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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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글

창비 』


내가 첫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할 때 친정아버지는 그러셨다. "너도 이제 자식 낳았으니, 아빠 맘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하고 말이다. 우리 첫째가 17살이 된 지금까지 난 여전히 아빠의 맘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빠가 나에게 그리고 나의 형제들에게 바란 '이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경로를 모른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부족해서 부인에게 모성을 기대하며 살았던 아빠,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이 부족해서 자식에게 사랑을 주기보다 사랑을 받기 원했던 철부지 아빠다. 당당하게 혼자 서지 못하는 아빠를 항상 지켜봐주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엄마의 희생을 보고 자란 우리 형제들에게는 아빠는 의지할 언덕이 아닌 지켜야만 하는 의무의 대상이 되어간다. 그래서 슬프고 안쓰럽고 그의 삶 또한 편안치 않았겠구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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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잃은 그녀는 웃음도 잃고 주변을 살피는 일에도 방관자가 되었다. 그녀의 변화를 가족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그녀의 가슴에 더이상 짐을 지울 수 없었고, 지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 그녀가 처음으로 마음이 흔들린다.


친정엄마가 서울 병원 진료를 위해 J시를 떠나오는 날, 눈물을 흘렸다는 아버의 소식을 동생에게 듣고 난 후, 그녀는 엄마대신 아버의 곁에 있어야겠다는 문득 든다. 그 즉시 가방을 챙겨 아버지가 계시는 J시로 내려온다. 혼자서 잘 있을 거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아버지는 식사조차 잘 챙기지 않는,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버지에게 엄마는 세상이고 친구였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꽤나 열심히 살았던 아버지와 힘이 모두 빠진 듯한 그의 모습은 너무나 낯설지만, 인간적으로 보이기에 그녀는 아버지와의 시간이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지나간 시간들과 마주한다. 아버지를 모른 척했던,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가슴 한 켠을 짓누르고 있는 미안함이 올라오고, 아버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던 때가 떠오르고, 아버지가 세상을 살았던 그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라 그리움과 안쓰러움이 공존한다.




우리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사회가 변화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아버지상도 변하고, 세상이 원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아버지'란 세 글자는 여전히 외롭고 쓸쓸하며 세상과 맞서 싸우다 진이 다 빠져 집으로 돌아오는 지친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가장의 무게와 세상이란 전장이 주는 두려움 그리고 자신의 꿈과는 다른 세상과 타협해야 하는 구차스러움이 아버지들의 어깨를 더욱 나약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성인이 된 딸이 홀로 남겨진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오면서 지나가 버린 아버지와의 시간과 지금의 아버지와의 시간을 공유하면서 가슴 속에 담긴 말들을 조심스레 들춰본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지닌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아버지의 뒷모습은 또 다른 슬픔으로 다가오며, 쉽게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어느 새 정해져있음이 느껴져 더욱 슬프게 만든다.





신경숙님의 『아버지에게 갔었어』을 읽으면서 나의 아버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멀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왜?라고 했던 수많은 질문들이 조금씩 자리를 채워가며 나의 마음을 조금씩 정리한다. 누구에게나 처음이었을 '관계'라는 울타리 속에서 지켜야만 하는 자와 밖을 향하는 나가고만 싶은 자와의 만남은 어찌 보며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고리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어긋한 고리의 끝을 어떻게 맞춰가는지가 바로 '관계'가 주는 가장 커다란 숙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 견해를 담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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