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칠천 수백여 일간 폭력의 기억을 제대로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내 비밀,
더 나아가 원가족의 비밀은 조개우물 이야기만큼이나
아득한 것이다. 나는 전화번호 112의 기능을 알면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고 부모님한테 알리지 못했다.
여섯 살 터울의 남자가 위협해서도, 두 살 터울의
남자가 감시해서도 아니었다. 그들이 한집에서 자란
형제이며 친모 친부가 나보다 더 의지하고 아끼는
자식들인 탓이었다.
예컨대 내게도 어느 주말의 한가한 기억쯤은
있는 것이다. 수원 지하방 한가운데에 버너를 놓고
온 식구가 모여 앉아 엄마가 얻어 온 홍차 향을
맡았던 일은 내 인생에 손꼽히는 요긴한 기억이다.
아련한 홍차 향이 아빠 작업복에서 나는 담배 냄새를
싫지 않게 만들었다. 가족들과의 한 끼 식사와 나들이
같은 아주 사소한 순간이 나를 침묵하게 했다. 내가
범죄 사건의 방관자가 된 이유는 추악한 범인들을
가족으로 여긴 탓이었다.
무거운 비밀을 견디는 대신 나는 닥치는 대로 먹었다.
먹고 먹어서 코끼리처럼 몸이 커지면 세상 어떤 망할
자식도 함부로 덤비지 못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