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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퀴어 -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
박차민정 지음 / 현실문화 / 2018년 6월
평점 :
그가 목격한 "기괴한" 장면이란 역전에서 중년의 노동자가 더벅머리 총각의 손목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가가서 귀를 기울여보니 중년의 남성은 젊은이에게 가지 말라고, 갈 거라면 하룻밤만 더 놀다 가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차상찬은 이 장면을 보고 "동성애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모르는 척 그 노동자에게 사연을 물었다. 중년의 노동자는 서슴없이 그 더벅머리 총각이 자신의 '미동'이며, 3년을 같이 지내다 오늘 타향으로 떠나게 돼 작별을 위해 정읍역에 나왔다고 답했다. 통계조사라는 근대적 지식을 통해 조선 민족의 현실을 진단하고 처방을 구하고자 했던 이 계몽주의적 지식인은 두 남성의 애틋한 모습을 웃음이 나서 아무 말도 못할 기이한 광경이라고 기록한다. 그러고는 곧 두 남성의 친밀성을 착취당하는 “가련한 조선 농민”의 서사 속에 다시 배치한다. 마흔이나 먹은 이 빈궁한 노동자가 부자 놈들처럼 아름다운 기생이나 첩의 향내를 맡지 못할지언정 “총각친구의 X냄새(똥냄새)”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빈곤으로 인해 "이성애를 한 번도 잘 못하고" 그래서 "그런 데에나" 애정을 [붙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불평등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성들끼리의 항문 성관계는 1940년대 한국 사회, 적어도 강원도에서는 그렇게 어렵게 접하는 현상은 아니다. 아니, 매우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1940년대에 나이가 10살 내지는 20살 정도였던 노인들은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그러한 남성들과의 성관계를 경험했다고 증언한다.
상대의 부인이 수동무에게 가지 못하게 하면, 수동무 상대는 부인을 때리기도 한다. 수동무 상대는 자신의 부인에게 옷을 사 주지 않지만, 수동무에게는 단오, 추석, 설 등 3 '명일'에 바지저고리를 해 준다. 그리고 신발도 사 주고, 목도리도 사 준다. 수동무 상대는 수동무와 같이 그네도 뛰고 자신이 가는 곳에 수동무를 대동한다. '도방'등에서 자신의 수동무만을 데리고 자면서 수동무에게 허벅지를 쪼이게 하고 성기를 허벅지 사이에 비빈다. 수동무는 이쁘고 똑똑한 아이들만 수동무가 되었고, 못난 애는 수동무도 되지 못했다.
어린 시절 (-) 5촌네 집에서 머슴을 사는 50살 정도의 머슴의 수동무를 13살부터 2년 동안 하였다. 그 머슴은 나에게 개목도리를 사 주었다.
15살 때에는 부인이 있는 30살 남자가 자꾸 집적거려 못 이기는 척하며 똥구멍을 주었다. 그와는 1년 정도 교제했다. 그의 집의 사랑방에 가서 자면, 그는 부인과 자지 않고 사랑방에 와 삐역을 했다.
'도방'에서 남자들이 10명 내지는 20명 정도가 함께 자기도 하는데, 한쪽 구석에서 나이가 든 남자가 어린 남자 아이인 수동무를 상대로 뼉을 하기도 한다. 이때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뼉을 하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이 다른 동네에 놀러가 도방에서 자다 삐역을 당하기도 한다.
수동무는 대체로 17살 정도면 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17살 이상이 되어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동년배끼리 번갈아 가면서 항문 성관계를 한다.
수동무 상대가 강제로라도 수동무와 뼉을 하면, 수동무는 그 날 이후부터 수동무 상대의 마누라에 버금가는 정도가 되어 상대가 원하는 대로 뼉을 한다. 일단 수동무가 되어 뼉을 하게 되면, 수동무 상대가 50살이더라도 수동무는 경어를 사용하지 않고 반말을 사용한다.
_박관수 (2006.2). 1940년대의 ‘남자동성애’ 연구. 『비교민속학』, 31집 389-4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