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초판된 『모모』는 노란 표지 속에 누더기를 입은 한 아이와 걸음을 옮기기 위한 거북 그리고 바닥에 놓인
시계가 눈에 띄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리를 둘러싼 건물과 바닥까지 모두 시계로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2017년에 만난 『모모』는 블랙
에디션의 이름에 맞게 검은 바탕과 회색으로 덮힌 거북 등껍질에 노란빛이 선명하게 『모모』를 밝혀내고 있으며, 그 겉지를 들춰보면 다양한 색들이
서로 연결되어 또 다른 모양을 만들어내며 그 속에서 모모를 형상화하여 부각시켰다. 거북의 등껍질에 선명하게 새겨진 『모모』는 모모를 위기에서
구해준 거북이 카시페리아를 의미한다는 것을 중반쯤 넘어가면서 "아하, 그래서 이렇게 표현했구나."라는 반가움의 탄성으로 대신할 수 있다.
올해 초,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면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 좀 더 깊이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모든 관계 속에서 갈등이란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어야 하고, 나 또한 나의 이야기를 충분히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쭉 말하는 것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집중해서 듣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이야기하면서 정리를 동시를
해야 하는 것도 다른 생각이 들지 않게 집중하면서 잘 듣고 있음을 알리는 리액션도 가미해야 한다. 내가 듣기에 충분히 연습되지 않았지만
노력만으로도 상대방은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여왔고, 나 또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꽤나 큰 체력 소모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처럼 들어만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상대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다시금 느끼는 요즘인다.
『모모』 또한 어느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로 문제를 정리하고, 그 문제는 그 말이
정답이라도 된 듯 해결되어 끝이 난다.
내 인생은 실패했고 아무 의미도 없다,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마치 망가진 냄비처럼 언제라도 다른사람으로 대치될 수 있는 그저
그런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모모를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말을 하는
중에 벌써 어느새 자기가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다, 그렇게 때문에 나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모모는 그렇게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26쪽
우리는 하루가 바쁘게 지나간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하루를 알차게
보내기 위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처럼 잠깐의 여유가 있으면 나태해졌거나 혹은 남들보다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무언가를 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시간을 보내기 위한 또 다른 거리를 찾는다. 나또한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정보를 모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나 자신을 위한 무언가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자신보다는 사회에 맞는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물음이 생기기도 한다. 아마 이 물음은 『모모』를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들 무슨 일인지 대강 짐작은 하겠지요. 친구들이 이 비밀 집회에 초대하면서 말했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시간을 아끼고 있는데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낀 시간은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모모가 진실을 알아냈습니다! 말 그대로 시간 도적단이 시간을 훔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 냉혹한 범죄잡단의 활동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함께 일할 마음만 있다면, 우리 모두를 덮친 이 무서운 허개비들이 벌인 소둥을 단번에 끝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싸워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기기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이들은 요란하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163쪽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 곁에 다가온, 회색신사.
그들은 사람들이 쓰는 시간들을 아주 작은 쪼개로 모아서 계산하고, 그 허비되는 시간들을 모아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낭비하는지,
그로 인해 자신들이 모을 수 있는 시간들은 얼마나 많은지 계산하고 또 계산한다. 그들이 다가오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허비하고 있는, 주위를
살피는 작은 행동도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대로 수긍하게 된다. 자신을 위한 시간만이 중요함은 우리도 잘 알고
있기에 반박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이 반박할 수 없게끔 시간을 계산하고, 합산하여 통계치를 내준다. 사람은 큰 숫자에 당황하고, 그만큼
모을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그 말에 자신이 그 동안 헛된 삶을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자기 반성과 패닉에 빠지게 된다. 회색신사가
바란 것이 그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입가에서 미소를 훔쳐가고, 눈에서 다정함을 잃게 하며, 가슴에서 공감을 빼앗아가는, 회색신사들의 계략은 성공한 듯 하나, 모모와
모모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거북으로 인해 그들은 위기 의식을 느끼며 그들에게서 많은 이들의 삶을 피폐화 시키기 위해 추격전이 벌어진다.
"모모, 네가 보고 들었던 것은 모든 사람의 시간이 아니야. 너 자신의 시간이었을 뿐이지.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네가 막 다녀온 장소와 같은
곳이 있단다. 허나 그것에는 네가 데리고 가는 사람만이 갈 수 있어. 게다가 보통 눈으로는 그 곳을 볼 수 없지."
"그럼 제가 갔던 곳은 어디예요?"
"네 마음속이란다.'
'호라박사님, 제 친구들을 박사님께 데려와도 될까요?'
'안된다 아직은.'
'그럼 전 박사님 집에 언제까지 있을 수 있어요?"
"네가 네 친구들에게 돌아갈 때까지란다, 아가.'
'별들이 들려준 얘기를 친구들에게 하는 건 괜찮나요?'
'괜찮지. 허나 해 줄 수 없을 게야?"
"왜요?"
"그러려면 우선 네 안에서 표현할 말이 자라나야 한단다."
"그래도 전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걸요. 모든 걸 말예요! 친구들 앞에서 제가 들었던 소리를 노래 불러 보고 싶어요. 그럼 모든
일이 다시 좋아질 거예요."
"모모, 정말 그러기를 바란다면 우선 기다릴 수 있어야. 해."
"기다리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아가, 기다린다는 것은 태양이 한 바퀴 돌 동안 땅 속에서 내내 잠을 자다가 드디어 싹을 틔우는 씨앗과 같은
거란다. 네 안에서 말이 자라나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야. 그래도 하겠니?"
"네." 258~259쪽
우리의 삶은 기다림에서 시작해서 기다림으로 맺음을 한다.
우리 엄마가 나를 갖고 낳기까지의 기다림에서 성장해서 자기 몫을 해 낼때까지 기다려주고 뒤에서 바라봐준 그 기다림을 지금 나는 우리 집 두
소녀를 키우며 기다림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다. 기다림에 지쳐 재촉하기도 하고, 기다리고 있음을 생색내기도 하면서 기다림을 이어간다.
이 기다림 속에는 나의 시간이 포함되어 있으며,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이지만, 나만이 가지고 있는, 나만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맞춰진 시간의 추만큼 나는 움직이고, 나를 키워나간다. 그것이 성장하는 속도만큼 내 가슴속에서는 새로운 싹의 틔우고 땅을 뚫고
세상으로 나올 것이다.
"좋아,갈게. 하지만 좀 빨리 가게 널 안고 가면 안 될까?"
"미안하지만 안 돼."
"왜 꼭 네가 직접 기어가려고 하는 거니?"
"길은 내 안에 있어."
이 말과 함께 거북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모모은 거북을 따라 갔다. 천천히, 한 발짝 한 발짝씩 359쪽
우리는 자기만의 인생 속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원하는 속도를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원치 않지만 주변에 맞추어 자신의 속도를
조절해 가는 사람도 있다. 어떤 속도인가보다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그 방향이 내가 원한 방향은 맞는지 뒤돌아보며 조정할 수 있는
여유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길은 분명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 길은 나만이 알고, 내가 걸어가야만 길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겹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89쪽
『모모』를 처음 만났던 그 때의 나와 오늘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힘들고 지쳤던 20대에는 꿈을 이루기
위한 절실함에 귀 기울이고, 주위를 돌아보는, 보듬어주는 여유있는 가슴을 갖지 못했다. 나에게 가시박힌 한 마디에 상대와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급박함만이 자리했던 것 같다. 오늘의 나는 여전히 내일을 꿈꾸면서 관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좀 더 다독거리는
여유가 생겼다. 『모모』를 세월이란 시간을 두고 두 번의 만남이 이루어진 지금, 나는 분명 성장했으며 시간이 주는 변화를 수긍하고, 그 시간
속에서 얻어진 것들을 체득하면서 달라진 오늘과 달라진 내일을 기다린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나의 40대는, 시간이 주는 변화가 충분조건이 되어 또 다른 시간을 만날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