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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비폭력 저항 - 제3의 길
윌터 윙크 지음, 김준우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03년 8월
평점 :
비폭력을 주장하기 꺼려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선 비폭력이라는 용어 자체가 부정적이다. 즉 비폭력이란 용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들리며, 무엇인가 선한 일을 위해 전력투구하기보다는, 무엇인가 악한 일을 피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들린다. (-) 많은 사람들은 "비폭력"을 권력 앞에서 복종하라는 명령으로 간주한다. 로마서 13장 1-7절은 정부가 ^무슨 일을 하든 간에^(*원문에서 고딕 서체로 구분, 이하 동일) 절대 복종하라는 명령으로 해석되어 왔다. 또한 "다른 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 역시 노예들과 하인들이 매질과 구타를 당해도 얼굴 찡그리지 말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하나님의 최후통첩으로 간주되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 역시 억압당하는 자들이 마음속으로부터 고분고분해야 하며, 체제를 바꿀 생각 없이 모든 불의를 용서해야만 하는 것으로 왜곡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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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마찬가지로 교회가 폭력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체제의 폭력과, 그 폭력이 억압당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망적으로 일으킬 수밖에 없도록 만든 대응폭력을 똑같은 차원에 올려놓는 짓이다. 청년들이 던지는 돌멩이가 경찰이 쏘는 총알과 참으로 같은 정도의 폭력인가?
끝으로, 일부 평화주의자들이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고난보다 자신들의 의로움에 더욱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비판을 받은 것은 옳았다. (-)
여기서 문제는 "나의 구원을 확보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곤경에 응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이다. "내가 어떻게 덕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 일에 내가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비폭력은 하나님과 타인들과 우리 자신들 앞에서 우리들 자신의 결백함을 내세우는 자기 정당화의 전제일 따름이며, 이것은 악마의 유혹, 즉 깨끗한 손과 더러운 심장을 지닌 채 죽으라는 악마의 유혹에 불과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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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끝장내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작정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비폭력에 관한 가르침을 단순히 실천할 수 없는 이상주의라고 치부해버린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다른 쪽 뺨을 돌려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수동적이며 (-) 남들에게 무조건 짓밟힐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되어, 많은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불의 앞에서 겁쟁이가 되고 불의를 방조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마태복음 5:38-41 표준새번역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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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한 적절한 번역은 "악에 대해(혹은, 너에게 악을 행한 사람에 대해) 똑같은 식으로 맞받아 치지 말아라," 혹은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보복하지 말아라"일 것이다. 학자역본(-)은 "악한 자에게 맞서서 폭력적으로 대응하지 말아라"(-)라고 탁월하게 번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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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간단한 사례를 들었다.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왜 ^오른쪽^ 뺨인가?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의 오른쪽 뺨을 치는가? 한번 시험해 보라. 당시 오른손을 쓰던 세상에서 오른손 주먹으로 상대방을 치면 그 상대방은 왼쪽 뺨을 맞게 된다. 주먹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뺨을 치기 위해서는 왼손을 사용할 필요가 있는데, 당시 유대힌 사회에서는 왼손을 불결한 일을 위해서만 사용했다. 쿰란 공동체(-)에서는 심지어 왼손을 사용하여 제스처를 했을 경우 공동체에서 쫓겨나 10일 동안 참회하는 벌을 받았다(<사해사본> 1QS 7).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뺨을 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른손 손등^으로 치는 방법이다. 이것은 주먹다짐이 아니라, 창피를 주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즉 그 의도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욕을 주기 위함이며, 그 "꼬락서니"를 제대로 알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당시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같은 신분의 사람을 손등으로 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만일 그랬다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만 했다(같은 신분의 사람을 주먹으로 치면 벌금이 4전이었던 반면에, 손등으로 치면 400전이었다. 그러나 하급자들을 손등으로 칠 경우에는 벌금이 없었다. <미슈나>, Baba Qamma 8:1-6).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하급자들을 훈계하는 통상적인 방법이었다. 주인은 종들을, 남편은 아내를, 부모는 자녀를, 남자는 여자를, 로마인은 유대인들을 손등으로 때렸다. ^이것들은 불평등한 관계들로서, 각각의 경우 보복을 한다는 것은 자살과 다를 바 없었다.^ 유일한 대응 방법은 움츠려 굴복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청중이 누구였는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경우에서 예수님의 청중들은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고소하거나, 강제노동을 부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피해자들이었다("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너를^ 걸어 고소하여 ...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그의 청중들 가운데는 이처럼 신분, 종족, 성별, 나이, 지위 등의 위계적 질서와 로마제국의 점령으로 인해, 그들이 당하는 치욕을 견딜 수밖에 없으며, 비인간적 대우에 대한 분노를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처럼 이미 치욕을 당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왜 왼뺨을 돌려대라고 가르치시는가? 왜냐하면 왼뺨을 돌려대는 행동은 그 압제자에게서 모욕할 수 있는 힘을 빼앗아버리기 때문이다. 왼뺨을 돌려대는 사람은 결국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좋다. (오른손 주먹으로) 다시 때려 봐라. 네가 처음 때린 것은 네가 의도했던 효과를 얻지 못했다. 나는 네가 나를 모욕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나는 너와 똑같은 인간이다. 너의 지위가 높다고 해서 이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너는 나의 품위를 떨어뜨릴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그 때린 사람은 몹시 난처하게 될 수밖에 없다. 순전히 논리적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는 이제 더 이상 손등으로 칠 수가 없다. 이미 아무런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왼손으로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일 그가 (오른손) 주먹으로 친다면 그는 스스로 상대방을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이처럼 손등으로 치는 것의 요점은 신분계급 제도를 강화시키고 불평등을 제도화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왼뺨을 돌려댄 사람을) 매질하도록 명령한다 해도, 그의 주장은 이제 취소할 수 없게 되었다. 즉 그 억압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이 하급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도록 된 것이다. 이 강자는 약자를 비인간화할 수 있는 힘을 빼앗긴 것이다. 이런 대응 방법은 수동성과 비겁함을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에게 도전하는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