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은하에서 - 우리 시대 예술가들과의 대화
김나희 / 교유서가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 스물여덟 살에 첫 소설집 『겨울 우화』를 묶어냈다. 그때까지 계속 무슨 일인가를 했다.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일하고 나를 책임지고 하는 걸 열여섯 이후부터 늘 해야 했으니까……. 출판사에서도 있었고, 잡지사 기자도 했고, 클래식 FM의 방송 대본을 쓰는 구성작가로도 3년 남짓 일을 했다. (-)


이십대 때에는 누군가 무엇이 갖고 싶냐고 물으면 넓은 책상이라고 대답했다. 언젠가 넓은 책상이 있는 방에서 글을 쓰고 싶다, 는 생각을 키우며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 때문에 받는 고통들을 달랬던 것 같다.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에도 그런 장면이 등장한다. 무슨 일인가를 하려다가 난관에 부딪히면 속으로 언젠가는 내 책상을 가지고 그 널따란 책상에서 밥도 먹고, 한쪽에서는 글도 쓰고, 올라가서 가끔 낮잠도 자고…… 그런 생각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바란 것이 오로지 나만 쓸 수 있는 책상이었는데 그런 책상이 생기니까, 더 넓은 책상으로 꿈이 커졌다. 책상에 대한 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있었다. 형제가 많아 늘 책상을 같이 쓰거나 형제들이 없을 때나 쓸 수 있고 했으니까. 책상이 좁아서 다른 걸 하려면 저쪽에다 치워놓아야 하고 그런 거 말고 그냥 뭐든지 다 늘어놓고 치우지 않아도 되는, 그냥 책상이 아니라 작업대로서의 자유롭고 넓은 것을 원했다.


아무것도 이룬 거 없이 서른이 된다는 것에 허무함이 느껴졌다. 이룬 것도 없이, 성공을 못해서 그랬다기보다도, 이렇게 서른이 되는구나,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보잘것없이……. 그런 느낌이 깊이 밀려와서 라디오 방송국에 무작정 사표를 냈다. 언젠가는 그때 밀려왔던 허무함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감정이었다. 한국사회가 서른에 주는 압박감이 대단하다. 지금은 좀 덜한데 그때에는 제법 심했다. 63년생에게 서른 살이라는 건……. 특히 결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결혼했니 안 했니? 이게 꼬리표처럼 딱 달라붙어서 정체성을 구분 짓고. 나는 서른의 여자인데 그때까지 결혼도 안 했고, 일찍 등단을 했지만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내 자리를 잡았던 것도 아니라서 더욱 그런 질문들이 주는 피로함의 무게와 맞닥뜨렸던 것 같다. 그렇게 서른이 크게 다가왔다. 이제 1년만 더 지나면 서른인데 어쩌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글 쓰는 일에 온전히 몰두해보는 시간을 한 번도 갖지 못한 채, 서른이 되는 건가 싶었던 거다. (-)



(-) 신이 존재하는 세계와 소설의 세계가 다르다. 신의 세계는 완벽하고 순수하고 흠이 없다. 소설 속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이기 때문에 남루하고 누추하다. (-) 소설은 흠과 오류가 용인되는 세계다. 벌을 주기보다는 그 오류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살피며 그것을 인간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역할을 한다. 내가 소설에 매혹을 느끼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소설 속에서는 약하고 소외되고 패배하고 아무것도 지닌 것이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었으니까. (-) 소설은 패자의 편을 들어주고 패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다. 굳이 승패를 따진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오류나 모순과 싸우고 부딪치고 깨지고 패배하는 그런 자들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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