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성미와 침침한 눈과 부실한 손목까지 자각하게 되는 슬픔은 순간. 자수는 제대로 놓지 못하지만 의욕을 불타오르게 하고 자수를 놓지 않고 보기만 해도 뿌듯한 히구치 유미코의 책은 언제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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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란 무엇인가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번역) 9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지음, 이용재 옮김 / 아카넷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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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사물을 원하는 자는 누구나 자신이 공화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국왕들 역시 공화주의자이다. 그러면! 당신은 민주주의자입니까? 아니다. 뭐요! 당신은 왕정주의자입니까? 아니다. 입헌주의자요? 천만의 말씀. 그러면 당신은 귀족주의자입니까? 천만에. 당신은 혼합 정체를 원합니까? 더욱 아니다. 그러면 당신은 뭡니까? 나는 아나키스트요. 알았습니다. 당신은 빈정대고 있군요. 이것은 정부를 겨냥한 말이군요. 결코 아니요. 당신은 막 나의 진솔하고도 심사숙고한 신념 고백을 들었다. 나는 질서를 아주 사랑하지만 그 말이 뜻하는 바 그대로 아나키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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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그릇: 조르조 모란디
필립 자코테 지음, 임희근 옮김 / 마르코폴로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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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디의 빛깔, 형태, 공간이 시인의 활자 안으로 고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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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이스-브룩의 작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르토뿐만이 아니다. 바이스는 이 연극을 통해 브레히트와 아르토를 결합시키려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아찔한 야심일세!(262)


나도 모르게 웃어버린 대목. 재밌어서가 아니다(그럴 리가). 

이 글을 쓰는 60년대 손택을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아찔한 야심일세!"



올해의 반을 훌쩍 넘기며 무슨 책을 읽었나 돌아보던 중 시선이 꽂힌 <해석에 반대한다>.

읽는 데 시간이 걸린 만큼 별점을 매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손택이 다루는 작품 중 접하지 못한 것들도 있고, 여러 의미로 두고두고 읽을 책이라 일독 후 별점을 주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 같달까. 초벌 지수는 별 4개 (반). 서점은 별 반 개가 없기에 적당히 올림과 내림을 하는데 이번만큼은 별 반 개가 아쉽더라. 해서 별 다섯을 눌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밀려오는 욕구, 손택의 '해석'을 흡수하고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은 (불가능한) 소망을 담아. 


별점을 준다는 것

따로 기록하는 표에는 0.5 단위로 매기기에 알라딘 별 반 개로 이렇게 고민할 일인가 싶지만 그래도 통일성 있으면 좋지 않은가.

영화 별점을 정리한 건 7년 남짓 됐고 책은 아마도 알라딘을 하고부터? 왓챠도 종종 쓰는데 일단 별 반개를 찍을 수 있고, 믿거나 말거나 '취향 분석'이란 것도 해준다. 난 지조파라나(소신파였나?) 뭐라나. 이가 빠진 듯 드문드문하던 기록을 노션을 쓰고부터 꼬박꼬박 하는 편인데 편리함도 그렇지만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하니 뭔가 있어 보여서(모양새에 약한 인간이라) 잘 쓰는 중. 그 사이 왓챠는 뒷전으로....(로그인하기 귀찮다).

개인적으로 영화든 책이든 별 3개와 4개의 차이보다 4개와 5개의 간극이 훨씬 크고 미묘하다. 나름의 기준으로 정한 역작(★★★★★)과 시한폭탄(☆) 10단계 중 시한폭탄급 책은 없는데, 요즘 실용서를 읽다 보니 쪼금 화가 치미는 책도 있긴 하다. 그래도 0.5점은 아직 없다. 영화는 있다......


소소한 여흥이면서 '자기 감수성’을 연마하는 손쉬운 도구가 별점 주기 아닐까. 심각할 필요는 없지만, 허투루 주지는 말아야겠다. 



평론가들은 연극을 편협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마라/사드>에 잠재해 있는 예술적 목표를 오해하고 있다. 바로 이런 오해 때문에 평론가들이 대부분 바이스의 희곡에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원작과 브룩의 연출이 보여준 출중함과 풍부함을 따져 본다면, 이런 불만은 배은망덕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P263

오늘날의 예술은 의식을 조절하고 새로운 양식의 감수성을 조직하는 새로운 도구다.
- P442

현대 예술의 기본 단위는 사상이 아니라, 감각의 분석과 확장이다.
-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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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란 무엇인가




『소유』 1840~1842

- 소유란 무엇인가: 소유에 관한 첫 번째 연구 (1840)

- 블랑키 씨에게 보내는 서한: 소유에 관한 두 번째 연구 (1841)

- 콩시테랑 씨에게 보내는 서한: 소유에 관한 세 번째 연구 (1842)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이 브장송 아카데미의 지원을 받고 쓴 연구논문으로 정당함과 권리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바로 세울 것을 촉구하며 공유제 포함, 소유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논증. "소유는 도둑질이다."


학술서라고 해서 빳빳한 글줄에 치이는 건 아닌가 했는데 의외로 프루동 선생님, 글을 재밌게 쓰셨다. 재미와 이해는 별개의 문제지만. "소유의 옹호자" 제롬 아돌프 블랑키의 말처럼 진지하고 힘찬 논리에서 기백이 느껴진다. 이런 패기 넘치는 연구 보고서에 아카데미는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제2판이 출간될 경우 서문(아카데미에 쓴 헌사)을 삭제하라고 엄중히 요구한다. 하지만 그럴 리가. 더욱 통렬한 글과 아카데미 회원이자 저명한 경제학자인 아돌프 블랑키와 논쟁한 내용도 싣는다.


프루동은 일생 대부분을 투옥 생활로 보냈다. 이에 필적하는 인물이 '블랑키주의'로 유명한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인데 그의 형이 바로 위에 말한 경제학자 아돌프 블랑키. <소유>의 첫 번째, 두 번째 논문은 블랑키에 대한 비판 및 '소유'에 관해 논쟁하는 내용이다. 한데 프루동이 소유에 대한 일련의 저술로 기소되자 저 "소유의 옹호자" 아돌프 블랑키는 프루동의 연구 자세를 높이 사며 그를 적극적으로 변호한다. 


프루동과 청년 마르크스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프루동은 점차 유물론에 반감을 드러냈고, 소유의 폐지가 아닌 개혁을 논하는 프루동을 마르크스는 프티부르주아라며 비판한다. 프루동과 블랑키(형제), 마르크스, 카베, 푸리에 등등. 변혁의 목소리가 이제 저마다의 색을 띠며 1848년을 지나 1871년으로 향하는 질풍 같은 모습이 그려져 괜히 두근댄다. 흥미는 격변에 비례하기 마련이니까. 지식도 함께 커지면 좋으련만, 눈이 침침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머리가 굳었는지 산뜻하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중간중간 손이 가는 중이다.



병렬식 독서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데는 소설이나 실용서를 더 보자는 올해 목표(아닌 목표) 때문인지도. 특히 추리소설이 당기는데 이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모두) 읽기에 도전 중이다. 게이고의 작품 중 흡족하게 읽었던 건 <명탐정의 규칙> 정도뿐이지만, 롱런하는 만큼 믿고 보는 작가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읽은 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 이 작품 이후 출간 작은 확실하게 안 읽은 게 맞다. 하지만 개정판도 많고 그래서 표지도 바뀌어서 읽지 않은, 읽은 듯도 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 화수분 같기만 하다. 익숙한 프로필 사진 때문에 중년으로 각인된 그도 어느덧 60대다. 연륜이 새삼스럽다. <용의자 X의 헌신>, <비밀>, <백야행> 등등 기억이 확실한 작품은 일단 뒤로 하고 차근차근 읽어 보기로. 근데 작품이 많아도 너무 많아 올해 안에(벌써 반이 지났는데) 다 읽을 수 있으려나. 정말로 히가시노 게이고 '무한 도전'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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