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간식집 - 겨울 간식 테마소설집
박연준 외 지음 / 읻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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읻다 센스는 언제나! 역시나! 소설(小雪)의 계절에 찾아온 온기 나는 간식과 여섯 편의 이야기, 《겨울 간식집》
참여 간식은 뱅쇼, 귤, 다코야키, 만두, 호떡, 유자차랍니다. 환하고 묵묵한 날 입김을 호호 불며 먹기 딱 좋고 읽기는 더 좋다. 여섯 가지의 테마로 이루어진 소설을 하나씩 맛보다 보면 어느새 따뜻하게 덥혀진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각 소설의 끝에는 이 계절을 잘 지내는 여섯 작가만의 방법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출판사 책 소개 中) 내내 미지근하다 갑자기 매서운 추위로 성을 내는 올해 겨울! 부록의 힘을 빌려 만끽해 보도록 하자.

가장 먹고 싶어졌던 겨울 간식은 다코야키!
정용준 작가의 <겨울 기도> 속 신경이 만든 다코야키를 꼭 먹어보고 싶다. 아픈 무릎을 이끌고 딸을 보기 위해 멀리서 문어까지 싸 들고 올라오는 엄마의 마음과, 그런 엄마에게 잔뜩 신경질을 내고는 밤새 그 문어로 다코야키를 만들어 엄마의 병원을 찾아가는 딸의 마음. 그 두 마음의 모양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아 읽는 내내 마음이 요상했다. “흥분하고, 좌절하고, 자기애로 충만했다가 곧바로 자괴감으로 무너지는 몸과 마음”의 스무 살이었던 때가 떠올라 괜히 위로받기도 했고. 이야기 속 화자가 바뀌는데도 자연스럽게 흐름이 이어지는 것도 인상 깊었다. 뭉친 눈덩이 같은 다코야키가 소설 속 이들, 읽는 이들의 마음까지 동그랗게 말아준 것만 같다.

올해가 딱 일주일 남았다. 김지연 작가의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 속 숙모의 말처럼, 남은 겨울과 다가올 계절들 속에서 '사는 게 너무 달다'라고 맘껏 말할 수 있길 꿈꾸어본다. 아마도 어려울 테지만. 부디 낮은 당도를 살아가더라도 맘껏 음미할 수는 있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책속의한줄🔖

(12p.) "여러분, 시를 써서 뭐 하나요. 시 같은 건 쓰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사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시작해 수업 막바지에는 "전부를 거세요. 다리 한 쪽, 발가락 다섯 개 말고 전부를, 종이에 깨소금 뿌리듯 시 쓰려 하지 말고, 세상을 비추려고 온 태양처럼 열렬하게 쓰세요. 쏟아지세요!"

(21p.) 타인은 아름다워.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 아름다울 때, 그 감정은 진짜다. 나를 제대로 속일 수 있다.

(45p.) 독서를 할 때 문장에 줄을 치는 것은 책 속에서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 것 같다. 그러다 그 문장을 내 노트에 내 글씨체로 옮겨 적으면 필름을 인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25p.) 영혜는 나를 선명한 존재로 느끼게 했다.

(138p.) "이소라가 <제발>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울었어. 세 번의 시도 끝에 울지 않고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있었어. 울 때마다 사람들이 손뼉을 쳤고 엄마도 그걸 보면서 울었어. 응원이랍시고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소름 끼친다고."

(146p.) 그 순간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나와 할머니의 삶에 희민이 끼어들어 자신의 삶이 망가지는 줄도 모른 채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불을 대로 불어버린 못난 물병 나무처럼 희민의 사랑을 갈급해한다. 그것이 희민의 삶에 몹시 치명적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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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 열 편의 인권영화로 만나는 우리 안의 얼굴들
이다혜.이주현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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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씨네 21>의 이다혜, 이주현 기자가 쓴 글이다. 모든 사람의 존엄, 자유, 평등, 연대가 보장되는 인권 사회 실현을 위해 2001년 11월 출범한 국가 인권 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는 입법, 사법, 행정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기구로서 인권 보호 및 향상에 관한 모든 일을 다루고 있다. 2002년부터 인권영화를 꾸준히 제작해오고 있으며, 20년이 훌쩍 넘는 오늘까지 다양한 인권 이슈를 다룬 영화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중 이 책에는 지난 10년간의 한국 사회 인권의 풍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우리는 열 편의 인권영화를 통해 우리 안의 얼굴들을 만난다. (출판사 책소개 中)

이옥섭 감독의 <메기>는 데이트폭력과 청년실업을,
최익환 감독의 <우리는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청소년 인권을,
남궁선 감독의 <힘을 낼 시간>은 청(소)년의 꿈과 좌절을,
신아가·이상철 감독의 <봉구는 배달 중>은 노인과 아동 차별을,
정지우 감독의 <4등>은 엘리트 스포츠 교육과 청소년 인권을,
오멸 감독의 <하늘의 황금마차>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이광국 감독의 <소주와 아이스크림>은 무연고 고독사를,
민용근 감독의 <얼음강>은 신념과 병역거부를,
박정범 감독의 <두한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가난과 장애를,
신연식 감독의 <과대망상자(들)>은 감시사회 속 개인의 불안과 인권을 말한다.
열 편의 영화가 말하는 각각의 문제들은 전부 여전히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이다.

언제나 무능한 독자로서 이렇게 훌륭한 이들이 먼저 소리 내어 주는 것에 그저 감사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아주 멀리 있는 이들에게까지 닿는 일이 지금보다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의문을 갖지 않던 일들에 한 번 물음표를 띄워주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이니까. 꾸준히 세상이 망해간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질문하는 이들만이 그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빠르게 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나도 함께 질문을 던지는 편에 서야지.



#책속의한줄🔖 (과 마음 더하기)

(16p.) 사랑스러움을 이유로 무르지 않고, 매섭다는 이유로 상처 주지 않는
이옥섭 감독의 2018년 작 <메기>는 사랑스러운 동시에 매서운 영화다. 사랑스러움을 이유로 무르지 않고, 매섭다는 이유로 상처 주지 않는다. 그 미묘한 줄타기를 가능케 하는 것은 이옥섭 감독의 스타일이다.

(22p.) 하지만 이런 사건이 아니라면 희망을 닮은 그 무엇도 구경하기가 힘들다.

(23p.) 현실을 이야기하는 진지함은 그대로인데 이야기하는 방식은 엉뚱하고 발랄하다.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한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라는 말을 비틀어보면, "유머는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정도로 말할 수 있는 영화가 <메기>다.
🏷️ 이어서 '형식이 분노가 아닐지언정, 윤영은 그 누구보다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문장이 참 마음에 들었다. 유독 스스로가 답답하다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이유가 모든 말이나 행위의 형식을 너무 중요시 여겼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윤영처럼 형식이 다르더래도 그 성질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40p.) 그는 사랑과 혁명을 나란히 언급하며 '사랑의 현재적 혁명성'을 얘기했다. "혁명을 하기에 적절한 시점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적절한 타이밍을 찾는 동안 혁명의 의미는 퇴색되기 마련이다.
🏷️ 이거 너무 설레는.. 문장 아닌가요?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의 지수와 친구들처럼 지금 당장 맘껏 사랑하고 맘껏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는데. 카르페디엠! 오늘을 살아라! 아무리 외쳐봐야, 당장 떡볶이도 먹지 못하는 학생으로 자란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된다면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지금의.. 나처럼?...)

(76p.) "과도하게 자기를 몰아붙이는 게 당연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갖는 피로감을 공유한다고 생각해요. 궤도에서 이탈한 사람들에게 손을 적절한 때 내밀었나? 하는 죄책감을 다 같이 느낄 수밖에 없어요." <힘을 낼 시간>은 그렇게 뒤에 남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영화다.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모두가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113p.) "스포츠의 성과가 오랜 시간 최고 강도의 훈련을 감내한 선수만이 누리는 특권으로 인식되면서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호는 '운동을 모르는 소리'로 치부된 것이다 (...)"
🏷️ 동생이 오랜 시간 운동을 했어서 더 깊게 와닿았다. 여전히 스포츠뿐 아니라 예체능계열의 많은 일들이 버틸 수 없을만한 일들을 기어코 버텨내야만 이루어지는 성과, 로 인식되는 것 같다. 정말 해결될 수 있는 일일까? 적어도 사는 동안, 아주 작은 변화라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129p.) 그들이 도달하려는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 내가 도달하려는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134p.) "존엄사가 처음 합법화됐을 때 반대자들은 가난한 사람이 일찍 죽도록 떠밀릴 것을 걱정했지만, 그와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부유한 환자가 원하는 죽음에 먼저 도달하고 가난한 사람은 원하지 않아도 더 살아야 했다" -<죽음의 격, 케이티 엥겔하트, 2019>

(143p.) "원망하지 않기. 원망하지 않기. 포기하지 않기. 대책을 세우기. 술을 끊기. 웃음을 잃지 않기. 깨끗하게 떠나기. 깨끗하게 떠나기."

(156p.) 개인도 사회도 이 문제에서 구경꾼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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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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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든 글 쓰는 세 사람의 '일기'로 수다 '떨기', 화제의 팟캐스트 <일기떨기>의 단행본!
대담의 형식에 큰 매력을 느낀다. 평소 인터뷰 읽는 것이 취미인 이유도 이와 같다. 줄글로 나열된 한 사람의 생각보다 주고받는 대화 읽는 편을 더 선호한다. 거기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이기까지 한 내용이라면 금상첨화, 그러니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가볍게, 쉽게 잠시 머리를 비우고 온전한 타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산뜻했다.

《천 개의 파랑》, 《나인》, 《노랜드》, 《이끼숲》 제목만 읽어도 설레는 SF 소설가 천선란,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 《아무튼, 아이돌》의 저자이자 참된 일기 인간 윤혜은, 주짓수부터 제과제빵, 점심시간에 하는 요가까지 다부진 취미 부자 편집자 윤소진이 만나 마음껏 나눈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말 그대로 ‘글’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취향, 성격, 일상 등 모조리 제각각인 세 사람이 서로의 글(일기)을 읽고 생각을 논하는(수다) 내용이다. (출판사 서평 中)

"누군가의 일기를 읽어버린 뒤에 그 사람을 친밀하게 느끼지 않는 법을 나는 모른다."는 김신지 작가의 추천사가 와닿았다. 나 역시 이들을 내 마음대로 친밀히 느끼기로 했으니까.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잠시 외롭지 않았다. 실제로 만나본 적 없는 이들이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의 대화를 듣는 듯했다. 내가 이들 안에 속해 함께 있는 느낌, 어떤 곳에서든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이들의 대화는 그만큼 다정하고, 배려 있다. 그저 하고 싶은 대화를 나눈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 얼마나 깊은 고민이 있었는지- 읽어보면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책속의한줄🔖 (과 마음 더하기)

(35p.) 너무 이해해요. 덕심이 크면 그냥 그곳에 모셔두고 싶잖아. 나는 여기에만 존재하고 싶고. /혜은
🏷️ 그나저나 선란 작가님도 세랑 작가님을 피해 다닐 정도로 큰 덕심을 갖고 계셨다니..! 괜히 반갑고.. 그래 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결국 서로를 덕질하며 먹여살리는구나.. 싶었던.. (왜냐면 제가 그러니까요)

(84p.) 지나고 나서 느끼는 게 어디예요? 그걸 못 느끼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게 제일 안타까워요. 실패를 그냥 실패로 받아들이는 사람. /선란
🏷️ 혜은이 거의 끝까지 시달리고 마치고 났을 때 '결국 해냈구나'라는 걸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느끼는 사람임에 위로받았다. 그리고 그런 혜은에 대해 이렇게 말해준 선란에게도. 겨우 다 지나가고 나서야 '그래, 그래도 이게 나를 변화시키는 어떤 한 구간이었어' 되뇌며 과정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까지.. 괴로워하는 과정이 닮은 이를 보며 나만 이런 것이 아님을 상기한다. 나와 닮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 신기하다.

(85p.) 저는 난관이나 처한 상황을 게임이나 하나의 소재로 생각하는 게 진짜 잘 돼요. 마치 내가 주인공 같잖아요. 나를 저 드라마 속에 주인공으로 넣어놓고 잠깐 떨어져서 어떻게 깨나 보자! 약간 이런 게 있어야 해요.

(93p.) 엄마는 시험공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면 괜찮다거나, 공부를 더 해야 한다거나, 참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아니었고 새벽 두 시에 우리를 차에 태워 월미도로 드라이브를 떠나는 사람이었다. (...) 엄마가 아픈 이후에는 아빠가 그 말을 자주 한다. 참는 건 없다. 참는 건 병이다. 참지 마라. 뭐든 참지 말고 슬프고 답답하면 그곳을 벗어나라. 그렇게 살아도 된다.
🏷️ 우리 엄마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다행히 과거형이다)
따라서 참고 버티는 것을 중요한 자세로 배우고 자랐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프지 않은 이상 무조건 학교와 학원을 빼먹지 못하는 청소년으로 자랐고.. 그 때문인지 참지 마라, 견디지 않아도 된다 등의 힘을 빼주는 말이 가장 큰 위로로 다가온다. 어차피 타인이 그렇게 말해준대도 끙끙 버틸 테니까.. 나의 버팀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달까?

(127p.) 사실 독신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지 외롭겠다가 아니잖아요. 무엇이든 마음을 줄 수 있는 존재라면 외롭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걸 잘 찾는 게 일인 것 같아요.

(143p.) 예컨대 이런 말, '발다인잠카이트(waldeinsamkeit)'
라는 독일어는 '숲속에 혼자 남겨진 기분, 편안한 고독감, 그리고 자연과 맞닿은 느낌'을 담은 단어라고 한다. 현대인들이 거의 느끼지 못하는 거대한 기분을 이 한 단어가 고요히 품고 있다.
🏷️ 우리 집을 떠올렸다. 산속에 고요히 있는 본가. 나는 늘 그곳에서 발다인잠카이트를 느낀다.

(154p.) 제가 생각했던 그 애의 장점을 본인이 알고 있다는 게 좋았어요.
🏷️ 나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다. 그가 자신이 얼마나 빛나는 장점을 가졌는지, 타인이 말해주어서가 아니라 꼭 스스로 발견해 내었으면 한다.

(179p.)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일단 쓰기 시작하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쓰기가 나를 구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181p.) 오래 안 갈 것도 알아요. 그러니까 어느 순간에는 내가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걸, 반드시 3,4년 안에 그 시기가 온다는 걸 알고 있어요. 지금은 이 모든 것을 바짝 불태우고 집중해야 되는 시간이란 걸 아니까 오히려 그냥 태울 수 있을 때 더 크게 태우자 다짐해요. /선란

(182p.)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물론 너무 급할 필요는 없지만, 조금 미성숙할 때 도전해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일들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제가 오랫동안 타오르지 않을 것도 알고요. 분명 어느 순간 나는 모든 불을 잠시 끄고 딱 하나의 불씨만 키워둘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조금 더 대범해지는 것 같아요. /선란

(213p.) 나는 인간이 상상하고 꿈꿀 수 있기에 외롭다고 믿는다. 상상과 현실에는 간극이 있고, 그 간극 속에서 우리는 공허해진다. 현실에서 즐거움을 더 많이 발견하고, 현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인간은 꿈꾸는 인간보다 덜 외롭다고도 믿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인간은 꿈을 꿀 수 있는 존재기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외롭다. 빈도와 농도는 다르겠지만.

(217p.) 나는 모두가 꿈을 꿨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은 마치 모두가 외로웠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어차피 우리는 모두 외로우니까 외로운 김에 꿈을 더 꾸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꿈을 꿀 시간 없이 바쁘고 지치면, 그 꿈을 내가 대신 꿔주겠다고 말해야지. 당신이 자는 동안에도, 일하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꿈꾸는 사람이 되겠다. 그렇게 그 꿈을 잘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돌려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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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주고받았던 교환일기가 생각난다. 서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마치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인 양 서로를 나누었던. <일기떨기>의 이들과 같은, 그런 교환일기 같은 대화를 굳이 더 자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의 삶을 나누어 가지고, 응원하며 나아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곤 떠오르는 얼굴들에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떠올리기만해도 기분 좋은 웃음을 만드는 이들이 곁에 있음에 새삼 감사하다. 우리는 이미 서로를 나누어 가졌으니, 앞으로도 이들과 지금처럼 엉망으로 열심히 살아나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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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텍스투라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노승영 옮김 / 읻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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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시, 소설을 통해 평생을 문학에 천착해온 포가 말년에 《유레카》를 집필한 것은 단지 과학적 사실의 영역을 논파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이 책은 자연 철학과 과학에 관한 희극적 풍자로 시작하지만, 곧이어 진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도취와 완벽한 ‘신의 플롯’으로 짜인 우주에 관한 성찰을 지나며 인간이 왜 무한을 사유할 수밖에 없는지, 왜 세계에는 악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오래된 질문에 도달한다.
포의 엄숙하고 장중한 글에서 ‘원초적이고 무연한 하나’로부터 시작한 우주는 종국에 무로 회귀하며, 인간의 개별적 정체성은 끝내 신의 총체적 의식 속에 합쳐진다. 철학, 종교, 과학, 문학이라는 개별 영역의 구분은 포의 예언적 서술 안에서 무화되며, 삶과 세계의 의미를 끝없이 질문하는 인간의 운명 안에서 합일을 이룬다."
(출판사 서평 中)


19세기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드거 앨런 포의 산문시, 《유레카》는 포가 1848년에 행한 강연 〈우주의 구조에 대하여〉의 내용을 엮은 책이다. 추리 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던 그가 이런 책을 썼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내용 역시, 책 소개만 읽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세상에.. 이걸 100% 이해하면서 읽는 사람이 있다고? 몇 번을 다시 읽고 또 읽으며 좌절에 빠졌다가 황당에 빠졌다가... 도저히 못 참고 옮긴이의 말로 넘어갔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이 책을 펼쳐 앞부분 몇 페이지를 읽다 말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책장을 휘리릭 넘겨 이 '옮긴이의 말'로 건너뛴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영어판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나 또한 그랬으니까." (옮긴이의 말 中, 175쪽) 덕분에 안심하고 꾸준히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하나씩 전부 이해하려 하기보단 직관으로 받아들였다는 편이 맞겠다.
(국내에서 번역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고 있다. 19세기 미국 영어로 쓰였을 원문을 번역한 노승영 역자님께 깊은 감탄을 보낸다..!)

저자는 우주의 유한성을 논증하며 빅뱅 우주론, 올베르스 역설의 해답, 다중 우주론 등.. 연역과 귀납이라는 전통적인 합법을 벗어나 직관적 도약을 통해 과학적 발전이 이루어짐을 강조한다. 오직 직관만이 “오롯이 자신의 영혼에서 비롯한 진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가 전하는 진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도취와 완벽한 “신의 플롯”으로 짜인 우주에 관한 성찰을 읽으며 잠시 우주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현재 나를 어지럽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져, 제3자의 입장으로 삶을 바라보게 되었달까? 물론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얼마나 방대한, 어쩌면 내가 전혀 모르는 것들이 가득할지. 철학, 종교, 과학, 문학을 넘어 또 다른 세계를 배워가는 데에도 남은 생이 벅차겠구나- 생각하며 그저 직관으로 감탄할 수는 있었다. 더불어 내가 전혀 모르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쳐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니 새삼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후에 꼭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조금 더 우주를 알게 되었을 때, 삶의 경험이 쌓여 포의 깊은 통찰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말이다. 더 깊은 감동과 감탄이 터져 나오길 기대하며
삶과 세계의 의미를 끝없이 질문하는 인간의 운명 안에서 꾸준히 살아나가겠다.


​—

#책속의한줄🔖

(9p.)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ㅡ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는 느끼는 사람들에게 - 꿈꾸는 사람들과 유일한 현실을 믿는 만큼이나 꿈을 믿는 사람들에게 ㅡ 단지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로 충만하여 이 책을 참되게 하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이 '진리의 책'을 내놓는다.
이 사람들에게 나는 이 글을 오로지 예술 작품으로서 바치는 바다 ㅡ 로맨스라고 말해도 좋겠고, 내가 너무 오만한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면, 시라고 말해도 좋겠다.

(37p.) 하지만 가장 훌륭한 '생각'은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며, 다소 뭉뚱그려 표현하자면 정시의 안개 중에서 정신적 영역의 바로 그 한계까지 뻗어나가 이런 한계를 이해하는 것조차 가로막는 안개보다 더 지독한 것은 없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77p.) 그리하여 원자들이 전체적 중심을 향하는 성향은, 모든 현실적 취지와 모든 논리적 목적에 비추어 보건대 서로가 서로를 지향하는 성향이고, 서로가 서로를 지향하는 성향은 중심을 향하는 성향이며, 한 성향을 다른 성향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고, 하나에 적용되는 것은 무엇이든 다른 하나에 속속들이 적용될 수 있어야 하며, 결론적으로 하나를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원리가 다른 하나도 설명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118p.) 이 우주적 '무리의 무리'를 이루는 무리는 바로 우리가 으레 '성운'으로 지칭하던 것에 불과하며 ㅡ 이 '성운' 중에는 인류의 최고 관심사가 하나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은하수다. (...) 하지만 은하수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된 이유는, 덜 직접적이긴 하지만, 우리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166p.) 나는 최종적인 구들의 구가 무목적적임을 지각하는 순간 나의 독자 대부분이 나의 "따라서 존재를 지속할 수 없다"라는 표현에 만족할 것임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184p.) 지금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면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라. 우주적 순화의 거룩한 심장이 뛰고 있는 소리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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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인간 선언 - 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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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떻게 낙담과 냉소와 체념의 행렬에 동참하지 않았어?
어떻게 최종적으로 희망을 택했어?(204쪽)”


우리가 사는 지금은 ‘인류세’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를 말한다. 인류가 지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어마어마한 지리역학적 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6쪽). 폭염, 수몰, 이상기후, 빙하유실 ,산불... 인류세의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활자 속의 개념이 아닌 우리의 삶 속에 실재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중심적 현 세대에 단호히 문제를 제시하며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난 “탈인간(중심주의)”를 제안한다.

저자는 나르시시스트 인류가 초래한 인간중심주의적 가치와 관습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하고, 포기와 낙담 대신 책임과 변화를 택하기 위한 힘을 전한다. 그 방식은 직설적이고 유쾌하다. 동시에 묘한 통쾌함까지 선사한다. 돌려 말하는 바 없이, 시원하게 전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호소하는 저자는 날카로운 통찰로 독자의 기후위기 인식 세계를 넓힌다.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려는 다양한 시도들과 <탈인간 선언>의 차이가 있다면, 이 책이 이론이나 사고실험, 지적 유희가 아니라 현실과 호흡하면서, 또 변화를 갈망하면서 얻은 실천적 성찰들의 모음이라는 점이다(16쪽). 일간지에 4주마다 게재되는 짧은 칼럼이라는 조건은 오히려 저자가 시의성 있게 응답하기 위해 온갖 ‘현장’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변을 걸러내 꼭 필요한 말에 집중하도록 강제한 장치가 되었다.

‘환경적 영향에 대한 생각 없음’이 지구에 대한 큰 범죄 행위를 낳는다는 문장이 맴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논한 ‘악의 평범성’처럼 말이다. 생태적 맥락에서 고쳐 쓰인 위 문장은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짙게 물든 우리가 쉽게 행하는 반생태적 생활방식과 밀덥하다. 더불어 매우 근면한 인간이었던 전범 아이히만처럼 ‘생태적 악’ 역시 수행하는 자들의 부지런함과 꾸준한 자연 파괴가 동반된다. 너무나도 쉽게 ‘제 몫의 파괴’를 해낸다는 것이다(114쪽).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진다고 믿는다. 완벽히 ‘탈인간’하기란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훌륭한 환경운동가가 될 자신도 없지만, 나는 또 내일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겠지만. 다만, “냉소와 포기라는 간편한 선택 대신 책임을 택하는 새로운 인간으로의 전환”을 자주 생각하려 한다. ‘환경적 영향에 대한 생각 있음’으로, 반생태적 생활방식에 나태함으로 행동을 더하며 말이다. 인류세에 살고 있는 인간임을 꾸준히 부끄러워하겠다.

더불어 코로나19 때 정책과 개인의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을 기억한다.
유독 기후위기 대응책에선 구조적 변화와 개인의 실천이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듯하다. 하나에 주목하면 다른 하나는 소홀히 한다는 택일관계로 보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해법은 오로지 체제 전환뿐이라며 작은 실천을 폄하하고 다른 쪽은 개인의 실천만 강조한다(43쪽).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한 이분법을 떠나 기후위기 역시 이 둘의 조화와 병행을 통해 강력한 소통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렇게 혼자 물으면서도,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답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희망을 의식하지도, 굳이 찾지도 않았으리라.
단지 너무도 중요하고 긴급해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스스로 희망이 된 것이리라. 이것이 내가 희망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부이다. 남은 건 무엇을 하느냐뿐이다.(204쪽)”


​—


#책속의한줄🔖

(9p.) 탈인간은 먼저 탈인간중심주의의 준말로, 말 그대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그것이 몸부림인 이유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벗어남을 완벽히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12p.)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는 일은 또 다른 중심을 세우는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심은 비워둬도 괜찮다. 굳이 ‘인간중심’의 반대말을 꼽으라면 나는 차라리 ‘인간 매개’라고 하고 싶다. 중심에서 매개가 되는 것, 게다가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는 것.

(13p.) 이렇듯 인간이란 협소한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다른 존재들, 타자이다. 고로,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 타자에게 주목하는 것은 탈인간의 출발점이다. (...) 도구적•실용적인 관점을 떠나 우리에게 여하간의 쓸모가 없더라도, 오롯이 존재 그 자체로서 (타자의) 살아갈 이유를 긍정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라는 윤리적 명령이 각 인간의 쓸모와 무관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19p.) 미셸 푸코의 말처럼 “이제 목표는 우리가 누군지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제의 인간이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30p.) 전 국민이 ‘골든타임’이란 용어를 단일 사건과 연결시켜 기억하는 나라, 우리 말고 또 있을까?

(73p.) “마지막 물고기를 먹고 나서야 인간은 깨달을 것이다, 플라스틱을 먹었다는 것을.”

(75p.) 그들은 기성세대를 애써 좋게 봐주려고 노력도 한다. 설마, 그래도 어른들인데 한편에선 진지하게 고민들을 하겠지? 순진한 기대다. 우리는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다!

(77p.) 한 10대 활동가가 내게 물었다, 이 판국에 어떻게 힘을 내냐고. 힘? 솔직히 안 난다. 내 세대와 위 세대를 보면 대개 힘보단 화가 난다. 하지만 부끄러워서 낸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우려고 뭐라도 하려고 한다. 이 수치심은 나의 탄소발자국만큼이나 쉽게 지워질 성격의 것이 아니다.

(91p.) 정말 나와 상관도 없는 연예인의 신변잡기는 그토록 와닿고, 전 지구적 생태위기는 전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그 피부가 문제다! 회복 불가능한 지구 가열을 막아낼 시간이 겨우 10년 남았다고 기후학자들이 경고한 게 벌써 몇 년째인데도 와닿지 않는다고? 그럼 가닿으라!

(106p.) “물 들어오면 노를 잠시 놓으라. 그리고 물길을 읽으라 이 물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열심히 따라가면 나는 무엇에 기여하게 되는가. 다시 돌아오지 못해도 좋은가.”

(111p.) 경쟁과 분열을 연료로 돌아가는 사회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파이가 커져도 대다수가 행복을 느끼며 살기 불가능하다는 걸-

(142p.) 어리석음이란 순우리말로 ‘얼’이 ‘썩은’, 즉 정신이 썩은 상태다. 지능이 낮은 것이 아니다. 지능이 높아도 얼마든지 어리석을 수 있다.

(163p.) 이쯤 되면 인플루언서의 실제 역할은, 흥미는 끌되 심기는 안 건드릴 적당한 콘텐츠를 공급하며 체제 공고화에 일조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한마디로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인플루언서는 인플루언스(영향)을 주는 척 안 주는 사람인 것이다.

(164p.) 넬슨 만델라나 마틴 루서 킹 같은 인물은(한 번도 인플루언서라 불린 적도 없이!) 영향력을 돈과 결부시키지 않고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데 일조했음을 상기하자. 인플루언서라는 말을 쓰거나 들을 때 일론 머스크 대신 간디를 떠올리면 지금 우리가 받는 영향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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