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저물어가는 생을 축복합니다
강신주 지음 / 엘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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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쯤이었을까. 학부모 연수가 있어 교육청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강연자로 나오신 어느 한 중학교의 교장선생님께서 '삶과 죽음'에 대한 발제로 여러 책에서 다뤄지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연수의 내용으로 조금 무거운 게 아닐까 우려되는 마음이었는데, 우리의 삶은 항상 죽음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분의 강의가 마음을 차분하고도 의미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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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저물어가는 생을 축복합니다』 는,

아버지와 엄마는 딸이 있는 미국으로 오신다.

가족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 아버지는 낙상하고

81세 이춘산과 87세 강대건은

영영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3년 후, 아버지 강대건은 영면하신다.

3년이란 시간동안

엄마와 함께 간병의 시간을 가진 딸 강신주가 쓴

감사와 사랑, 존경의 메시지를 실은,

아버지에게 드리는 작별 선물이자

강대건의 딸 인간 강신주의 그리움을 담아낸

편지같은 에세이다.

     

지난 달 친구의 시아버지 부고 소식에 늦은 저녁 길을 나섰다. 검정 옷을 준비할 나이가 되었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찾은 장례식장엔 고인의 첫째 손자인 친구의 아들이 할아버지의 떠남을 인사드리는 상주의 자리를 맡아 인사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떠나시는 분이 참 든든하겠다 싶었다. 그 순간 중2의 나이에 엄마를 떠나보내야 했던, 가장 든든한 나의 편이었던 이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나의 남편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나도 모르게 속이 메어왔다. 성인이 된 후에 만난 나의 남편, 그의 아픔과 상처를 지금에야 내가 열어본 게 되었다. 새벽에 들어와 잠이 든 두 소녀와 남편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의 아빠는 75세, 엄마는 74세. 어느덧 염색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흰머리가 나고, 손마디는 굵어지고 섬세한 작업이 힘이 들고, 걸음걸이는 느려졌다. 일어날 때마다 무릎에 절로 손이 가는, 8명의 손자 손녀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면 제날짜에 검진가고, 의사가 주는 약 꼬박꼬박 잘 먹는 거라고 하시는 두 분의 건강은, 앞으로 좋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더 나빠지지만 않기를, 두 분이 원하는 대로 온전한 정신으로 자식들과 이별할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래본다.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를 모시고 엄마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마다, 나는 둘째를 업고 첫째의 뒤를 따라가던 예전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만 가득했던 당시와는사뭇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낀다.

엄마였을 때 나의 의무는 아이들이 나의 품을 떠나 독립할 수 있게 키워내는 것이었다.

지금은, 부모님이 나의 품을 떠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나의 돌봄은 슬픈 끝맺음을 예고하고 있다. 79쪽


『우리의 저물어가는 생을 축복합니다』 의 첫장을 읽은 순간부터 가슴이 쿵 내려앉으면서 묵직함을 느낀다. 딸이 아버지와 3년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쓴 글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읽기 시작했음에도, 언젠가 부모님을 보살펴야 하는 자식이기에 읽어보겠노라고 생각하고 펼쳤음에도 《3년 후, 아버지 강대건은 영면하신다》 글귀를 읽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오고 만다. 누군가의 아버지는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이별하고, 추억되고, 그리움으로 남는다.

               

아버지의 낙상은 골절이라는 가벼운 증상만 주지 않는다. 많은 연세와 급격히 떨어진 체력 그리고 지병이 더해지면서 한국으로의 귀환은 무너져내리고 만다. 그 때부터 시작된 엄마와 딸의 간병은 따듯하고도 치열하게, 마음이 아프면서도 곁에 함께 있음으로 감사하게, 겁이 나면서도 사랑스럽게 시작된다. 아버지에게 맞춰진 시간을 가족들의 도움으로 잘 견뎌낼 수 있었으며, 오로지 아버지에게 매달려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닌 자신만의 시간으로 내면을 충전하면서 환자를 돌봄으로 서로가 충만한 헤어짐을 준비해 나가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현명한 그들의 선택에 깊은 포옹을 보낸다.

 

엄마는 나의 손을 보고 가슴 아파했다.

 "하얗고 곱던 네 손이 어쩌다가 내 손처럼… 우리 때문에 고생해서 너무 미안하구나."

말도 안 되는 소리. 내 손이 엄마 손 같다니!

내 손을 어디 엄마의 세월에 비하겠는가.

내 손은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르게 쓰이고 있다.

나는 내 손 덕분에 해보지 못한 것을 해보고,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내 손으로 아버지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고, 내 손으로 아버지를 외로움과 두려움에서 보호해드릴 수 있고, 내 손으로 한 인간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내 손이 감사하다. 55~56쪽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40대 중반을 넘기는 지금 이시간까지 가까운 이를 잃은 슬픔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의 공허감과 그리움의 깊이를 알지못한다. 대학시절 엄마를 잃은 친구는, 시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무섭다고 했다. 그 때의 그 슬픔과 우울이 같을 수는 없지만, 이미 경험해 봤기에 그 시간을 다시 겪어야 한다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누구나 한번 아니 두번 또는 그 이상을 겪어내야만 하는 우리 삶,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부모의 노년과 곧 다가올 우리의 노년을 좀 더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다스리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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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이춘산과 강대건의 딸 강신주.

 그녀는 아버지 강대건의 마지막을 꿋꿋하게 그리고 의연하고도 침착하게 맞이하며 그리움을 담아 떠나보낸다.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을 담아낸 『우리의 저물어가는 생을 축복합니다』를 통해 자식의 자리가 무엇인지를 잔잔하게 흘려보낸다. 사랑만준 부모가 마지막에 자식에게 사랑을 받고 떠날 수 있는 영광을 주었고, 앞만 보고 달려온 부모가 자식의 올곧은 성장을 훈장대신 가슴에 담아 갈 수 있게 해 주었고,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외롭지 않게 떠나보내주었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베푼 손길과 정성은, 딸인 나에게 울림과 반성 그리고 떠나보냄의 깊이를 느끼게 해 준다.

 

나는 죽음의 순간에 '인간 강대건'을 보았다.

죽음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인간' 그 자체가 되는 순간, 인간의삶에서 유일하게 평등한 순간이다.

나는 강대건의 자유를 축복한다.

동시에 영원한 나의 아버지 강대건을 그리워한다. 180쪽

 

아버지 강대건을 떠나보내는 딸 강신주를 존경합니다.

딸 강신주를 강인하고도 사랑가득한 자녀로 성장시킨 아버지 강대건을 존경합니다.

남편 강대건과 딸 강신주의 곁에서 사랑과 감사함을 표현하며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이겨내시는 어머니 이춘산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딸 강신주의 삶을 인정하고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준 강신주의 남편님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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