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인간 선언 - 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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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떻게 낙담과 냉소와 체념의 행렬에 동참하지 않았어?
어떻게 최종적으로 희망을 택했어?(204쪽)”


우리가 사는 지금은 ‘인류세’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를 말한다. 인류가 지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어마어마한 지리역학적 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6쪽). 폭염, 수몰, 이상기후, 빙하유실 ,산불... 인류세의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활자 속의 개념이 아닌 우리의 삶 속에 실재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중심적 현 세대에 단호히 문제를 제시하며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난 “탈인간(중심주의)”를 제안한다.

저자는 나르시시스트 인류가 초래한 인간중심주의적 가치와 관습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하고, 포기와 낙담 대신 책임과 변화를 택하기 위한 힘을 전한다. 그 방식은 직설적이고 유쾌하다. 동시에 묘한 통쾌함까지 선사한다. 돌려 말하는 바 없이, 시원하게 전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호소하는 저자는 날카로운 통찰로 독자의 기후위기 인식 세계를 넓힌다.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려는 다양한 시도들과 <탈인간 선언>의 차이가 있다면, 이 책이 이론이나 사고실험, 지적 유희가 아니라 현실과 호흡하면서, 또 변화를 갈망하면서 얻은 실천적 성찰들의 모음이라는 점이다(16쪽). 일간지에 4주마다 게재되는 짧은 칼럼이라는 조건은 오히려 저자가 시의성 있게 응답하기 위해 온갖 ‘현장’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변을 걸러내 꼭 필요한 말에 집중하도록 강제한 장치가 되었다.

‘환경적 영향에 대한 생각 없음’이 지구에 대한 큰 범죄 행위를 낳는다는 문장이 맴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논한 ‘악의 평범성’처럼 말이다. 생태적 맥락에서 고쳐 쓰인 위 문장은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짙게 물든 우리가 쉽게 행하는 반생태적 생활방식과 밀덥하다. 더불어 매우 근면한 인간이었던 전범 아이히만처럼 ‘생태적 악’ 역시 수행하는 자들의 부지런함과 꾸준한 자연 파괴가 동반된다. 너무나도 쉽게 ‘제 몫의 파괴’를 해낸다는 것이다(114쪽).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진다고 믿는다. 완벽히 ‘탈인간’하기란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훌륭한 환경운동가가 될 자신도 없지만, 나는 또 내일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겠지만. 다만, “냉소와 포기라는 간편한 선택 대신 책임을 택하는 새로운 인간으로의 전환”을 자주 생각하려 한다. ‘환경적 영향에 대한 생각 있음’으로, 반생태적 생활방식에 나태함으로 행동을 더하며 말이다. 인류세에 살고 있는 인간임을 꾸준히 부끄러워하겠다.

더불어 코로나19 때 정책과 개인의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을 기억한다.
유독 기후위기 대응책에선 구조적 변화와 개인의 실천이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듯하다. 하나에 주목하면 다른 하나는 소홀히 한다는 택일관계로 보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해법은 오로지 체제 전환뿐이라며 작은 실천을 폄하하고 다른 쪽은 개인의 실천만 강조한다(43쪽).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한 이분법을 떠나 기후위기 역시 이 둘의 조화와 병행을 통해 강력한 소통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렇게 혼자 물으면서도,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답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희망을 의식하지도, 굳이 찾지도 않았으리라.
단지 너무도 중요하고 긴급해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스스로 희망이 된 것이리라. 이것이 내가 희망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부이다. 남은 건 무엇을 하느냐뿐이다.(204쪽)”


​—


#책속의한줄🔖

(9p.) 탈인간은 먼저 탈인간중심주의의 준말로, 말 그대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그것이 몸부림인 이유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벗어남을 완벽히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12p.)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는 일은 또 다른 중심을 세우는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심은 비워둬도 괜찮다. 굳이 ‘인간중심’의 반대말을 꼽으라면 나는 차라리 ‘인간 매개’라고 하고 싶다. 중심에서 매개가 되는 것, 게다가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는 것.

(13p.) 이렇듯 인간이란 협소한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다른 존재들, 타자이다. 고로,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 타자에게 주목하는 것은 탈인간의 출발점이다. (...) 도구적•실용적인 관점을 떠나 우리에게 여하간의 쓸모가 없더라도, 오롯이 존재 그 자체로서 (타자의) 살아갈 이유를 긍정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라는 윤리적 명령이 각 인간의 쓸모와 무관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19p.) 미셸 푸코의 말처럼 “이제 목표는 우리가 누군지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제의 인간이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30p.) 전 국민이 ‘골든타임’이란 용어를 단일 사건과 연결시켜 기억하는 나라, 우리 말고 또 있을까?

(73p.) “마지막 물고기를 먹고 나서야 인간은 깨달을 것이다, 플라스틱을 먹었다는 것을.”

(75p.) 그들은 기성세대를 애써 좋게 봐주려고 노력도 한다. 설마, 그래도 어른들인데 한편에선 진지하게 고민들을 하겠지? 순진한 기대다. 우리는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다!

(77p.) 한 10대 활동가가 내게 물었다, 이 판국에 어떻게 힘을 내냐고. 힘? 솔직히 안 난다. 내 세대와 위 세대를 보면 대개 힘보단 화가 난다. 하지만 부끄러워서 낸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우려고 뭐라도 하려고 한다. 이 수치심은 나의 탄소발자국만큼이나 쉽게 지워질 성격의 것이 아니다.

(91p.) 정말 나와 상관도 없는 연예인의 신변잡기는 그토록 와닿고, 전 지구적 생태위기는 전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그 피부가 문제다! 회복 불가능한 지구 가열을 막아낼 시간이 겨우 10년 남았다고 기후학자들이 경고한 게 벌써 몇 년째인데도 와닿지 않는다고? 그럼 가닿으라!

(106p.) “물 들어오면 노를 잠시 놓으라. 그리고 물길을 읽으라 이 물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열심히 따라가면 나는 무엇에 기여하게 되는가. 다시 돌아오지 못해도 좋은가.”

(111p.) 경쟁과 분열을 연료로 돌아가는 사회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파이가 커져도 대다수가 행복을 느끼며 살기 불가능하다는 걸-

(142p.) 어리석음이란 순우리말로 ‘얼’이 ‘썩은’, 즉 정신이 썩은 상태다. 지능이 낮은 것이 아니다. 지능이 높아도 얼마든지 어리석을 수 있다.

(163p.) 이쯤 되면 인플루언서의 실제 역할은, 흥미는 끌되 심기는 안 건드릴 적당한 콘텐츠를 공급하며 체제 공고화에 일조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한마디로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인플루언서는 인플루언스(영향)을 주는 척 안 주는 사람인 것이다.

(164p.) 넬슨 만델라나 마틴 루서 킹 같은 인물은(한 번도 인플루언서라 불린 적도 없이!) 영향력을 돈과 결부시키지 않고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데 일조했음을 상기하자. 인플루언서라는 말을 쓰거나 들을 때 일론 머스크 대신 간디를 떠올리면 지금 우리가 받는 영향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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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MBTI가 같네요! MBTI 테마소설집 3
김홍 외 지음 / 읻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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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최초 MBTI 소설집이라는 화끈한(?) 책 소개로 포문을 연다. 한 명의 소설가가 하나의 MBTI를 맡아, 해당 유형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단편을 수록한 MBTI 테마소설집이다. 총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체적인 사랑의 순간들이 담긴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단호하고 뾰족한 마음을 가지 T유형 특집 《우리 MBTI가 같네요!》, 예측할 수 없는 마음으로 도약하는 F유형 특집인 《우리 MBTI가 같네요!》까지. 16가지의 MBTI 유형 하나하나가 개성 넘치는 이야기가 되어 찾아왔다. 저 사람은 왜 저래? MBTI가 0000이래. 아~ 그래서 그랬구나. 했던 순간, 그런 순간들이 소설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관심이 생길까? 정말 흥미로운 기획이 담긴 테마집이라 생각했다.

나는 3권, 《우리 MBTI가 같네요!》(ESFP, ENFJ, ISFP, ESFJ, ISFJ)를 선택했다. 공감을 기본 장착한 F유형 특집으로 구성된 만큼 나 역시 깊은 공감으로 읽어 내려갔다. 특히 ISFJ 유형의 이야기를 담은 마지막 단편 <수호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절대 제가 ISFJ라 편애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 이보다 더한 사랑고백이 있을까? 타인의 행복과 안전이 나의 책임이길 바라는 마음이라니. 같은 유형임에도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무조’의 사랑이 숨 막히게 따뜻했다. 동시에 나와 완전히 다른 유형의 사람에겐 그의 고백이 이 정도의 온도로는 닿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새삼 신기했다. 이토록 다른 우리들 안에서도 서로 사랑을 나누고, 같은 온도의 마음을 나누는 이들이 괜히 더 특별히 느껴지게 되었달까?


"내 행복과 안전이 자신의 책임인 듯 느껴진다고,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책임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자신이 나를 살필 수 있길,
또 보호하길 바란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했다.
그러니까 네가 원할 때면 내가 갈게. 무조가 말했다.
내가 있는 데로 오겠다고, 언제 어디서든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 방법만은 엄마에게서 확실히 배웠다고." (188쪽)
- 『우리 MBTI가 같네요!』 中 <수호자, 함윤이>

결국 MBTI의 유행은 타인을 향한 관심과 사랑에 기반한다고 믿는다.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을 이해해 보고 싶은 마음, 혹은 나와 다른 이에 대해 그저 '다르기 때문'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수단 더불어 나만 이런 것이 아니었구나(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안도까지. 전부 MBTI에 포함이다. 나에 대해 설명할 단어들이 많아지고 그로 인해 타인을 조금이나마 이해시킬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어쨌든 우리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이해를 남기기 위해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이니까.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완벽하지 않더라도 뭐 어떤가. 때로는 조금 우습고 유치한 수단으로나마 우리가 이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언제나 한 개인이 자신만의 행성을 벗어나 타인이라는 우주로 향하겠다고 결심하는 용기를 사랑해왔다. 어쩌면 앞으로 MBTI가 그러한 용기를 뒷받침하는 발판으로 자리할 수 있지 않을까? 남몰래 품고 있는 기대를 남긴다.





#책속의한줄🔖

(92p.) 눈이 올 때마다 늘 이렇게 해?
이거보다 더 많이 올 땐 못 해.
이거보다 더 많이 오기도 한다고?
물론.
그럴 때 오히려 그냥 두는 게 나았다.

(154p.) 슬프다고 눈을 감아버리지 않고, 슬픔에 짓눌리지 않고 충분히 슬퍼해야 해. (...) 그러니까 슬퍼하고, 그 슬픔이 왜 발생했는지 보아야 합니다. 다음에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충분히 슬퍼해야 합니다.

(165p.) MBTI가 유행한다는 건 우리가 얼마나 나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즉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지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어쩜 이렇게 사사롭고 다정한지. 그래서 당신 MBTI는 무엇인가요?

(188p.) 내 행복과 안전이 자신의 책임인 듯 느껴진다고,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책임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자신이 나를 살필 수 있길, 또 보호하길 바란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했다. 그러니까 네가 원할 때면 내가 갈게. 무조가 말했다. 내가 있는 데로 오겠다고, 언제 어디서든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 방법만은 엄마에게서 확실히 배웠다고.

(199p.) 이름을 까먹어도 좋을 만큼 무럭무럭 자랐더랬다.

(201p.) 샘이 대단한 호빗인 것은 그가 타고난 수호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는 선택을 거듭하여 내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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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 윤석열 정부 600일, 각자도생 대한민국
신장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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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3월 10일, 윤 대통령의 당선일부터 2023년 9월 최근까지 당선 이후 벌어진 사회의 변화에 대해 쓴 '난중일기'이다. 저자는 라디오 청취율 1위 <뉴스 하이킥>을 진행하는 신장식 변호사로, 진행자가 그날의 최고 이슈를 선정해 직접 작성하는 '신장식의 오늘'이라는 단평을 통해 뜨거운 공감과 호응을 받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중에서도 215편을 엄선해 다듬고 저자의 발문을 더해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팩트 체크와 날 선 비판, 위트 넘치는 풍자가 중심이지만 그 바탕에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믿음, 약자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시선이 깔려 있다. 그래서 “청산유수(靑山流水)로 흘러가면서도 도처에 언중유골(言中有骨)이고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표현이 번득인다”(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편법주의를 드러내는 날카로운 검이자 약자들의 현실을 밝히는 따사로운 봄볕”(용혜인 의원)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참고) 무엇보다도 참 잘 읽힌다. 각각의 소제목은 간결하고 명확한 내용을 전한다. 시원시원하게 우리가 간지러웠던 딱 그 부분을 긁는다. 읽고 나면 통쾌해질 것이다. 이 책이 절망에 빠져 숨이 차던 우리의 마음에 잠시나마 좋은 쉼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2장, '(주)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2020년 10월,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과로사한 장덕준 씨의 어머니 박미숙 님은 최악의 살인 기업 선정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물일곱 건강했던 아들이 과로로 죽었습니다. 저는 아들을 잃고 나서야 긴 시간 일하면 젊고 건강한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들의 죽음이) 장시간 노동을 버티지 못하고 죽은 아들의 나약함, 그런 나약한 아들을 둔 부모 책임으로 남지 않게 노동자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그 누구도 일하다 죽지 않기를, 일하다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욕심일까?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길 바라는 2023년이라는 것에 깊은 좌절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려 한다.

아프고 화가 나도, 아니 아프고 화가 날수록, 더 든든히 먹고, 푹 자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영화도 보고, 새 신발도 사고, 술도 한잔하기로 했으니. 저자의 말처럼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반드시 계절은 바뀐다. 겨울밤이 아무리 길다고 한들 오는 아침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336쪽) 지치지 않고 함께 걸어가길. 누구도 일하다 죽지 않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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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한줄🔖


(9p.) 하로동선(夏爐冬扇), 여름에는 난로를, 겨울에는 부채를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권력에는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멀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충분히 분노하되 그 분노에만 휩쓸리지 않는 것, 그리고 그다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17p.) 지금은 어쩌면 치열하게 절망해야 할 시간, 실컷 울고 말개진 눈으로 그 절망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절망과 응시의 시간을 지나 지도를 그리듯 꼼꼼하게 내 앞에 놓인 샛길과 낭떠러지를 파악하고, 동화 속 소년처럼 용감하게 다시 일어서서 길을 나서야 합니다.


(73p.) 대통령이 바뀌면 내 생활이 나아지느냐고 묻던 창원의 그 청년 노동자에게 저 또한 같은 말을 전합니다. 노조에 가입하십시오. 마음에 드는 정당의 당원이 되십시오. 좋은 정치를 만드는 좋은 정당과 노동조합이야말로 (주)대한민국에서 노동자가 존엄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2개의 기둥이니까요.


(99p.) "스물일곱 건강했던 아들이 과로로 죽었습니다. 저는 아들을 잃고 나서야 긴 시간 일하면 젊고 건강한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들의 죽음이) 장시간 노동을 버티지 못하고 죽은 아들의 나약함, 그런 나약한 아들을 둔 부모 책임으로 남지 않게 노동자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105p.) 대한민국 국민들은 잠시라도 놀면 죽습니다.


(241p.) 그러나 기억하시라. 도도한 민주화의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 그 누구도 결국 그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사라졌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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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Philos 시리즈 23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 홍성수.유민석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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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그대로,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이다. 이론뿐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점과 실천적 대안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혐오표현금지법의 문제점을 충실히 언급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혐오표현에 대처할 다른 여러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의미가 있다.(315쪽)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혐오표현금지법에 대한 다른 관점의 사고를 이어나갈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 책의 저자 네이딘 스트로슨(Nadine Strossen)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딸이면서도 신나치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여성 착취에 반대하지만 포르노그래피를 검열해서는 안 된다는 쪽에 서는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이다. 따라서 혐오표현에 반대하지만 혐오표현을 검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 또한 일관되게 견지한다.

어떤 방법이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고 사회적 화합을 이끌어 내는 데 효과적인가? 저자는 혐오표현금지법의 실효성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혐오표현의 ‘문제’에는 동의하나 그 해결 방법은 법이 아닌 다른 방안이어야 함을 단호히 주장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혐오표현은 그 개념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전반적으로 억압하게 될 수밖에 없다. 둘째, 현실적으로 혐오표현금지법은 그 입법 취지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를 잠복시켜 숨게 만들거나, 교묘하고 암호화된 혐오표현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셋째,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축소하는 도구로 오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이유들이 단순한 부작용이 아닌 법의 정당성 자체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별과 혐오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표현, 즉 ‘대항 표현(counter)’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이는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짐으로써 혐오표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 해당 도서를 번역한 홍성수 번역가의 ‘환경조성’ 역시 이와 같은 개념이다. 교육을 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것. 싫어하는 메세지를 억압하는 대신 평등과 포용성 및 다양성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불어넣는 것이다.(303쪽) 즉각적인 수혜자는 혐오표현자들일지 몰라도, 궁극적인 수혜자는 그 외의 모두일 것이다.

역자가 직접 저자를 만나 나눈 대화를 담은 ‘저자와의 대담’과 ‘옮긴이의 해제’ 부록이 추가된 점이 정말 좋았다. 9장까지의 꽤나 긴 내용을 해당 부록들을 통해 정리하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시금 강조하여 효과적인 전달이 이루어졌다. 참으로 알차다! 더불어 역자가 저자를 향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나 역시 다시금 책의 내용을 곱씹을 수 있었다.

법 제정 여부에만 국한된 혐오표현에 관한 논의를 다시 할 때임을 깨닫는다. 모든 입장은 결국 우리 모두의 평등, 존엄성, 다양성, 포용성 증진으로 향한다. 궁극적인 방향성을 잃지 않으며, 이 책이 혐오표현금지법에 대한 건설적인 담론에 큰 힘을 더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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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한줄🔖

(36p.) 따라서 차별적인 고정관념을 반영한 표현은 악의보다는 무지와 무감각의 결과인 경우가 종종 있을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의도적이지 않은 종류의 편견을 포함하여, 편견에 단호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싸우는 도구는 방향을 적절히 잘 잡아서 싸워야 한다. 부주의하게 고정관념적 생각을 전파하는 사람은 혐오표현을 기소하고 처벌하는 것보다는 건설적인 교육적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259p.) “만약 우리 법체계에서 혐오표현이 용인된다면, 사람들이 혐오표현을 들었을 때 그것이 누구에게 향해졌든 간에 혐오표현을 한 사람을 비난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당신이 그것을 볼 때마다 불편하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그 자리에서 바로 거기에서 비난해야 한다.”

(273p.) 또한 어떤 견해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는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만큼 보호됩니다.

(296p.) 하지만 도덕적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 또는 단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됩니다.

(306p.) 언어는 날마다 새롭게 다시 변형되기 때문에 어떤 표현을 검열을 통해 완전히 근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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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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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의 상식을 믿어.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살면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세상이 이상한 데로 가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봄 (조선희, 한겨레출판) - 329p. 정희

2022년부터 봄부터 2023년의 봄까지, 종교관은 같지만 정치색은 다른 4인 가족의 이야기. 봄과 여름, 가을에서 겨울을 거치며 다시 봄이 오는 계절의 흐름은 가족들의 파란만장한 1년을 대변한다. ​"한 가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한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이기호 소설가의 추천사가 인상 깊었다.

혼란한 정치 상황이 한 평범한 가정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심각하고 무거운 내용은 아니다.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기꺼이 살아가는 우리 삶의 형태가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쾌한 문체와 등장인물들의 생동감에 자주 웃음이 새어 나올 것이다. 개인적으로 도대체 어떻게 알고 이런 이야기를 쓰셨지? 싶어 놀란 부분이 많았다. 20대 여성, 남성 50대 여성, 남성의 모든 시각이 소설에 전부 담겨 있어 놀라웠다. 특히나 20대 여성인 나는 현 세대의 가치관과 흐름, 문화에 대해 완벽히 간파하고 있는 몇몇 지점들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ex. 중고등학교 때 아이돌을 졸업했으나 20대 후반이 되어 NCT를 사랑하는 딸 하민의 모습..)

인간은 왜 이리도 입체적일까. 소설 속 네 명의 인물도 그러하다. 이해하지 못할, 그러나 이해하고 싶은 면들이 가득한 이들. 나와 양극단에 서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전혀 다른 서로가 있기에 세상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확히는 그렇게라도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모두가 다르기에 세상이 알록달록 풍요로운 것이라고. 세상의 균형은 그런 식으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평소 해왔던 이와 같은 생각에 "순환하는 계절을 바라보듯 서로의 처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지켜보려고 노력하는 점이 이 가족의 내일을 낙관하게 만든다(추천사 中)"는 말을 더하려 한다. 반드시 아름다울 수만은 없겠지만, 명랑할 수만은 없겠지만. 계절은 계속 바뀌고 언제고 봄은 다시 찾아와줄 것이다. 이 가족이 그러하듯.


#책속의한줄 🔖

(17p.) 동민이 아빠 앞에서 "씨발"이라 한 건 프랑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에 몰려간 것과 같다. -정희

(67p.) 그 2막의 커튼을 열어젖힌 사람이 자신이 아니고 딸이라는 것. 내가 더 이상 내 태양계의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 정희

(121p.) 엄마가 식탁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눈물을 감추고 있었지만 몸 전체로 울고 있었다. - 하민

(131p.) 곧 부서질 듯한 고치의 느낌. 고치를 벗고 나오는 일이 서른 나이에도 너무 이른 것인가. 고치를 벗고 나오는 몸짓이 너무 거칠었나. -하민

(188p.) 하지만 누구를 미워하는 건 기 빨리는 일이다. 더구나 엄마 아빠가 저축해 놓은 따뜻한 기억들과 싸우는 일은 몇 배 진 빠지는 일이었다. -동민

(191p.) "스타트업이 대기업 되는 건 정자가 인간이 될 확률과 같아." -동민

(213p.) "연금술사라고 못 들어봤냐? 연금 받아서 술 사는 사람." -영한

(194p.) 영한은 울고 싶어졌다. 하룻저녁 가벼운 대화로 아들과 화기애애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모처럼의 화통한 대화는 아들과 자신 사이에 놓인 것이 작은 틈이 아니라 깊은 계곡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정희

(297p.) 딸은 그녀에게 여전히 지독한 혼란이다. 동의가 되다가 안 되고 이해가 되다가 안 되고 재밌다가 화나고 딸을 응원하다가 문득 옆구리가 허전해진다. 딸의 친구거나 친구의 딸이라면 그 이야기를 즐겁게 듣고 흔쾌히 응원할 것 같다. -정희

(329p.) "나 있잖아. 요새는 교통신호 잘 지켜. 빨간불에 절대 안 건너고. 운전할 때도 양보운전 하고. 음식점 가도 종업원들한테 공손하게 하고. 사회가 너무 험해지는 것 같아서 일부러. 행동하는 양심이야. 그냥 내 식으로." -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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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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