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판 제21호 - 2006년 겨울 - 창간 5주년 기념호
열림원 편집부 엮음 / 열림원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아아’ 하고 소리친 뒤


김애란


모든 말(言)은 말(言)이 되는 순간 머뭇거리는 듯하다. 바르게 선 사람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과 같이. 그것들은 말이 되느라 평소에 좀 바쁘고, 황당하게 곧잘 넘어진다. 언어 또는 문자래도 좋고, 19세기 혹은 21세기라도 상관없다. 활자 속에 깃든 잔인함과, 어쩔 수 없는 아늑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늘 이상한 우스움 같은 것이 서려 있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든다. 멋지게 차려입고 걸어가다 휘청-이는 언어의 어떤 불완전성 같은 것이. 그것은 간혹 좀 더 잘 번식하기 위해, 좀 더 불완전해지려는 종(種)처럼 보인다. 혹은 반대라 해도 좋다. 언어란 인간에게 퍽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과 닮아 있다.


나는 그 사실 때문에 고통받았었다. 내가 말해야 된다는 것. 내가 들어야 한다는 것. ‘아아’ 하고 소리친 뒤 ‘아아’ 하고 느껴야 한다는 것. 네가 말하고. 네가 듣는 것을. 내가.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 서로 절뚝이는 것을 보고도 웃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것은 내 사적인 문법과 사적인 잘못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문 따위 이 세계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거니까. 오히려 곤란했던 건, ‘올바른 문장’과 ‘올바른 문장’ 사이에 존재하는 불안이었다. 혹은 대칭점과 화살표를 나눠가질 수 있는, 말들의 무수한 사이―그 경우의 수 앞에서였다고 해야 할까.


말들의 ‘불완전성’이라니. 이 진부한 사실 앞에서 느끼기에 적당한 감정은 어떤 것이어야 했을까. 아무래도 빤한 사실 앞에서 느끼기에 온당한 감정은 빤한 것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아아’라고 느낀 뒤 ‘아아’ 하고 소리쳐야 하는 이 민망함. 죽음처럼, 진부해서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사실들이 있는 것처럼. 언어는 언제고 내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전혀 자연스럽지가 않다. 언어는 너무 미끌미끌하다. 그러니 이 오래된 당혹감이 산뜻해질 수 있는, 그 어떤 비문들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말들의 ‘성격’을 존중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나를 둘러싼 진부함 앞에서 한 번도 웃어보려 한 적이 없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끼리 소통이 좀 안 되고, 오해받는 것이 그렇게 곤란하기만 한 일인가 하는. 신이 우리에게 ‘완전한 언어’라는 것을 쥐여준다면, 그때 우리는 여전히 인간적일 수 있을까, 혹은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의 소중한 치졸함, 소중한 비열함, 유약함, 산만함, 다정함, 초조함, 엉뚱함, 소심함, 성실함, 기발함, 비굴함, 치열함과 같은 ‘인간적’ 특징들은 매우 단순하고 밋밋해지지 않을까. 그런 시대엔 아마 드라마도 없고, 문학도 없고 어쩌면 사랑도 없을 것이다. 아니면 무척 시시한 것이 되어 있으리. 인간적이라는 것 자체가 선(善)일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세계를 좀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파라솔 모양의 아니 ‘불(不)’ 자가 ‘완전(完全)함’ 앞에 붙어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풍경을 그려본다. 미끌미끌한 언어를 타고 딴 곳으로 좀 가보자면, 아니 불(不) 자는 나무 목(木 ) 자를 닮은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나무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나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이 낙원이 아니라 기쁘다. 인간과 인간이 소통이 좀 안 돼서 정말 다행이고, 언어가 순결하지 않아 좋다.


지구는 닳고 닳아, 분필만 해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지만, 내가 ‘나라고 부르는 나’와 내가 ‘너라고 부르는 너’가 있는 이상, 아마 우리는 마지막 날까지도 여전히 기우뚱거리는 말들 안에서, 기우뚱거리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꼭 무엇을 하려 하는 게 아닌,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엇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환경 안에서 말이다. 물론 말들이 불완전해서, 말들이 우스워서 참혹해지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아아’ 하고 외친 뒤, 이 ‘아아’가 그 ‘아아’가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다시 ‘아아’라고 반복할 수밖에 없는, ‘아아’ ‘아아’ ‘아아’ 하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시간들도 있을 것이다. 특별할 것도 없이 우리가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그런 시간들처럼 말이다. 글이란 게 끝끝내 다가갈 수 없는 시간 주위를 끊임없이 기웃거리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지난한 기웃거림 안에서조차 뭔가 전달될 수 있는 진심이 있다면, 나는 그 말들 안을 부지런히 싸돌아다녀볼 생각이다. 가끔은 우리가 울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우리가 가진 진부함의 잔등을 길게 쓰다듬어주면서 말이다. 그러다 간혹 말들의 뒤뚱거림 안에서 새로운 박자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 어쩌면 나는 ‘완전’할 순 없어도 외롭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될런지도. 그런 뒤 조금쯤은 내가 그러한 일들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부디 그것이, 내가 마지막까지 가장 좋아할 수 있는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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