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십결
장소영 지음 / 두레미디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구입한지 어언 4달여 만에 책을 읽게 되었다. 여러 이웃님 블로그에 몇 차례 남긴 말인데, 봐야겠다는 마음은 큰데 선뜻 손이 잘 안가는 책이었다. 아, 근데 뭐야 다 읽고다니깐 후련한 건 둘째치고 너무 재미있잖아!

 

  장소영님 글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게 몇가지 있다. 좀 특이한 소재를 사용한다. 잘 생각해보지 못한 직업을 선택한다는 말이다. 나름 로맨스소설계, 혹은 동인계조차 없으면 어설픈 재벌이라든가 재벌2세라든가 범인들은 아예 하지 않는 아주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던가 하는 직업이 아닌, 순수하게 생각도 잘 해보지 못한 일을 소재로 만든다. 군대시리즈였던 초기작 '어느 전투 조종사의 사랑', '단 하나의 표적', '자유를 향한 비상구'에서 군인의 각 분야를 다양하게 다루고, 게다가 아직까지는 특별하고 낯선 여군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특히 '어느 전투 조종사의 사랑'에서 주인공 지윤은 남자이기에 용인되고 여자이기에 넘어갈 수 없는 권위적인 공군에 질려있었고, 더 독하게 굴지 않았던가.

  그리고 다음 '클럽 빌리어드' 에서는 당구 선수에 대한 글을 적었다. 나는 당구 클럽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당구 선수라고 하면... 사실 자욱한 담배냄새와 욕설, 내기, 짜장면에 단무지가 떠오른달까. 당구가 좀더 고급스럽고 대중적인 스포츠이구나.. 그래 스포츠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위기십결 다음, 최신작인 '아이스월드의 은빛유혹'에서는 의사인 현수는 무려 남극 세종기지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과학자인 태훈을 만나게 된다.

  이런 식으로 허를 찌른다고 할까, 그래서 장소영님의 신간은 언제나 기대된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둑이야기 '위기십결'이다. 책의 각 장은 바둑용어가 있고, 그 용어에 맞는 상황을 제목으로 지어 이해를 돕고 있다. 바둑에 대해 어떤 추억이 있는가? 여자라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막내 나이보다 더 어렸을 때, 지금부터 10년도 전에 아마... 바둑이 유행했는가보다. 술에 달큰하게 취해서 들어오신 아버지는 우리 자매 둘을 앉혀놓고 한자와 바둑을 가르쳐주셨다. 영리(하다고 쓰고 영악하다고 말하는)한 둘째는 쏙쏙쏙 잘 빠져나가는데, 나는 술이 깨면 지금 이 상황을 기억하지 못할텐데도 열심히 듣고 또 들었다. 하지만 한문은 얼추 아버지의 기대에 맞게 흥미가 갔는데, 바둑이라면 바둑알 따는 방법과 집만 셀 줄 안다. 그리고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 바둑중계를 하면 틀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딱딱딱 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상황에서 아주 집중해서 바둑판을 쳐다보는 그 사람들이 너무 신기해서...(같은 맥락으로 교육방송도 즐겨듣는다. 특히 수학과 사회부분으로다가;;)

 

  이정도 배경지식에서 본 위기십결은... 참 공감대가 크다.

  차경과 나는 적어도 바둑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관심도 그닥 없으며 고리타분하고 지겨운 나이든 아저씨와 할아버지들, 그들만의 놀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그 바둑판위에서 백과 흑돌이 왔다갔다 하면서 놓는 것도 이해되지 않고, 아! 그러니깐 세상을 흑과 백, 나와 피아, 나 아니면 적으로 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확실히 '위기십결'을 읽고 바둑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시험기간에 공부는 하지 않고 책을 읽다가 이제 자려고 할 때 쯤, 우연히 조치훈9단과 이세돌9단의 대국을 보았습니다. 아, 조치훈9단은 일본선수더라구요. 좀 놀랬음. 어쨌든 날카로운 침묵속에 바둑알이 바둑판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잤습니다.(하지만 조치훈9단은 일본사람이 아니라 한국사람이고, 귀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로맨스소설로 본 위기십결에서 남자주인공은 점점 더 말이 없어지고 있다. 언젠가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는데, 장소영님 글을 보면 남자주인공들이 정말 커보인다.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을 포용해 줄 것 같은 그런 너그러움과 이해심 말이다. 단단하고 굳건해서 조용히 날 이해해 줄 것 같은 그런 느낌. 굳이 장소영님의 다른 책들의 남자주인공과 한서일을 비교해보자면, 좀... 약해보이는 느낌이 들기는 든다. 정말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만 보여서 그런가, 적어도 군대시리즈에서 남주들이 터프하달까 좀 강하게 나가면서, 소유욕을 보이고 내 여자는 안되 하면서 갑자기 보수적으로 변해버린다면, 한서일은 눈빛과 행동으로 모든것을 보여준다.

  정말 말보다는 강한 눈빛과 행동으로... 하지만 가끔 차경이한테 한 두 번씩 반말을 할 때 왜 이렇게 내가 떨리니... 이리와요, 했다가 이리와(p.362), (신발을) 벗어(p.389) 라던지, 정말 하악하악이다. 이러니 한서일은 좀 다른 의미로 강하다고 본다. 겉과 속이 부드럽게 강하달까. 그래서 마음에 쏘~옥 드는 것이. 나도 내조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무슨 이런 말을!!!

 

  차경이 시작은 어떻게 했든 바둑이라는 세상에 모여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 온 사람들을 속이고있고, 한서일을 속이고 있고, 선생님을 속이고 있고, 그래서 죄책감을 가지던 부분이 많이 안쓰러웠다. 그놈의 기자, 특종이라는 것이 뭐길래 자신의 인간된 양심과 도덕을 잠시나마 버리고 사람들을 본의아니게 속이게 된 부분에서, 그리고 그것때문에 아파하고 끝내 사표까지 던지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쌩뚱맞게도 나는 떳떳하게 살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사실을 알게 된 한서일은 차경이를 쫓아놓고서, 그녀가 귀국했다는 소식에 오히려 충격을 받는 부분에서... 이 부분이 떠올란다. 한서일의 스승인 조인동선생이 처음 서일을 봤을 때 6살에 좀 짓궂다 싶을 정도로 강아지를 괴롭혔다, 라든가 4년동안 방황을 했는데 도박을 했다던가 하는 부분. 사실 그는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좀 장난스럽고 짖궂은 사람이 아닐까. 물론 여기서 말을 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상당히 중요하다. 커보이고 중국어까지 완벽하게 해보이던 그도 그녀와 오붓하게 함께 있기 위해서 으슥한 골목길이나 인적드문 갈대밭을 찾기도 하니. 흐흐흐. 내 추측은 이렇게 점점 신빙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 Euny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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