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가면 Elephant Mask (한영 바이링궐 에디션) 움직씨 미투 metoo 1
노유다 지음, 김유라 옮김 / 움직씨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칠천 수백여 일간 폭력의 기억을 제대로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내 비밀,

더 나아가 원가족의 비밀은 조개우물 이야기만큼이나

아득한 것이다. 나는 전화번호 112의 기능을 알면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고 부모님한테 알리지 못했다.

여섯 살 터울의 남자가 위협해서도, 두 살 터울의 

남자가 감시해서도 아니었다. 그들이 한집에서 자란

형제이며 친모 친부가 나보다 더 의지하고 아끼는

자식들인 탓이었다.

예컨대 내게도 어느 주말의 한가한 기억쯤은 

있는 것이다. 수원 지하방 한가운데에 버너를 놓고

온 식구가 모여 앉아 엄마가 얻어 온 홍차 향을

맡았던 일은 내 인생에 손꼽히는 요긴한 기억이다.

아련한 홍차 향이 아빠 작업복에서 나는 담배 냄새를

싫지 않게 만들었다. 가족들과의 한 끼 식사와 나들이

같은 아주 사소한 순간이 나를 침묵하게 했다. 내가

범죄 사건의 방관자가 된 이유는 추악한 범인들을

가족으로 여긴 탓이었다.

무거운 비밀을 견디는 대신 나는 닥치는 대로 먹었다.

먹고 먹어서 코끼리처럼 몸이 커지면 세상 어떤 망할

자식도 함부로 덤비지 못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