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구원
레슬리 뉴비긴 지음, 홍병룡 옮김 / 복있는사람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동료 인간과 모순된 상태에 있다

(-) 가인과 아벨의 시대로부터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죽이는 행위를 계속해 왔다. 어디로 눈을 돌리든지 싸움을 목격하게 된다. 나라와 나라, 계급과 계급, 인종과 인종 간, 그리고 심지어는 한 가족 내에서도 형제와 형제, 자녀와 부모 간에 싸움이 일어난다. (-) 사랑이 최고의 선이며 사랑이 없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서로서로 싸움을 일삼는다. (-)

 

사람은 자기 내면과 모순된 상태에 있다

각 사람의 내면은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 속에서 많은 세력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일종의 공화국이다. 그 마음의 주권에 반란을 일으키는 강력한 본능적 세력들이 존재한다. 사람의 몸은 언제나 의지에 순종하는 도구가 결코 아니며, 그의 마음 내부에도 상충되는 욕망들이 있다. (-) 무엇보다도, 각 사람의 내면에는 그가 마땅히 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과 그가 실제로 행하는 일 사이에 커다란 분열이 존재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7:19) 행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의 실제 상태와 그의 당위적인 상태 간의 이런 자기모순은 각 사람의 영혼을 관통하고 있다. (-)

 

사람은 하나님과 모순된 상태에 있다

이것이 다른 모든 모순의 근거가 되는 기본적인 모순이다. 사람은 자신의 창조주에 반란을 일으킨 피조물, 자기 존재의 뿌리로부터 자신을 잘라버린 피조물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창조세계와 모순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창조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려고 애쓴다. 그는 겸손과 믿음과 순종의 자세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신의 힘과 지혜와 선행에 의지하여 사는 길을 택한다. 사람은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겠다고 말할 때조차도 자기의 권리와 자기의 힘으로 그렇게 행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어 한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의로움을 구하기를 바란다. 이와 같은 사람과 하나님 간의 모순은 다른 모든 모순들의 뿌리에 해당한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 존재의 근원과 대립함으로써 스스로를 자기 자신, 동료 인간, 그리고 세계와 모순된 상태에 두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이런 모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속박에 빠지게 된다. 그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는 적대적 세력들에 사사건건 부딪혀서 한계에 봉착한다. 주변 세상에 있는 악의 세력, 그 영혼 속에 있는 죄의 세력, 생명에 종말을 고하는 죽음의 세력 등은 모두 힘을 합쳐 사람에게서 자유를 빼앗는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런 적대적인 세력들을 이기고 자신을 해방시킬 만한 힘이 없다. 이 속박의 본질과 이유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 구원이란 사람이 이런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과 우리가 논한 여러 모순들을 극복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구원하다로 번역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온전케 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온전함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사르바Sarva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단어로, 상처 난 곳을 치유하고, 부러진 것을 고치고, 속박된 것을 풀어 준다는 뜻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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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에 새겨진 어느 왕의 머리의 형상은 그 동전의 일부이므로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왕이 죽더라도 그 형상은 동전에 그대로 남는다. 그런데 이와 다른 종류의 형상도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고요한 밤이면 우리는 호수 물에 비친 달의 형상을 볼 수 있다. (-) 그러나 구름이 달과 지구 사이에 끼어들면 그 형상은 사라질 터이고, 만일 물이 바람에 흔들리면 그 형상은 흩어지고 일그러질 것이다. 따라서 물에 비친 달의 형상이 그 물에 속하지 않는 것은 동전에 새겨진 왕의 형상이 그 동전에 속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 형상은 달과 물 사이의 어떤 관계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일 이 관계가 깨어지면 그 형상도 비뚤어지거나 사라지게 된다(이 예화는 나일즈 박사에게서 들은 것이다).

이 비유는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형상은 동전 위의 형상보다 물에 비친 형상에 더 가까운데, 형상의 존재는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에 달려 있다. 사람과 다른 모든 피조물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사람다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개의 개다움은 그 자체 속에 있다. 그러나 사람의 사람다움은 그 자체 속에 있지 않고 그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만일 이 관계가 파괴되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 되고 만다. 사람의 사람다움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관계를 그분과 맺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데 달려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면 그 형상은 비뚤어지고 망가져 버린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에게 등을 돌린다면, 하나님의 형상은 완전히 실종되고 사람은 더 이상 사람다운 존재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은 사랑 안에서, 사랑에 의해, 사랑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점에 있다. 사랑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자 목적인 셈이다. 그래서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 (-) 사랑의 충만함은 사랑을 주고받는 곳에만 존재할 뿐, 한 개인 속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체질 속에 사랑을 받을 필요성과 사랑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심어 놓은 셈이다.

(-)

사람의 존재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다른 인간들에 대한 사랑의 관계 속에 있다. 뒤에서 우리는 사람이 이 사랑의 능력을 자기만을 사랑하는 데 이용했기 때문에 그 형상이 비뚤어져버린 경위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 사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무한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없다고 믿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척 큰 독립성을 부여하셨다. 하지만 완전한 독립성은 아니었다. 만일 그것이 완전한 독립성이었다면, 그것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한 일과 양립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사랑을 위해 사랑 안에서 창조되었다는 점에 있는 만큼 완전히 독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독립성과 의존성 둘 다를 의미한다. 만일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께 등을 돌릴 수 있고 따라서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사람이라는 존재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지만 결코 하나님은 아니다. 이런 지위 때문에 유혹과 죄가 들어올 여지가 생긴다. 유혹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불신과 함께 시작된다. 유혹하는 자는 하와에게 아주 교묘한 말투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마땅히 주셨어야 한다고 넌지시 말한다. 아울러 하나님이 사람에게 한계를 두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에 무언가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 불신이 유혹의 출발점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있는 곳에는 결코 유혹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불신이 바로 죄의 시작이다. 불신은 사실상 죄의 뿌리이자 근거에 해당한다.

유혹하는 자는 먼저 (-) 마음속에 불신의 씨앗을 뿌린 뒤에(-) 새로운 생각을 집어넣는다. 바로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3:5) 될 것이라는 발상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기를 그만둘 때, 그 다음 단계는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인생을 다스리고, 미래를 예측하고,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를 결정하고, 남을 판단하고, 세계의 중심이 되고 싶어 한다. 이것이 바로 다 자란 죄다. 죄란 각 사람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싶어 하는 것, 자기의 유익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죄란 사람이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는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에 그 자신을 사랑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에게 돌린다.

이로써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서 어떻게 죄를 범할 가능성이 생기는지를 알게 된다. 사람의 진정한 삶은 하나님을 향한 애정 어린 믿음, 하나님을 만물의 중심으로 인정하는 일, 그분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일에 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능력을 갖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놓고 하나님 대신에 자신을 사랑하고픈 유혹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다.

구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죄의 본질은 불신이고, 죄의 반대는 믿음이라는 점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죄의 반대는 의로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죄의 반대는 믿음이다. 우리가 이 점을 잘 이해하면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무엇보다도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불협화음이 존재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면, 이제는 자녀가 아버지에게 달려가듯 기쁘게 달려가지 못한다. 그와 반대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두려워하여 몸을 숨긴다(3:9-10). 사람은 하나님의 적이 된다. 그는 결코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분을 회피하려고 애쓴다. 하나님의 음성은 그에게 공포감을 안겨 준다. 하나님의 법인 사랑은 더 이상 그의 삶을 채색하는 법이 아니다. 그는 사랑의 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은 그를 위협하는 계명이 된다. 그리하여 인류의 이야기는 곧 하나님이 오랫동안 끈기 있게 사람을 찾는 이야기, 곧 하나님을 찾는 체하지만 실은 언제나 하나님에게서 도망치고 몸을 숨기는 사람을 찾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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