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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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든 글 쓰는 세 사람의 '일기'로 수다 '떨기', 화제의 팟캐스트 <일기떨기>의 단행본!
대담의 형식에 큰 매력을 느낀다. 평소 인터뷰 읽는 것이 취미인 이유도 이와 같다. 줄글로 나열된 한 사람의 생각보다 주고받는 대화 읽는 편을 더 선호한다. 거기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이기까지 한 내용이라면 금상첨화, 그러니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가볍게, 쉽게 잠시 머리를 비우고 온전한 타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산뜻했다.

《천 개의 파랑》, 《나인》, 《노랜드》, 《이끼숲》 제목만 읽어도 설레는 SF 소설가 천선란,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 《아무튼, 아이돌》의 저자이자 참된 일기 인간 윤혜은, 주짓수부터 제과제빵, 점심시간에 하는 요가까지 다부진 취미 부자 편집자 윤소진이 만나 마음껏 나눈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말 그대로 ‘글’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취향, 성격, 일상 등 모조리 제각각인 세 사람이 서로의 글(일기)을 읽고 생각을 논하는(수다) 내용이다. (출판사 서평 中)

"누군가의 일기를 읽어버린 뒤에 그 사람을 친밀하게 느끼지 않는 법을 나는 모른다."는 김신지 작가의 추천사가 와닿았다. 나 역시 이들을 내 마음대로 친밀히 느끼기로 했으니까.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잠시 외롭지 않았다. 실제로 만나본 적 없는 이들이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의 대화를 듣는 듯했다. 내가 이들 안에 속해 함께 있는 느낌, 어떤 곳에서든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이들의 대화는 그만큼 다정하고, 배려 있다. 그저 하고 싶은 대화를 나눈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 얼마나 깊은 고민이 있었는지- 읽어보면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책속의한줄🔖 (과 마음 더하기)

(35p.) 너무 이해해요. 덕심이 크면 그냥 그곳에 모셔두고 싶잖아. 나는 여기에만 존재하고 싶고. /혜은
🏷️ 그나저나 선란 작가님도 세랑 작가님을 피해 다닐 정도로 큰 덕심을 갖고 계셨다니..! 괜히 반갑고.. 그래 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결국 서로를 덕질하며 먹여살리는구나.. 싶었던.. (왜냐면 제가 그러니까요)

(84p.) 지나고 나서 느끼는 게 어디예요? 그걸 못 느끼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게 제일 안타까워요. 실패를 그냥 실패로 받아들이는 사람. /선란
🏷️ 혜은이 거의 끝까지 시달리고 마치고 났을 때 '결국 해냈구나'라는 걸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느끼는 사람임에 위로받았다. 그리고 그런 혜은에 대해 이렇게 말해준 선란에게도. 겨우 다 지나가고 나서야 '그래, 그래도 이게 나를 변화시키는 어떤 한 구간이었어' 되뇌며 과정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까지.. 괴로워하는 과정이 닮은 이를 보며 나만 이런 것이 아님을 상기한다. 나와 닮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 신기하다.

(85p.) 저는 난관이나 처한 상황을 게임이나 하나의 소재로 생각하는 게 진짜 잘 돼요. 마치 내가 주인공 같잖아요. 나를 저 드라마 속에 주인공으로 넣어놓고 잠깐 떨어져서 어떻게 깨나 보자! 약간 이런 게 있어야 해요.

(93p.) 엄마는 시험공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면 괜찮다거나, 공부를 더 해야 한다거나, 참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아니었고 새벽 두 시에 우리를 차에 태워 월미도로 드라이브를 떠나는 사람이었다. (...) 엄마가 아픈 이후에는 아빠가 그 말을 자주 한다. 참는 건 없다. 참는 건 병이다. 참지 마라. 뭐든 참지 말고 슬프고 답답하면 그곳을 벗어나라. 그렇게 살아도 된다.
🏷️ 우리 엄마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다행히 과거형이다)
따라서 참고 버티는 것을 중요한 자세로 배우고 자랐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프지 않은 이상 무조건 학교와 학원을 빼먹지 못하는 청소년으로 자랐고.. 그 때문인지 참지 마라, 견디지 않아도 된다 등의 힘을 빼주는 말이 가장 큰 위로로 다가온다. 어차피 타인이 그렇게 말해준대도 끙끙 버틸 테니까.. 나의 버팀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달까?

(127p.) 사실 독신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지 외롭겠다가 아니잖아요. 무엇이든 마음을 줄 수 있는 존재라면 외롭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걸 잘 찾는 게 일인 것 같아요.

(143p.) 예컨대 이런 말, '발다인잠카이트(waldeinsamkeit)'
라는 독일어는 '숲속에 혼자 남겨진 기분, 편안한 고독감, 그리고 자연과 맞닿은 느낌'을 담은 단어라고 한다. 현대인들이 거의 느끼지 못하는 거대한 기분을 이 한 단어가 고요히 품고 있다.
🏷️ 우리 집을 떠올렸다. 산속에 고요히 있는 본가. 나는 늘 그곳에서 발다인잠카이트를 느낀다.

(154p.) 제가 생각했던 그 애의 장점을 본인이 알고 있다는 게 좋았어요.
🏷️ 나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다. 그가 자신이 얼마나 빛나는 장점을 가졌는지, 타인이 말해주어서가 아니라 꼭 스스로 발견해 내었으면 한다.

(179p.)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일단 쓰기 시작하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쓰기가 나를 구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181p.) 오래 안 갈 것도 알아요. 그러니까 어느 순간에는 내가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걸, 반드시 3,4년 안에 그 시기가 온다는 걸 알고 있어요. 지금은 이 모든 것을 바짝 불태우고 집중해야 되는 시간이란 걸 아니까 오히려 그냥 태울 수 있을 때 더 크게 태우자 다짐해요. /선란

(182p.)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물론 너무 급할 필요는 없지만, 조금 미성숙할 때 도전해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일들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제가 오랫동안 타오르지 않을 것도 알고요. 분명 어느 순간 나는 모든 불을 잠시 끄고 딱 하나의 불씨만 키워둘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조금 더 대범해지는 것 같아요. /선란

(213p.) 나는 인간이 상상하고 꿈꿀 수 있기에 외롭다고 믿는다. 상상과 현실에는 간극이 있고, 그 간극 속에서 우리는 공허해진다. 현실에서 즐거움을 더 많이 발견하고, 현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인간은 꿈꾸는 인간보다 덜 외롭다고도 믿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인간은 꿈을 꿀 수 있는 존재기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외롭다. 빈도와 농도는 다르겠지만.

(217p.) 나는 모두가 꿈을 꿨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은 마치 모두가 외로웠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어차피 우리는 모두 외로우니까 외로운 김에 꿈을 더 꾸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꿈을 꿀 시간 없이 바쁘고 지치면, 그 꿈을 내가 대신 꿔주겠다고 말해야지. 당신이 자는 동안에도, 일하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꿈꾸는 사람이 되겠다. 그렇게 그 꿈을 잘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돌려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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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주고받았던 교환일기가 생각난다. 서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마치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인 양 서로를 나누었던. <일기떨기>의 이들과 같은, 그런 교환일기 같은 대화를 굳이 더 자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의 삶을 나누어 가지고, 응원하며 나아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곤 떠오르는 얼굴들에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떠올리기만해도 기분 좋은 웃음을 만드는 이들이 곁에 있음에 새삼 감사하다. 우리는 이미 서로를 나누어 가졌으니, 앞으로도 이들과 지금처럼 엉망으로 열심히 살아나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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