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텍스투라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노승영 옮김 / 읻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평, 시, 소설을 통해 평생을 문학에 천착해온 포가 말년에 《유레카》를 집필한 것은 단지 과학적 사실의 영역을 논파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이 책은 자연 철학과 과학에 관한 희극적 풍자로 시작하지만, 곧이어 진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도취와 완벽한 ‘신의 플롯’으로 짜인 우주에 관한 성찰을 지나며 인간이 왜 무한을 사유할 수밖에 없는지, 왜 세계에는 악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오래된 질문에 도달한다.
포의 엄숙하고 장중한 글에서 ‘원초적이고 무연한 하나’로부터 시작한 우주는 종국에 무로 회귀하며, 인간의 개별적 정체성은 끝내 신의 총체적 의식 속에 합쳐진다. 철학, 종교, 과학, 문학이라는 개별 영역의 구분은 포의 예언적 서술 안에서 무화되며, 삶과 세계의 의미를 끝없이 질문하는 인간의 운명 안에서 합일을 이룬다."
(출판사 서평 中)


19세기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드거 앨런 포의 산문시, 《유레카》는 포가 1848년에 행한 강연 〈우주의 구조에 대하여〉의 내용을 엮은 책이다. 추리 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던 그가 이런 책을 썼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내용 역시, 책 소개만 읽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세상에.. 이걸 100% 이해하면서 읽는 사람이 있다고? 몇 번을 다시 읽고 또 읽으며 좌절에 빠졌다가 황당에 빠졌다가... 도저히 못 참고 옮긴이의 말로 넘어갔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이 책을 펼쳐 앞부분 몇 페이지를 읽다 말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책장을 휘리릭 넘겨 이 '옮긴이의 말'로 건너뛴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영어판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나 또한 그랬으니까." (옮긴이의 말 中, 175쪽) 덕분에 안심하고 꾸준히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하나씩 전부 이해하려 하기보단 직관으로 받아들였다는 편이 맞겠다.
(국내에서 번역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고 있다. 19세기 미국 영어로 쓰였을 원문을 번역한 노승영 역자님께 깊은 감탄을 보낸다..!)

저자는 우주의 유한성을 논증하며 빅뱅 우주론, 올베르스 역설의 해답, 다중 우주론 등.. 연역과 귀납이라는 전통적인 합법을 벗어나 직관적 도약을 통해 과학적 발전이 이루어짐을 강조한다. 오직 직관만이 “오롯이 자신의 영혼에서 비롯한 진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가 전하는 진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도취와 완벽한 “신의 플롯”으로 짜인 우주에 관한 성찰을 읽으며 잠시 우주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현재 나를 어지럽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져, 제3자의 입장으로 삶을 바라보게 되었달까? 물론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얼마나 방대한, 어쩌면 내가 전혀 모르는 것들이 가득할지. 철학, 종교, 과학, 문학을 넘어 또 다른 세계를 배워가는 데에도 남은 생이 벅차겠구나- 생각하며 그저 직관으로 감탄할 수는 있었다. 더불어 내가 전혀 모르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쳐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니 새삼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후에 꼭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조금 더 우주를 알게 되었을 때, 삶의 경험이 쌓여 포의 깊은 통찰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말이다. 더 깊은 감동과 감탄이 터져 나오길 기대하며
삶과 세계의 의미를 끝없이 질문하는 인간의 운명 안에서 꾸준히 살아나가겠다.


​—

#책속의한줄🔖

(9p.)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ㅡ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는 느끼는 사람들에게 - 꿈꾸는 사람들과 유일한 현실을 믿는 만큼이나 꿈을 믿는 사람들에게 ㅡ 단지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로 충만하여 이 책을 참되게 하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이 '진리의 책'을 내놓는다.
이 사람들에게 나는 이 글을 오로지 예술 작품으로서 바치는 바다 ㅡ 로맨스라고 말해도 좋겠고, 내가 너무 오만한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면, 시라고 말해도 좋겠다.

(37p.) 하지만 가장 훌륭한 '생각'은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며, 다소 뭉뚱그려 표현하자면 정시의 안개 중에서 정신적 영역의 바로 그 한계까지 뻗어나가 이런 한계를 이해하는 것조차 가로막는 안개보다 더 지독한 것은 없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77p.) 그리하여 원자들이 전체적 중심을 향하는 성향은, 모든 현실적 취지와 모든 논리적 목적에 비추어 보건대 서로가 서로를 지향하는 성향이고, 서로가 서로를 지향하는 성향은 중심을 향하는 성향이며, 한 성향을 다른 성향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고, 하나에 적용되는 것은 무엇이든 다른 하나에 속속들이 적용될 수 있어야 하며, 결론적으로 하나를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원리가 다른 하나도 설명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118p.) 이 우주적 '무리의 무리'를 이루는 무리는 바로 우리가 으레 '성운'으로 지칭하던 것에 불과하며 ㅡ 이 '성운' 중에는 인류의 최고 관심사가 하나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은하수다. (...) 하지만 은하수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된 이유는, 덜 직접적이긴 하지만, 우리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166p.) 나는 최종적인 구들의 구가 무목적적임을 지각하는 순간 나의 독자 대부분이 나의 "따라서 존재를 지속할 수 없다"라는 표현에 만족할 것임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184p.) 지금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면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라. 우주적 순화의 거룩한 심장이 뛰고 있는 소리인지도 모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