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구판절판


거울은 사람을 비춘다. 얼굴을 비추고 눈동자를 비춘다. 그것은 단지 물리적인 작용일 뿐, 그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것은 아니다. 거울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 놓고 그 앞에 서서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것이다. 기쁨이나 자랑스러움을, 세상을 눈을 의식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이 세상에 거울이 존재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점검해주고 자신이 자신을 관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철저하게 자신을 점검해야 할 것이고,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99쪽

농담이 농담에서 벗어나 정체 모를 불안을 자아내고 있었다. 불안이 불안에 지나지 않을 때는 그래도 행복하다. 불안의 정체를 모를 때까지는. -121쪽

병실이란 한 인간이 자신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서나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곳이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지금까지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했던 애정과, 쌓아왔다고 확신했던 인간관계가 그저 거짓과 무관심과 착각과 기대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절망에 빠지는 일이 종종 있다. 두 달에 걸친 입원생활중에 요시코 자신도 그것을 몸으로 느꼈고, 그런 사례들을 봐왔다. -189쪽

누군가를 향해 손을 내밀고 내가 곁에 있으니 괜찮다고 말을 거는 순간에, 그는 다른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처음부터 듬직한 인간은 없다. 처음부터 힘있는 인간은 없다. 누구든 상대를 받아들일 결심을 하는 순간에 그런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65쪽

기억, 기억, 기억. 인간이란 존재는 기억으로 만들어져 있는 모양이다. 그런 통찰이 번개처럼 뇌리를 가로질렀다. 처음에는 서서히, 그러다 점점 폭포수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기억이라는 내용이 다 빠져나가 버리면, 히로미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말 것이다. -382쪽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자신이 왜 그런 시를 썼는지. 그것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말이었다. 작문은 사방에 널린 언어를 조합해서 만들 수 있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 시를 쓰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내시경을 넣고 거기에서 조직의 일부를 떼내 표본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위험하다.-387쪽

"잘 들어. 인간이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야. 절대로 그러지 못해. 물론 사실을 하나뿐이야. 그러나 사실에 대한 해석은 관련된 사람의 수만큼 존재해. 사실에는 정면도 없고 뒷면도 없어. 모두 자신이 보는 쪽이 정면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야. 어차피 인간은 보고 싶은 것밖에 보지 않고, 믿고 싶은 것밖에 믿지 않아."-4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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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구판절판


우연은 범죄자에게는 항상 적이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도 터무니없는 사소한 우연 때문에 흐름이 바뀌어버린다. 사소한 것 하나를 잊었다든지, 공교롭게도 그날 비가 내렸다든지, 택시가 바로 잡히지 않았다든지, 그런 작은 일이 범인을 당황하게 하여 증거를 남기는 것이다. 수사란 그것을 끈기 있게 찾아내는 일이다. -209쪽

사람들은 모두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선전이야말로 선악을 결정하고, 옳고 그름을 정하고, 신과 악마를 나누는 것임을. 법이나 도덕규범은 그 바깥에서 하릴없이 어슬렁거리고 있을 따름이다. -343쪽

범죄자뿐 아니라 사건을 일으키기 쉬운 종류의 인간을 사건 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격정도 아집도 금전욕도 아니다. 영웅이 되고 싶은 욕망이다. 그것은 다케가미가 오랜 세월 형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진실이었다. 술에 취해 싸우다 남을 죽이는 것도, 총기를 들고 무작정 인질을 쏴 죽이는 것도, 클랙슨을 울렸다고 뒤에 서 있는 차의 운전사를 죽이는 것도,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한다고 상대를 플랫폼으로 끌어내려 철로 안으로 밀어넣는 것도, 모두 영웅이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나는 영웅이다, 다른 놈하고는 다르다, 나는 영웅이다, 그런 나에게 주의를 주다니, 이 건방진 놈!
벌레처럼 땅을 벌벌 기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아, 이 영웅 앞에 무릎을 꿇어라. 그것이 그들의 본심이다. 그들만큼 '영웅'이란 말에 취하기 쉽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은 없다. 지금 다가와가 연기하고 있는 '부당하게 박해받는 희생자'도 '순교자' 성격이 강한 영웅담과 별다를 바 없다. -3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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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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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188쪽

그리고 이때부터 사람들의 머릿속엔 단 하나의 명제만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것은 너무나 강렬하고 매혹적이어서 모든 것을 건너뛰는 동시에 모든 것을 단절시키는 한편, 모든것에 우선하고 모든 것을 포섭해서 기어이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이었다. 이후, 사람들의 모든 삶의 양식을 결정짓게 만든 그 명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모든 미국적인 것은 아름답다.-275쪽

넌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
춘희는 점보에게 물었다.
난 어디에도 없어. 이미 난 오래 전에 사라졌으니까.
점보는 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지금 내 앞에 보이는 건 뭐지?
후후, 꼬마 아가씨, 그건 바로 너의 기억 속에 있는 거야.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넌 이미 사라졌는데......
그러니까 기억이란 신비로운 것이지.
그런데 왜 난 사라지지 않지?
당연하지. 넌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나도 빨리 사라지고 싶어. 여긴 너무 힘들거든. 그리고 너무 외롭고......
꼬마 아가씨, 너무 엄살 부리지 말라고. 그래도 살아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야.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죽음보다 못한 삶은 없어. -338쪽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린 사라지는 거야. 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군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4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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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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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규칙에 따르면 주어진 결론은 타당성 있는 최초의 전제에서 출발하여 일련의 논리적 사고를 거쳐 도출되었을 경우에만, 오직 그런 경우에만 참으로 간주된다. (중략)
철학자들은 우리의 지위가 장터의 감정이나 변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양심에 의지하여 안정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을 이성 덕분이라고 보았다. 이성적으로 검토해보았을 때 공동체로부터 불공정한 대접을 받은 것이라면 공동체의 판단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147쪽

철학은 불안도 종류에 따라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불안 때문에 잠 못 이루며 성공을 거둔 불면증 환자들이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듯이 생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불안에 떠는 사람일 수도 있다. -150쪽

"어디에서나 가장 터무니없는 관습과 가장 어처구니없는 의식들이 '하지만 그것이 전통이야'라는 말로 용인되고 있다. 유럽인이 남아프리카 호텐토트 사람들에게 왜 메뚜기를 먹고 몸에 붙은 이를 삼키냐고 물었을 때 그들도 바로 그런 말을 했다. '그것이 전통이오.'"-153쪽

철학적인 접근방법의 장점은 심리적인 면에서 드러난다. 누가 우리에게 반대하거나 우리를 무시할 때마다 상처를 입는 대신 먼저 그 사람의 그런 행동이 정당한지 검토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비난 가운데도 오직 진실한 비난만이 우리의 자존심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며 자학하는 습관을 버리고 그들의 의견이 과연 귀를 기울일 만한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사랑을 구하는 사람들의 정신에 존경할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도 있다. -154쪽

소설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표준 렌즈, 즉 부와 권력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꾼다. -170쪽

"예술이 사람의 공감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도덕적으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176쪽

나는 웨이터, 이혼녀, 간통자, 도둑, 교육받지 못한 사람, 이상한 아이, 살인범, 죄수, 낙제생, 스스로 아무 말도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단지 그런 사람인 것만은 아니다. -177쪽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들이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며 가혹하게 해석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일에서 실패를 크게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다. 실패의 물질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세상이 실패를 바라보는 냉정한 태도, 실패한 사람을 '패배자'로 지목하는 집요한 경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심각해진다. '패배자'라는 말은 졌다는 의미와 더불어 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권리도 상실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냉혹한 말이다. -189쪽

그러나 비극 작가들은 저항할 수 없는 진실로 우리를 이끈다.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모든 어리석은 일은 우리 자신의 본성이 여러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내부에도 최악의 측면과 최선의 측명을 아울러 인간 조건 전체가 담겨 있으며, 따라서 적당한, 아니 엉뚱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 역시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193쪽

따라서 많은 유머가 지위에 대한 불안에 이름을 붙이고, 그럼으로써 억제하려는 시도라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유머를 보고 들으면서 세상에는 나만큼이나 질투심 만고 사회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처럼 돈 문제 때문에 고민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처럼 멀쩡한 표정을 짓지만 속으로는 약간 맛이 간 상태인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또 나처럼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216쪽

높은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계속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지위에 대한 불안을 촉발하는 요인들도 바뀌어간다. 어떤 집단에서는 짐승의 옆구리에 창을 꽂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전투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자본 시장에서 이윤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한다. -227쪽

"필수품이라고 할 때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상품만이 아니라, 나라의 관습에 따라 아무리 계급이 낮다 해도 평판이 좋은 사람으로서 그것이 없으면 품위를 지킬 수 없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중략)"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이 생존에는 모자라지 않는다 해도 공동체의 소득에 비해 현저하게 뒤처지면 언제나 가난에 시달리게 된다. 그럴 경우 그들은 공동체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최소한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가질 수 없으며, 품위가 없다는 공동체의 심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232쪽

우리는 어떤 것을 소요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247쪽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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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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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에 대한 정의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 자체가 불륜이다. 데이트는 말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일을 남편이나 아내가 알면 상처받을 테니까. 배우자에게 상처를 준 이상 그것은 불륜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론한다.
"결혼을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라는 본성 자체는 변하지 않으므로 다른 이성에게 연애 감정조차 품지 말라는 것은 무리다. 아내나 남편에게 들키지 않고 데이트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그 정도의 두근거림이 있는 편이 인생을 즐겁게 하고, 결과적으로 부부 관계도 원만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키스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역시 섹스를 하느냐의 여부가 불륜이냐 아니냐를 결정한다."-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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