름처럼 빈이 있을까?
길을 걷고 싶게 하는 건 멋진 포장이 아니다. 화려한 조명도 아니다.
때론 그저 소소한 이름만으로도 그 길이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단순하더라도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