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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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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날들이 있다. 마음이 탁해서 집중을 못하는 순간들. 열심히 책을 읽다가도 이런 시간이 찾아오면 조용히 시집을 읽거나, 아예 손을 끊어 버렸다. 그러다 마중물 같은 책을 발견하곤 다시 미친듯 다음에 읽을 책을 찾게 되는 이 독서패턴은 언제나 돌고 돈다. 이번 '독서 휴지기'를 끊어낸 책은 서민 교수의 <집 나간 책>이었다. 기생충에 관련된 그의 이야기가 재밌었던 까닭에 마음이 허한 날 가볍게 한 꼭지씩 읽어내다 보니, 읽고 싶은 책이 가득 쌓였다. 망설임 없이 들게 된 첫 책, 박범신의 <소금> 이었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임에 읽기가 조금 찜찜했다. 이 책이 나에게 남길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아마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한 염부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된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죽음이었으면 그저 한 사건에 불과했을 일이, 그가 나의 아버지가 되는 순간 다른 색깔을 내기 시작한다. 세상 모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어떤 아버지를 가졌더라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야기들이 책장을 넘길때 마다 펼쳐진다. 가슴 한켠이 시큰해 지는건 나 또한 그러한 아버지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임을 알았을 때 왠지 찜찜한 느낌의 정체는, 죄책감 이었다.

 

 

 아버지가 벌어 온 단물을 책에서 처럼 '빨대'꽂고 자란 나는, 이제 아버지의 전화를 귀찮아 하는 어른이 되었다. 아버지가 요즘 부쩍 외로워 한다는 얘기를 영리하게도 모른척 하는, 이 책속의 자식세대와 꼭 닮은 어른. 억지로 불려간 시골집 작은 방에 돌아 누워 주무시던 아버지의 동그란 등이 기억에서 동동 떠올랐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 또한 일회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 이전의 남자,사람의 삶. 가족에게 저당잡히지 않는 삶이란 어디에도 없는걸까. 핏줄이란 가늘고 긴 빨대는 그래서 무섭다. 나 또한 '꽂고' 있었고, 아마 곧 '꽂힐' 테니까.

모든 아버지가 다 그래. 늙으면 무조건 버림받게 돼 있어. 과실을 따올 때 아버지, 아버지 하는 거라고. 둘러봐. 아버지가 번 돈으로 술 마시는 쟤네들, 쟤들 머릿속에 지금 늙어가는 아버지들이 들어 있겠어? p.83.

어떤 부류의 젊은 저들은 고아가 되는 게 단지 부모가 획득해 온느 과실이나 사냥감을 잃는 일이라고 착각할는지 모르지만, 만약 고아가 되는 게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녀는 단호히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잃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후유증은 완전한 가족 해체로 이어졌다. p.112.

특히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된 빨대는 늘 면죄부를 얻었다.
사람들은 핏줄, 핏줄이라고 말하면서 `핏줄`에사 감동받도록 교육되었다. 핏줄조차 이미 단맛의 빨대들로 맺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불렀다. 사랑이 빨대로 둔갑했지만 핏줄이기 때문에 그냥 사랑인 줄만 알았다. 빨대를 들고 기웃거리는 젊은이들은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일차적인 표적은 아버지였다. 스물이 넘은 자식들조차 핏줄이므로 늙어가는 아비에게 빨대를 꽂아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모두 그 체제가 만든 덫이었다. p.331.

애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겨우 은행의 지불창구 직원이거나 가사 도우미 정도라 해도 그건 애들 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화장실에 앉은 그의 가슴이 무너진 것은 섭섭함 때문이 아니라 외루웠기 때문이었다.

세상 끝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았다.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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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0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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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음이 힘든 일이 생기면 그에 알맞는 책이 뿅 나타나곤 했다. 무슨 계시처럼..(물론 내 마음이 물러서 억지로 끌어 맞추는 것도 있겠지만.) 제인 에어는 마음이 힘든날 불쑥 내게로 왔다. 1권을 단숨에 읽고, 에잇 내 스타일 아니야 했었는데...무심코 2권을 집어 들었다가 몇번 나누어 읽고는, 읽는 내내 어디나 들고 다녔다. 제인 에어는 참 부러운 마음을 가졌다.

 

 

 어렸을 적 부모 모두 돌아가시고 외삼촌 댁에 맡겨지는 제인. 평탄치 못한 어린 시절, 이후로도 이어지는 힘든 날들이 그녀의 마음을 강하게 만든다. 단단한 마음의 심지를 가진 그녀는 예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올바르고 자신의 마음에 귀를 귀울일 줄 아는 독립된 여성. 이후 많은 일들이 그녀를 스쳐 지나가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하는 날 그가 유부남인 사실을 알게 된다든지 이후 한푼의 돈도 없이 다시 생활을 개척해 나간다든지...) 단 한번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부럽기 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많은 사람들의 평가, 그들의 수군거림에 참으로 많이 흔들리는 요즘, 제인과 같은 캐릭터를 만난건 행운이었다. 마음중심을 잘 잡고 있는 그녀를 보니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중심이 더 단단해 지는 기분이랄까. 그녀처럼 단단한 마음으로 산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일 것이다. 2권의 대장정을 끝내고 나니 더 부러워져서, 마치 제인의 마음이 된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단단한 심성으로 시간을 채운다는 건 정말 벅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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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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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모르게, '어려운 책' 이라고 씌여져 있는것만 같아서 읽기를 주저했던 책. 어린 시절 보았던 <두치와 뿌꾸> 속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며 책을 집었지만, 조금만 읽어내리다 보면 그 이미지를 박박 지우게된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니까. 더불에 아주 재밌는 책임에도 분명하고, 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또한 정확하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다복한 가정에서 자란다. 다정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시절 부모님이 짝으로 지어놓은 사촌 엘리자베트, 어린시절의 눈부심을 함께 한 친구 클레르발까지, 부족한 부분 하나 없이 충만한 나날들. 학문에 대한 욕구도 많아 부모님은 어느 정도 자란 빅토르를 뮌헨의 잉골슈타트 대학으로 유학보낸다. 집에서 공부할 당시 연금술에 많은 관심을 보이던 빅토르는 이 대학에서 신기한 경험을 한다. 여러가지 실험을 거듭한 결과, 엄청나게 징그럽게 생긴 새 생명체를 탄생시킨 것. 그는 도망친다. 그 또한 이러한 결과를 아마,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빅토르가 만들어 낸 단 하나의 괴생명체는 이후 빅토르의 생애를 지배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차례로 앗아가고, 그 자신 또한 심각한 정신병에 시달리게 된다. 단 하나의 사건, 여러번의 선택,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가 된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에게 마음이 쓸렸다가, 또 언어를 습득한 괴생명체가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에 또 마음이 일렁였다. 빅토르는 정말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걸까.

 

 

 그 생김이 어떻든, 그 근원이 어디이든 생명체는 사랑을 원한다. 작은 강아지에서부터 장성한 사람까지 모두 사랑이라는 큰 안전띠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같다. 빅토르에게 연민을 호소하는 괴생명체에게 처음부터 다른 반응을 보였더라면, 추방하고 배척하고 비난하는 대신 어떤 식이든 애정이 개입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결말은 비극적이다. 긴 호흡의 문장들이 이어졌지만, 읽는 내내 행복했다. 사랑, 그것을 받는 것이 뭐기에 말이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장 괴로운 법이야. 시간밖에는 아무 위로가 없으니까. 죽음은 악이 아니라든가, 인간의 마음은 사랑하는 대상의 영원한 부재 앞에서도 절망을 극복한다는 스토아학파의 주장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지. 카토마저도 동생의 시신 앞에서는 흐느꼈으니까.p.95.

자연의 매혹적인 풍경에 내 정신이 고양되었다. 과거는 기억에서 지워지고, 현재는 고요했으며, 미래는 희망의 밝은 햇살과 환희의 기대로 금처럼 빛나고 있었다. p.153.

나는 악마의 수장처럼 내 안에 지옥을 품고 있었다. p.183.

시련이란 사람들의 조잡하기 짝이 없는 감수성마저 그토록 무디게 만드는 법이다.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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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스!
햐쿠타 나오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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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부터 책 고르기가 훨 수월해졌다. 내 독서취향에 맞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찾아서 팔로잉 하니 읽고 싶은 책을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늘 머리속에 리스트가 있다. 이 책은 인스타에서 어쩌다 알고 읽게된 <수상한 북클럽> 이라는 청소년 도서 속 목록 중 하나. 읽고 있는 책에서 다음 번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물론.....전에 사 놓은 책이 재고(?)처럼 남고, 또 다시 책을 지르는 악순환이 있지만............)

 

 

복스는 읽는 내내 비슷한 일본 스포츠소설인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를 생각나게 했다. 종목이 하나는 육상, 하나는 권투로 차이나지만, 일본 고교생들이 스포츠에 매진하며 인터하이라는 고교대항전을 거친다는 점이 비슷하다. 초반엔 <한순간>과 비슷한 책이라 생각해서인지 아무래도 그때보단 읽기 측면에서 재미가 덜했다. 슥슥 넘어가는 페이지, 속도감 있는 경기묘사는 그 이후 등장인물들이 성장하면서 부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됐다.

 

 

이야기는 기타루와 가부라야라는 절친한 두 친구로 부터 시작된다. 기타루는 전형적인 모범생. 유약하지만 공부는 잘한다. 반대로 가부라야는 운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친구다. 중학교 때부터 권투를 시작한 가부라야의 권유와 일단의 사건들로 인해 기타루는 권투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 말라빠진 이 친구가 성실함으로 무장하더니 1년 만에 가부라야와 겨루는 최고의 선수로 성장한다. 기타루의 성장은 타고난 재능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 어느 쪽에 무게추를 두어야 행복한 삶일까.  

 

 

죽도록 해도 안되던 일은 참으로 많았다. 소설 속 기타루는 억세게 운이 좋아, 혹은 정말 더 죽도록 노력했기에 자신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 죽도록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왜 없겠는가. 어쩌면 그래서 가부라야가 가진 재능을 부러워 하는 게 우리의 더 솔직한 모습 일지도 모른다. 별다른 노력없이 슥슥 무언가를 해내는 그에 모습에는 노력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한 순간도 노력이라는 끈을 놓지 않던 기타루에게 더 많은 마음을 주게 된 건 그 속에서 아마 뛰어나지 못해 고군분투 하는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왜 권투를 선택했을까. 왜 상대를 때려 쓰러뜨리는 것이 목적인 스포츠를 고른 걸까. 게다가 자신이 맞을 수도 있는데. 질때도 있을 것이다. 가끔은 처참하게 나가떨어질지도 모른다. 늘 이긴 사람 수만큼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p.64.

"재능이란 양날의 검이지."
기타루는 다카즈 선생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다카즈 선생이 말을 이었다.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노력하는 기쁨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쁨 말이야......어떤 의미에선 불행한 일인지도 몰라." p.467.

"진짜 재능은 사실 노력하는 재능이야. 노력한다고 해도 힘들고 지겹다는 생각이 극복되는 건 아니잖아. 대충 때우고 싶은 마음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재능이 없는 거야. 진짜 천재는 노력을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지."
"노력을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그래, 즐거우니까, 좋으니까, 재미있으니까 하는 사람이 진짜 재능 있는 사람인 거지."p.477.

"재능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누구에게 어떤 재능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죠. 텔레비전에서 타이거 우즈를 보며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다만 그들은 자기 내부에 잠자고 있는 재능을 발굴할 기회가 업었던 거죠.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겁니다."p.525.

요코는 `이긴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지 처음으로 깨닫는 느낌이었다. 승패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승리는 과정 이상의 것이다. 승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고된 훈련을 감수하겠는가......p.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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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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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을 망설이게 되는 제목이었다.<분노의 포도>. 뭘 번역한건가 싶어서 원제를 봐도 grapes가 있으니 내가 알던 그 포도가 맞는데. 의문이 이해로 바뀌기 시작한 건 1권의 중반부부터. 책은 술술 넘어갔고, 가끔은 무릎을 쳤고, 또 가끔은 한참을 생각해야했다. 먹먹한 마음과 공허한 마음이 교차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현실을 생각하게 됐다. 이 소설이 출간된지 한참 지난 지금에도 왠지 어색하지 않은 상황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이야기는 살인죄로 복역하다 가석방 되는 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고향으로 돌아온 톰은 황폐화 된 토지와, 그 땅덩어리에서 밀려난 가족들과 캘리포니아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한평생을 작은 땅 어리에 의지해 살던 사람들이 트랙터가 몰고온 대량 생산과 노동력 절감으로, 한순간에 잉여인력이 된다. '먹고 살아야 하니' 이들은 길을 떠난다. 비옥한 토지와 일자리가 넘치는 그곳, 캘리포니아로. 도로에서 톰은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진 여행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형은 스스로 가족을 떠나고, 여동생의 남편조차 임신한 동생을 두고 떠나가버린다.

 

 

 나는 기다렸다. 이야기속의 톰이,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을 형성하고, 그들의 소리를 내기를. 그의 목소리로 하나가 아닌 둘의 힘을 보여주기를. 이야기는 결국 아무 형체도 없이 스러진다. 톰이 무언가를 '해 내' 기엔 두 권은 너무도 짧은 분량이었을까. 책장을 덮는 순간 깊은 공허가 몰려왔다. 인간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 낸 무형의 실체에 지배 당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 일터니 나는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물질의 비정함을 느껴야 하는지, 환경 앞에 무너지는 가족을, 아니면 그 와중에도 중심을 잡는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이거나 친절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속의 상황은 절대 우리와 거리가 멀지 않다. 언젠가부터 기계가 모든 일들을 해내게 되었고, 편리함만큼 인간의 쓸모는 사라져간다. 한 사람에게 부가 집중되고 나머지는 모두 가난해 지는 상황 또한 그렇다. <분노의 포도> 에는 어떤 방향을 추구 해야하는지 드러나 있진 않다. 단지...힘들고 아픈 사람들의 상황을 내 마음과 같이 느낄 수 있을 뿐. 그리고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먹먹해진 마음을 닫고 이 소설이 이야기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풍족하게 수확한 포도는 사람들의 분노를 안고 싸구려 포도주가 되었다. 사람들이 먹을 것도 부족한 이 마당에, 무엇이 그들의 손에 분노를 쥐어주는가.

 

등 뒤의 공포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지독하게 잔인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믿음에 영우너히 불이 켜질 만큼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p.252.

"아냐.그렇지 않아. 너도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면 안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지치기만 할 뿐이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게 되는 삶은 하나뿐이야. 만약 내가 그 가능성들을 다 생각해 본다면 견디기 어려울거다. 넌 아직 어려서 앞날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난 그냥 지금 이 길만 생각해. 그리고 식구들이 언제쯤 돼지 뼈를 더 먹겠다고 할지, 그런 것만 생각해." p.256

"그렇지 않아요, 여보. 남자들은 단계별로 인생을 살아요. 아이가 태어나고 사람이 죽는 것, 그게 한 단계죠. 농장을 일구고 그 농장을 잃는 것, 그게 또 한 단계예요. 하지만 여자들에게 삶은 전부 하나의 흐름이에요. 개울처럼, 소용돌이처럼, 폭포처럼. 강처럼 그냥 계속 흐르죠. 여자들이 보는 인생은 그래요. 우린 그냥 죽어서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계속 살아간다고요. 조금 변하기야 하겠지만, 삶은 계속되는 거예요." 2권.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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