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 존재하게 되는 것의 해악
데이비드 베너타 지음, 이한 옮김 / 서광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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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주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으며, 반대로 어떤 점에 대해서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눈감을 수도 있다. 어릴 적부터 내게 가장 불가해하게 여겨진 이들은, 삶을 긍정하며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하는 부류였다. 이런 사람들을 난 죽기 직전까지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이해할 수 없겠지. 어떤 이는 우울증 탓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애초에 삶을 긍정하도록 설계되었으니 살고자 하는 것이 정상이고, 만약 삶을 가치 없다 여기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병이 든 것이라고. 하지만 약을 먹어도, 그다지 우울하지 않은, 누가 봐도 멀쩡한 상태에서도, 부단히 침투하는 삶에 대한 회의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히려 되물을 것이다. 삶을 '제정신'으로, 삶의 축복에 감사하며 사는 게 비정상 아니야? 나는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이 내가 정상임을 확신하게 했다. 나는 반출생주의의 싹을 품고 자랐다.


반출생주의란 무엇인가. 용어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듯이, 출생을 반대하는 사상이다. 비록 소수이긴 하나 오래 전부터 반출생주의자들은 존재해 왔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태어날 수밖에 없다면, 그다음으로 좋은 것은 우리가 나왔던 곳으로 재빨리 돌아가는 것이다." 제 손으로 낳은 인물의 입을 빌려 소포클레스가 한 말이다. "내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알아버렸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에밀 시오랑의 말이다. "삶은 비존재의 축복받은 고요를 방해하는, 이로울 것이 없는 사건으로 여길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플로베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누군가를 세계로 오게 한다는 발상은 나를 공포로 채운다. ・・・ 나의 삶이 전적으로 소멸하기를! 내가 어느 누구에게도 존재의 지루함과 수치를 전달하지 않기를!" 그리고 이들의 뒤를 이은, 반출생주의 이론을 최초로 정식화한 철학자 데이비드 베너타. 내가 소개할 책의 저자다. "존재하게 되는 것은 항상 심각한 해악이며, 출산은 항상 잘못이다."


여기저기서 귀가 아프도록 출생률 감소 이슈를 떠들어 대는 만큼, 우리는 출산을 하지 않으리라 선언하는 이들을 꽤 자주 볼 수 있다. 가부장제에 순응하지 않기 위해 4B 운동(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을 펼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출산과 양육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막대한 비용과 부자유를 감당하기 싫다는 연유로 출산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그 예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해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결심한 셈이다. "아이가 태어나 살기에 이 세상은 너무나 썩었다"며 출산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아이의 이익'을 고려해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좋은 세상이라는 조건 하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괜찮다 여기는 셈이다. 베너타의 반출생주의는 이들의 출산 거부와 다르다. 베너타는 '이미 존재하는 이들(부모가 될 사람들)'의 이익은 배제하고 '존재하게 될 수도 있는 이들(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이익만을 고려한다. 더불어 세상이 지금보다 더 좋아질지라도 아이를 존재케 하는 것은 언제나 해악이라고 말한다.


베너타는 자신의 도발적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통과 쾌락의 비대칭성 논증’과 ‘삶의 질 논증’을 제시한다. 비대칭성 논증은 그 자체로도 매우 정교하거니와 단계마다 예상되는 반론에 대한 베너타의 논박까지 읽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비대칭성 논증이 가장 주된 논증이므로 베너타의 반출생주의에 관해 궁금증이 생긴다면 책에서 비대칭성 논증 파트만이라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여기서는 삶의 질 논증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베너타는 사람들은 자기 삶의 질을 실제보다 더 높게 평가하기에 그들이 평가한 삶의 질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한다. 느낌이 곧 실제는 아니므로. 이어서 사람들이 삶의 질을 과대평가하는 원인으로 낙관주의 편향, 적응, 비교를 제시한다. 세 가지 모두 이미 심리학계에서 증명된 바, 우리는 우리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적응하여 기대치를 낮추게 마련이며, 삶의 질은 타인과 비교하여 평가하기에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겪는 고통은 그저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삶의 질에 관한 세 견해를 제시한다. 쾌락주의 이론(쾌락의 양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욕구충족 이론(욕구 충족 여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객관적 목록 이론(객관적 좋음의 보유량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한 가지만 봐도 우리 삶의 질이 나쁘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나는 쾌락주의 이론만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쾌락주의 이론은 인간의 정신 상태를 세 종류로 구분한다.


1. 부정적인 상태: 불편, 고통, 괴로움, 고뇌, 죄책감, 수치, 짜증, 지루함, 불안, 좌절, 스트레스, 두려움, 비통, 슬픔, 외로움 등

2. 긍정적인 상태

  1) 구제 쾌락: 부정적인 정신 상태에서 구제되는 것. (두통과 같은) 고통의 진정, 가려움 달래기, 지루함 감소, 스트레스 완화, 불안이나 공포의 소멸, 죄책감 경감 등

  2) 내재적 쾌락: 쾌락적인 감각적 경험(맛, 냄새, 시각적 이미지, 소리, 촉감) 및 비감각적인 의식 상태(환희, 사랑, 신념 등)

3. 중립적인 상태: 구제의 의미에서나 내재적 의미에서나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상태. 쾌락, 고통, 수치의 (이 부정적인 상태에서 구제되는 것과는 구별되는) 부재를 포함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심리적 이유(낙관주의 편향, 적응, 비교)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과소평가한다. 그런데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얼마나 자주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상태로 존재하는가? 우리가 아침에 고막을 찌르는 알람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키며 하루를 시작해서 지친 몸으로 잠들기까지 배고프지 않고, 춥거나 덥지 않고, 피곤하지 않고, 스트레스가 없고, 지루하지 않고, 짜증나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외롭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당신이 밥을 먹어서 배고픔을 해소하고 에어컨을 켜서 더위를 해소하고 아늑한 집의 침대에 몸을 뉘어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처지라면 그나마 낫다. 이런 고통을 쉬이 해소하지 못하는 이들의 처지와 비교한다면.


이러한 일상적인 고통들은 거의 매 순간 우리와 함께하기에 고통으로 인식하지 않는 지경이며 (빈도와 양을 고려했을 때 전혀 하잘것없지 않지만)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과 소중한 이의 노화, 병, 죽음이 야기하는 고통은 어떠한가? 존재하게 된 이상 최고로 운이 좋은 이도 피해갈 수 없는 비통함 말이다. 그렇다면 난무하는 삶의 고통 앞에서 중립적 상태와 쾌락은 어떤 의미인가. 베너타는 말한다. "중립적 상태와 구제 쾌락은 그것이 부정적 상태를 대체하는 한도에서만 가치 있을 수 있"으며, "일단 살게 되었다면 내재적 쾌락을 갖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내재적 쾌락은 꽤 다대한 비용인 삶의 불운을 대가로 치르고서 얻어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이런 고통의 나열이 단지 나약한 염세주의자의 넋두리로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엄연히 존재하는 인류의 거대한 고통과 해악을 머릿속에서 지운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시간에도 자연재해, 굶주림, 질병, 폭력, 사고,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존재들을 떠올려 보라. 게다가 당신과 당신의 아이가 이런 고통을 완벽하게 피해갈 수 있으리라고 단언하기란 불가능이다.

"가장 특권적인 사람들조차도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을 겪고, 강간당하고, 폭행당하거나, 잔인하게 살해당할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낙천주의자는 확실히 이 출산 러시안 룰렛을 정당화할 입증 책임을 지고 있다. (・・・) 우리는 어느 누구라도 거치게 될 수 있는 이례적으로 가혹한 해악만을 셈해서는 안 되고, 보통의 인간 삶의 꽤 통상적인 해악도 셈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사태가 쾌활하게 출산하려는 이들에게 사태는 더욱 더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고려는 그들이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손을 겨냥하고 있기도 한, 총알이 꽉 차 있는 총으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대칭성 논증과 삶의 질 논증 이후의 장에서 베너타는 출산에 관한 논의, 낙태에 관한 논의, 인류 멸종에 관한 논의(당연하다)까지 나아간다. 내게 가장 큰 궁금증을 일으켰고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리라 예상되는 자살에 관한 논의만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베너타는 반출생주의와 자살은 별개라고 본다. 우리는 팔과 다리가 없는 사람을 태어나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팔과 다리가 없는 사람이 자살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을 것이다. '삶을 시작하는 사안'과 '삶을 중단하는 사안'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삶을 중단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은, 삶을 시작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보다 훨씬 높다. 그렇다면 애초에 삶을 시작하지 않게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리라.

"이는 존재하는 이는 존재를 계속하는 데 이익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서 삶을 지속할 가치가 없도록 만드는 해악은 이 이익을 무효화할 정도로 충분히 가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들은 존재하게 되는 것에 아무런 이익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훨씬 덜한 해악을—또는 내 견해에서는 어떤 조그만 해악이라도—피한다는 것은 결정적이다."

다만, 베너타는 존재하기를 멈추는 것이 이득이 될 정도로 고통의 크기가 방대하다면 자살이 합리적인 경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다시 내 얘기를 해야겠다. 나는 내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당신이 출산할 아이가 존재에 부정적이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참고로 나는 무난한 가정에서 남들이 보기에 운이 좋아 보일 정도로 별다른 사건 없이 평탄하게 자랐으며 내 부모가 나를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절감한다. 난 내 부모를 사랑한다. 현재 내게 (태어나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았을) 가장 무거운 고통도 부모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과 앞으로 다가올 부모의 병과 죽음에 대한 염려다. 그러니까 당신이 당신의 자녀를 온 정성을 다해 키운 덕에 그가 당신을 사랑하고 순조롭게 삶의 궤적을 그려나갈지라도, 그가 비존재 되기를 갈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베너타가 그의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논증을 개진하고 가능한 모든 반론을 예상하여 빈틈없이 논박한 것에 비하면 이 감상문은 매우 빈약하고 조악하기 그지없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으며 이게 뭔 개소린지.... 했던 이들도 베너타의 책과 직접 대면했을 때 그의 주장에 동의하게 될 여지는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차라리 이 글을 읽지 않고 베너타의 책을 읽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철학적・논리적 사고의 전개를 따라가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소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나도 이번 독서가 재독임에도 내내 미간을 찌푸린 채 읽었다. 하지만 어려워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넘치는 책이다. 아니,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베너타도 서론에서 언급한 바, 인류의 친출생 편향은 너무나 공고하기에 이 책이 많이 읽힐지라도 인류가 출산을 그만두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이들은 적어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대해 되생각해보지 않을까.


"선한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고통을 겪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면서도, 아이들의 모든 고통을 예방하는 하나의 (그리고 유일한) 보장된 방법은 아이들을 애초에 존재하게끔 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채는 이들이 그토록 적다는 점은 매우 별난 일이다. 사람들이 이 점을 알아채지 못하고, 또는 설사 그것을 알아챈다고 하더라도 그 깨달음을 따라 행위를 하지 않는 많은 이유가 있다. 그러나 내가 보일 바와 같이 잠재적 아이들의 이익은 그 이유에 들어갈 수 없다."




글이 너무 어두컴컴한데.... 글쓴이는 이거 다 쓰고 월드콘 먹고 있어서 실시간으로 세로토닌 폭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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