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게일 허니먼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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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또는 의도적으로 수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관계 속을 들여다보면, 나와 잘 맞는 이보다는 맞아가기 위해 삐걱거리는 톱니를 맞춰가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다채로운 빛을 가지고 태어나 그 빛을 발산하며 살아간다. 그 빛이 환하게 빛나기도, 은은하게 다른 빛과 어울릴 수도, 본연의 색을 잃고 또다른 빛을 내기도 한다. 그것이 관계가 주는 힘이자 영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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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 올리펀트는,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낼 줄 안다. 또한 자신이 맡은 일을 마치 자신의 구역을 지켜내듯 책임을 담아내는 그릇도 잘 다듬어져 있다. 단 그녀는 극히 평범한 이들과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그들의 일상이 완벽히 이해되지 않으며, 그들이 행하는 일들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그들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스스로 혼자만의 시간에 자신을 맡길 줄 아는,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무척 귀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8시 30분에 출근, 휴게실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점심 먹고 난 후에는 크로스워드 퍼즐을 풀고, 반드시 개인컵에 차를 마시는 그녀만의 세계는 지극히 평범하고 별거 없는 삶이지만, 그녀만의 세계에 갇힌 채 섞이지 못하는 그녀의 존재는 같은 공간에 있는 이들에게 불편하기 그지없으며, 별다른 사람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며, 가십거리가 되기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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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 올리펀트는, 사회복지사의 방문을 주기적으로 받는 보호대상자이며, 정해진 시간에 엄마와의 통화를 해야 하는, 무척 규칙적이며 원치 않지만 누군가에게 꾸준히 삶의 모습을 오픈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는다. 그녀가 가슴 속에 안고 살아가는 지난 날의 시간들이 여전히 그림자로 남아있다는 것이 그녀를 틀속으로 옭아매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꿋꿋함은 오히려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는 금요일 밤 피자와 와인, 보드카로 일주일의 긴장을 풀어주는 자신만의 힐링이 무엇인지 아는,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에서 그녀의 내일은 분명 다를 것임을 느낀다. 그녀의 삶에 드리워진 그늘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렇게 그녀를 가두는지 그녀가 스스로 삶이란 세상에서 나오는 그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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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 올리펀트는, 혼자서 조용히 반복되는 일상과 마주하며 잘 살아가고 싶다. 아주 소박하고 단조롭지만 그것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녀는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도 변화는 찾아온다.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엘리너 올리펀트는, 회사 이벤트 당첨으로 가게 된 공연에서 만난 밴드의 보컬에게 한눈에 반한다. 자신을 가꾸는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기에 이르고, 보컬과의 사랑에 대한 환상으로 그 동안 꿈꾸지 못했던 또 다른 행복을 만끽하게 된다. 반복되는 그녀의 일상에 사랑이란 감정은 그녀의 고립된 마음을 열어주고, 또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직장 컴퓨터의 고장으로 만나게 된 IT담당 레이먼드. 눈치도 없고 전혀 엘리너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외모와 냄새를 가진 그와 함께 퇴근을 하면서 길에서 쓰러지는 노인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일에도 관여하고 싶지 않은 엘리너는, 레이먼드의 재촉과 제안으로 노인의 짐을 맡게 되고, 병문안이라는 것을 가기에 이른다. 도움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원치 않은 그녀에게 레이먼드와 노인은 그녀의 일상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그녀의 마음을 두드려온다.

우리는 관계를 갖기 전부터 성급하게 단정짓고, 나의 추측이 사실인 듯 나의 추측에 모든 것을 끼워맞추는 실수를 곧잘 한다. 첫 만남이 그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믿는 어리석음이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좋은 사람과의 관계를 잃게 하기도 한다.

우리의 엘리너는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고, 그 누구와도 다르지 않는, 딱 엘리너 올리펀트스럽다.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 순간들이 자신의 삶의 전부라고 여겼던 그녀가 또 다른 세상으로 내딛을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한 세상이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새로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순간과 마주보는 그 시간들 또한 엘리너의 삶이라는 것을 그녀가 꼭 알아주기만을 소원한다. 그녀에게 펼쳐지는 괜찮은 완전 괜찮은 삶의 시간 속으로 나는 과감히 들어가본다. 그녀가 사랑스럽게 용감하게 당당하게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을 함께 걸어가고 싶다. 아낌없는 박수로 그녀의 완전 괜찮은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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