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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몰입.상상.소통을 노래하는 글 없는 그림책 ㅣ 날개달린 그림책방 19
마리예 톨만.로날트 톨만 지음 / 여유당 / 2017년 11월
평점 :
바다와 빙하. 그리고 하늘이 너무나 평온한 빛을 내는 그림책 한 권을 만났다.
춥다고 웅크린 어깨가 풀어지고 잔잔한 미소가 나에게 찾아오는 그 순간,
코끼리의 긴 코에 매달려 코끼리의 시선을 빼앗는 너무나 다정한 모습이 내 눈을 가득 메운다.
평범한 코끼리의 모습인데 노란책 표지의 책 한권의 효과일까,
코끼리는 너무나 진지해보이고, 책의 바다에 빠진 듯 입꼬리가 올라간 모습이 너무나 다정하게 느껴진다.
슬쩍 다가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차가운 빙하 위를 걷는 코끼리와 그 뒤를 따라 발맞춰 걸어가는 펭귄 친구들.
뒤뚱뒤뚱 코끼리의 뒤를 따르며 열심히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코끼리가 읽어주는 책을 듣고 있는 것만 같다는 나만의 생각에 빠지기에 너무나 안성맞춤인 그림이다.
겨울의 모습에서 겨울이 느껴지지 않는,
코끼리가 코에 꽂은 책 한권이 추운 바람과 얼음의 온도까지 데워준다고 생각하니
책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라는 느낌이 가슴에 와 닿는다.

코끼리에게 책은 공기와 같다. 어디를 가든, 어떤 자세로 길을 가든 그의 몸에는 책 한권이 꼭 함께 한다.
바닷가를 거닐며 자연을 벗삼아 산책하는 순간에도 책이 함께 하고,
그가 사랑하는 책들은 바다의 모래알이 되고,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이 되기도 하고,
그가 걸어가는 길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다양한 동물들이 곁을 맴돌고 지나치기도 하고
그와는 다른 생활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는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며 그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숨을 쉬고 체온을 나눈다.
다를 뿐 혼자가 아니다.

도시를 지나고 초원을 지나고,
그에게 많은 시간이 흐르고, 주위에 변화가 찾아왔지만 그는 여전히 책을 본다.
새로운 이들의 다가섬에도 그리 불편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누리며 그 삶 속에서 새로움을 만나고 적응해가는 그는 항상 여유롭고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모습을 우리에게 전한다.

그는 책 한 권을 들고 온 세상을 구경했고, 온 세상의 많은 이들을 만났으며
도시 곳곳을 누비며 온전한 자신과 마주한다.
그리고 그의 삶은 다른 많은 이들에게 작지만 큰 영향을 끼치며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그의 뒤를 따르던 펭귄들이 그의 주위로 몰려들어 그가 들려주는 책을 듣는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인지,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그의 목소리로 전달한다.
펭귄들은 평온한 바다와 빙하 위에서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오는 책 속의 새로운 세상을 만나며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만나며 자신의 또 다른 삶을 꿈꾼다.

평온하고 따스함을 내뿜는 도서관.
그 곳에 함께 하는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부모의 뱃속에서부터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만의 언어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또 다른 세상을 꿈꾸며 환하게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우리 아이들.
맘에 드는 책을 읽고 또 읽어 책장이 너덜너덜해지고 책장이 찢겨져 나가도 소중한 단 한권의 내 책.
이것을 가지고 있는 아이의 꿈은 나와 다를 것이고,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지금의 나의 세상보다 훨씬 따듯하리라.
책을 읽으라는 어른들의 백번의 말보다
코끼리의 책 한권이 어른들의 손에 들리고,
코끼리의 책 한권이 세상을 돌듯,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주고
코끼리가 책을 읽어 주듯, 나의 아이를 향해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의 가슴엔 뜨거운 빛이 피어날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꿈꾸는 아이들의 삶은 분명 평온할 것이다.
마리예 톨만과 로날트 톨만 부녀가 함께 그린 『책』
아빠와 딸이 책이라는 한 가지 주제로,
어른이 아이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고,
아이가 어른에게서 받은 영향을 잔잔한 색채와 함께 조용히 건네준다.
책이 우리에게 주는 설렘이 따스함으로,
이 겨울이 더 따스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