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은 마음을 열고 읽어야 한다고 깊이깊이 생각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 책은 지루하되 지루하지 않았던 묘하고 신기한 책이다. 제목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뭔가 호기심을 가지게 하는 제목이지만 도대체 '무엇인가'를 묻게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학창시절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자근자근 본문을 씹어대던 수업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깐 이 책은 마음을 열고 봐야 한다. 잘 빠진 만화를 보듯, 큰 의문은 가지지 않고 온전히 이야기에 빠져야 한다.

  그랬다면 오랜시간동안 책을 곱씹어 읽지는 않았을텐데.

 

  단 이 책을 읽을 때는 등장인물과 상황을 꼼꼼하게 보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아가씨의 이야기에서, 선배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디선가 봤던 그 곳, 그 장면, 그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묘~하게 얽혀있는 그것을 찾아내는 재미가 정말 쏠찮다.

 

  과연 지브리니 뭐니 하며 만화를 빗대 이야기 할 만했다. 굳이 덧붙여 이야기하자면(전혀 쓸데없다) 이백할아버지는 마녀 유바바같았고 우리가 짐작하지 못할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아가씨는 낯선 세계에 떨어진 앨리스라고 말할 수 있고 그녀를 인도하는 정체모를 사람들은 모자장수나 체서고양이라고 할 수 있었고, 선배는 진정 괴팍왕이었다.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장면이 상상된다. 나는 특히 자신을 텐구하고 소개하는 히구치가 신비한 밤의 세계에서 입으로 종이 잉어를 뽑아내는 장면이 인상깊다. 검은 밤, 노랗고 붉은 불빛, 그리고 떠다니는 종이잉어.

  이런 식으로 책을 읽으면서 장면 하나하나가 꼭 만화처럼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서 앞서 지루하되 지루하지 않은 책으로 남은 것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듯한 비좁은 골목. 신비한 밤의 세계, 어른의 세계라며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발을 내딛던 아가씨는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술을 마시는 것에 이길 자 없던 이백할아버지와의 대결에서 이겼고, 헌책시장에서는 깊이 바라던 책을 얻었다. 학교 축제에서는 당당히 축제의 핵심이었던 괴팍왕 연극의 주연을 맡았고, 마침내 선배와...

 

  어리숙한 듯 하면서 당당하게 자신만의 눈으로 현실을 보는 아가씨의 이야기와 반대로 선배의 시선은 웃긴다. 스토커 마냥 그녀를 쫓아다니며(거의 반년은 그렇게) 그녀와 친숙해진다, 눈도장을 찍겠다라는 계획대로 움직인다. 아, 덧없는 사랑이다, 전전긍긍 짝사랑에 어쩔 줄 몰라하는 선배가 눈에 선하다. 아가씨는 전혀 눈치도 못채는데. 신비한 밤의 세계로 발을 내딛던 그녀를 쫓아가다가 바지와 속옷을 강탈당하고, 헌책시장에서는 그녀를 위해 그림동화책을 쟁탈하기 위해서 죽을만큼 매운 맛을 견디는 등 최선을 다해 그녀를 쫓아간다. 

 

  대부분 밤이나 사람이 많은 때의 이야기가 많다. 신비한 밤의 세계라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그닥 환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라면 그곳은 환상적이고 달큰하고 향긋한 술향이 유혹하는 듯 하다. 이백할아버지의 가짜 전기부랑을 나도 마셔보고 싶을만큼.

  밤이 가지고 있는 환상. 그 환상이 아무도 모르게 혹은 아는 사람만 알 수 있게 하는 특별한 날.

  예를 들어 사람이 북적대는 축제나 시장같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때. 나도 모르게 굴욕적인 모습을 담보로 하는 경매가 일어나지 않을까. 아는 사람만 아는 재미있는 내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덧 : 아가씨의 '두발 보행 로봇의 스텝'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 Euny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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