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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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던 한나 아렌트를 떠올린다. 이 재판을 참관하면서 한나 아렌트가 놀란 것은, 악행 자체의 논리적 완결성(치밀하게 준비해 근면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에 비하면 그 일을 행한 자의 정신적 수준은 너무나 천박하다는 점이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아이히만 역시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유대인을 증오하지 않았지만, 다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했다고 대답했다. 악행의 이유는 그렇게 짧거나 사실상 거의 없다. (-)


이렇게 이유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악행은 정신적 수준이 저열하고 천박한 사람들도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선행을 행하려면 수준이 좀 높아야만 한다. 세 살배기도 악행은 저지를 수 있지만, 선행을 행하려면 좀더 배워야만 한다. 한나 아렌트가 나를 위로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끔찍한 악행을 행하는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괴물인 양 생각하던데, 한나 아렌트에게 배운 바에 따르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천박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악이 선만큼이나 대단한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악은 선의 결여일 뿐이다. 선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악행이다.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아주 기나긴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알아내기 위해서 한나 아렌트 같은 철학자들이 몇천 년에 걸쳐서 연구했지만, 여전히 선을 행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악을 행하는 논리는 너무나 빈약하거나 없다. 그저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들의 행위라고 말하면 충분하다. (-)

언젠가 대학생들의 작품을 심사하다가 이런 소설을 본 적이 있었다. 문창과 학생인데, 지적으로 도도한 척 구는 여자 교수를 찾아가서 칼로 배를 찔러 죽인다. 무의식적 충동이니, 기성세대에 대한 88만원 세대의 좌절이니, 그 어떤 말로 설명한다 한들, 그 학생이 한나 아렌트도 모른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좋다. 소설 쓰는 데 한나 아렌트까지 알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파괴적인 이야기는 선이 결여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서사적 논리도 없거나 미미하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사이코패스와 시선을 안 마주치려는 이유는 그자가 우리의 심연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없이 저열하고 하찮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직 살인하고 죽이기만 하는 소설을 우리가 싫어하는 까닭은 심성이 착해빠졌거나 그게 인간의 추잡한 일면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사적으로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_김연수_소설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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