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스토리 - 성소수자와 그 부모들의 이야기,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성소수자부모모임 지음 / 한티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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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군가를 끊임없이 포옹해줄 수 있을까? 만약 이 질문을 우리 부모님께 던진다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다'고 답하실 것이다. 부모님은 이미 나를 그렇게 키워주셨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각자 방식은 다를지라도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은 자식을 아끼고 걱정하고 사랑하고, 자식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며 사랑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부모님을 잃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혐오 발언(레즈년, 더러워 등)을 내뱉고 멸시의 시선을 보냈던 것처럼, 혹시라도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대하면 어떡하지. 내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거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나는 그저 남들과 '다른' 것일 뿐인데......"

(-) 부모님께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을 해야만 했던 당시, 부모님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너그러웠다. 내가 잘못 생각한다며 다그치는 일도 없었고 불량한 친구가 나를 '전염'시켰다고 노발대발하지도 않았다. 그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나는 속으로 '역시 우리 부모님이야'라며 들떴고, 그동안 숨겨 왔던 속이야기와 거짓말로 얼버무렸던 나의 일상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늘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미묘하게 느껴지는 괴리감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왜 그럴까?' 하고 고민하던 즈음 여동생에게 남자친구가 생겼고,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여동생의 남친 이야기가 재미있다며 맞장구도 치고 남친의 안부를 먼저 묻기도 하는 등 그가 동생의 애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정했지만, 내 애인은 '동성'이라는 이유로 불편해 하셨다. (-) 호칭을 부를 때도 내 애인은 그저 '친구'로밖에 불리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남들과 다른 것일 뿐이야'라고 스스로의 존재를 긍정하려고 하면 할수록 이는 '이성애자인 부모님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지금까지 잘 쌓아온 부모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백번 양보해서 이해를 하더라도 '공감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공포와 소외감이 나를 고립시켰다.

나는 다시는 엄마, 아빠의 진심 어린 포옹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혼란은 사춘기의 흔한 방황 정도로 치부되었다. "아직 네가 어려서 그래." "나중에 크면 바뀌겠지." "여자끼리의 우정을 착각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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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의 모습을 숨기고 거짓말로 포장했을 때만 살갑게 대화할 수 있는 사이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나는 내 진심을 입밖으로 꺼내기가 힘들어졌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수다스러웠던 따뜻한 밥상은 형식적인 안부만 오가는 밥상으로 차가워졌다. "나를 상처 입히는 것은 적의 말이 아니라 친구의 침묵"이라는 마틴 루터 킹의 말이 뼈저리게 공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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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이 이성 교제 하는 걸 보고서는 비웃지 않으면서 왜 동성애자들의 교제는 성인이어도 어리숙한 것이라고 치부해?"

"엄마가 나이 들면 동성을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이성애자들이 나이가 든다고 동성을 사랑할 수가 있냐고!"

"도대체 우정의 범위가 어디까지기에 내가 애인을 만지고 싶고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은 것도 다 우정이라는 거야?"

태어나서 한 번도 부모님에게 대들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언성을 높이면서도 이대로 영영 부모님과의 관계를 잃게 될까 봐 그게 더 두려웠다. '사랑'의 반대말은 '싫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침묵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


(-)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긴 시간 동안 싸우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서로 상처 입히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 딸 사랑해" 하고 나를 껴안으시는 부모님을 보고는 문득 깨달았다. 엄마, 아빠와 나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조차도 항상 끌어안고 있었구나! 우리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 소리를 지를지언정 살결을 맞대는 포옹은 잊지 않았던 것이다. 가족은 이런 게 아닐까. 아무리 미워도 언제든 다시 껴안을 수 있는 사이. 서로를 모두 이해할 순 없어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사이. 적어도 우리 가족은 그러했다.



_문이채린_대가 없는 포옹_커밍아웃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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