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장면들 - 마음이 뒤척일 때마다 가만히 쥐어보는 다정한 낱말 조각
민바람 지음, 신혜림 사진 / 서사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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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지친 마음을 쓰다듬는 낱말]

[산문]

나는 가을부채가 되지 않기 위해 살아왔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꿈인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대외적으로 쓸모가 많은 사람으로 칭송받고 싶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아닌, 나만의 고유하고 대단한 능력을 손에 쥐고 싶었고, 그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다르게 결과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말과는 달리 당장 눈앞에 보이는 증명이 없으니 스스로에게도 당당할 수가 없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났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 맞나?' 누구와도 섞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과 척을 지게 되었다. 가까워질수록 점점 멀어질만한 구실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하나 둘 밀어낸 후 드디어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사람과 사랑이 필요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인정하고 나니 평범하지만 내게 맞는 사랑을 찾았고, 업신 여긴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되었다. 그제야 쓸모는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함이 참으로 특별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지금 평범한 괴로움과 행복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인용문]

[15p] 철 지나 쓸모없어진 물건을 '가을부채'라 한다. 전성기가 지난 사람의 신세. '가을부채'라고 하는 건 '한발 늦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17p] 조바심을 바꾸어 말하면 절박함이기도 하다. 그 마음 덕분에 항상 치열하게 살 수 있었다.

[19p]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있지만 기회비용을 통해 알게 되는 것들이 삶을 풍요롭고 깊이 있게 만든다. 당장은 잃은 것 같아도 멀리 보면 얻은 것일 수도 있고, 얻었다고 여길 때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기도 하다.

[23p] 삶의 본질은 바림과 닮았다. 서서히 짙어지고 서서히 옅어지는 일. 흐릿하고 애매모호한 것들의 연속. 모든 것에 모든 것이 조금씩 섞여 있는 상태. 나도 '사이'에 있는 사람이다.

[32p] 내가 관대한 문지기가 되기를 바란다. 속마음을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이 숨 쉬기 불편할 만큼 마음을 조이지 않기를, 풀쳐 생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걸 기억하기를 바란다.

[35p] 신체뿐 아니라 정신과 사회적으로까지, 게다가 '완전히' 안녕해야 한다니. 좀 너무들 한다 싶다.

[37p] 병과 비장하게 싸워 이겨내는 생활도 있지만, 완치를 기대하기보다 자신을 도닥이며 조금씩 나아가려는 태도도 있다. 낫지 못할 병과 평화롭게 반려하는 생활도 있다.

[47p]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건 부정적 요소에 직면할 힘을 그만큼 많이 가졌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고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파고들어 자신과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한 게 아닐까.

[57p] 나는 오늘도 해결되지 않는 깊은 고민들 속에 있다. 아마 언제나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그 사소한 행복이 마지막 전구의 불빛이라도 괜찮을 것 같다.

[67p]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한 건 아무도 없다고 느길 때의 날카로운 자유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품어주는 관계의 안정감이었다.






[2부 나아갈 길을 열어주는 낱말]

[산문]

한자리에 고여 있는 느낌이 강해졌을 때 퇴사를 결심했다. 맞지도 않는 회사에서 육 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냈으니,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해볼 차례였다. 그런데 세상은 역시나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욕망이 아닌, 나 하나 바꾸자는 계획이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사도 허술했고, 마음가짐도 단단하게 여물지 못했다. 퇴사 후 받고자 했던 목수 교육은 재밌었지만 생업으로 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면접을 다니며 본 사장님과 팀장님들은 손가락에 저마다 큰 흉터와 혹은 절단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겁이 많은 나는 그런 상처를 얻으면서까지 목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퇴직금을 야금야금 까먹으며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섯 시에 일어나서, 여덟 시까지 책을 읽었다. 그리고 여덟 시에 커피를 내려 마시며 정오까지 글을 쓰고, 독서를 했다. 정오 알람이 울리면 책상에서 일어나서 밥을 먹고 쉬면서 유튜브를 시청했다. 제일 상단에 뜬 영상은 편집자 K의 출판사 취업 관련 영상이었다. 그때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읽고, 쓰고, 내 글을 고치는 것이었다. 어차피 하기 싫은 일인데 그나마 잘하고, 흥미 있는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은가. 생각보다 너무 우연히, 생업으로 삼고 싶은 직업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인용문]

[74p] 어떤 일이든 하면 하는 만큼 정직하게 익숙해진다는 것. 불공평한 이 세상에도 괜찮은 점이 있다면 그것이다. 분야마다 사람마다 차이가 크긴 해도 몸에 밴다는 것 자체는 믿고 나아갈 수 있다.

[75p] 이제는 글을 쓰면서도, 마음을 치유하면서도 조바심이 날 때면 생각한다. 내가 나를 기다려주자고. 늘지 않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길이 든다고. 익숙해지고도 실수를 하듯이 간간이 슬럼프에 빠지면서 사는 것도 당연하다고.

[81p] 등단 시기가 이르면 힘이 빠졌고, 드물게 나와 비슷한 나이에 등단한 경우면 희망과 조바심이 동시에 생겨났다. 점차 그런 자신이 지질하게 느껴졌다. 내 삶의 속도를 남들과 견주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내가 늦지 않았다는 증거를 꼭 바깥에서 찾아야 할까. 이미 오랫동안 그런 삶의 태도 때문에 글 쓰는 일을 미뤄온 것이었다.

[92p] 사람이 항상 아름답게 살 수만은 없는 법인가 보다.

[95p] 내가 잃어버린 것을 누군가가 채워주길 막연히 바라는 마음.

[98p] 어떤 경험을 하든 내 것이 된다는 약속. 그것만은 인생이 사람에게 지키는 의리가 아닌가 한다.

[104p] 한 사람의 생각은 제한된 정보로 지극히 주관적인 사고 과정을 거친다. 감정 영향도 크게 받는다. 그러니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면 거기에 완전히 젖기보다 가능성을 두루 열어두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내 생각이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어, 이 생각도 곧 달라질 수 있어,라고.

[119p] 일상이 몸을 죄어올 때가 있다. 특히 눈에 보이는 성과 없이 제자리에만 머무는 것 같을 때는 그 자리에서 서서히 땅에 묻혀가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지금을 답답하게 느끼는 건 일상이 비좁게 느껴질 만큼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뜻일지 모른다.

[123p] 약자라는 피해의식에 빠져서 배려를 잃을 때도 인간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그리고 뭔가를 해야 할 때 하지 않는 것 역시 잘못된 일이 될 수 있었다.

[125p] 죄책감만큼 사람을 옭아매는 감정이 있을까. 죄책감은 후회되는 일의 모든 원인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처럼 믿게 만든다.

[133p] 한자리에 고여 있는 느낌이 들수록,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다고 느낄수록 사소한 일들의 의미를 느껴보는 것은 중요하다.






[3부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낱말]

[산문]

어떤 관계든 끝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 끝에 의연해졌다. 그렇게 틀어진 관계를 다시금 붙잡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래야만 내가 덜 다친 상태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이 나에게 독이 될 줄은 몰랐다. 끝이 어렵지 않으니 쉽게 절연했고, 내게 필요한 관계도 어렵지 않게 끊어냈다. 그렇게 성장에 목말라 분주하게 지내던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들었다. 스스로의 감정을 죽이면서까지 혼자여야만 할 이유는 없었다. 그 상태로는 어떤 성장을 이루어내든, 결국 흥미를 잃고 말았다. 흥미가 사라지니 지속할 힘도 증발했다. 때문에 아주 오랜 시간 방황했고, 가장 잘하는 일도 등한시했다. 그런 방황을 잡아주던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나는 계속해서 그릇된 길로 향하게 되었다. 그렇게 점차 어두워지기만 할 때 알베르 카뮈의 결혼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우리는 사랑과 욕망을 만나러 나아간다. 우리는 교훈을 찾지 않고, 위대함의 씁쓸한 철학도 찾지 않는다. 태양과 입맞춤과 야생의 향기 외에는 모두 쓸모없어 보인다. 나는 여기서 굳이 홀로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종종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여기에 오곤 했고, 그들의 표정에서 사랑의 얼굴이 짓는 해맑은 미소를 읽어냈다. 이곳에서 나는 질서와 절제 따위는 남 줘버린다. 나를 송두리째 휘어잡는 것은 저 자연과 바다의 위대하고 자유분방한 사랑이다. - 알베르 카뮈 《결혼》


덕분에 지금은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에 대해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즐거운 노력을 한다. 그리고 다시금 그들의 사랑을 망각할 때 카뮈의 결혼을 읽는다. 믿지 못하겠지만, 놀랍게도 이 거장의 글 속에 내가 보인다. 그렇기에 읽고, 행동하고, 내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힘을 쓴다. 그것이 조금 지칠 때도 있지만 행복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이 글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친다.


[인용문]

[142p] 어떤 관계든지 훼손되고 나면 되돌리기 어렵고, 긴 시간 훼손되지 않기란 불가능하니 길어지면 모두 망가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 관계는 그런 게 아니었다. 훼손된 흔적을 지워야만 건강하게 지속되는 게 아니라, 시간 위에 함께 남기는 흑적 그 자체였다.

[143p] 관계 안에서 완벽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답도 없다. 그러니 말끔했던 처음과 같이 되돌리려 애쓸 필요가 없다.

[152p] 맞은바라기에서 당신은 나를 보고 있다. 나도 당신을 본다. 멀어지니 당신의 얼굴이 잘 보인다.

[156p] 언제나 내 귀찮음과 맞아떨어지는 엄마의 배려를 내심 반겼기 때문이다.

[180p] 말도 주워 담을 수 있다. 적어도 주워 담으려는 노력을 보여줄 수는 있다.

[193p] 나는 사람들의 사소한 선의가 좋다. 이런저런 일에 마음을 다치다가도 작은 다정함에 위안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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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빛을 따라서
권여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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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모든 것의 시작]
[줄거리]
작은 슈퍼를 운영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은세는 슈퍼 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배달 서비스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은동이는 그것이 항상 불만이었지만, 언니 은세처럼 과하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은동이는 또래의 아이들처럼 닭장속 닭이 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배우라는 꿈을 안고 아카데미에 등록하기 위해 돈을 모았다. 은동이 수입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할머니였다. 은동이는 '제 이름 석자도 모르는 빙신'이라는 말로 자조를 시작하는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적당한 삵을 받았다. 한글을 가르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는 결국 제 이름 석자와 제 아들 이름 석자를 쓸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할머니의 한글 실력이 늘어갈 때 마다 은동이의 배우 아카데미 학원 수강료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인용문]
[51p] 누군가에게는 장난전화처럼 보이겠지만, 곧 합류할 세계의 안부를 묻는 중요한 일이었다. 오늘은 한발 더 나아갈 생각이다. 나는 닭이 되고 싶지 않았다.
[56p] '괜찮아, 할 수 있어' 마음속으로 나를 다독였다. 그러다가 눈이 쏟아졌고, 그게 마치 성공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착각이든 뭐든 간에 내 안에 희망의 기운이 꽉 찬 건 분명했다. 그런 마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72p] 학교가 내 세계의 전부였다면, 나느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었다.

[서평]
간절하게 소망했던 꿈이 있다. 그것은 남들처럼 한 가지의 꿈은 아니었다. 14살 땐 일본 만화를 보며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이 꿈이었고, 15살 땐 한적한 카페의 사장이 되는 것이 소망이었다. 그리고 16살 땐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17살 땐 학교의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탈출하는 게 염원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사회의 제도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게 버거웠다. 어릴 때 꾸던 꿈을 너무도 오랜 시간 유지한 탓일까, 남들 다 하는 적응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버티고만 있었다. 그래서 적응이 필요 없는 진정한 내 삶을 사는 것이 절실했다.

자율학습이라는 이명 아래 강제적으로 동의서를 제출해야만 하는 고등학교가 이상했다. 그것에 대한 불합리함을 토로하면 되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자유, 평화를 외치는 군중들은 많았지만 정작 주변에 그런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재의 어른들은 자신들의 성향을 드러내기 바쁘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사상을 주입할 시간에, 자율학습이 아닌 강제학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인지시키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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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와 도미노 알맹이 그림책 67
조우영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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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이건 세상에서 가장 큰 도미노 놀이야. 저 작은 참새가 망쳐 버리면 안 돼!" 

흥분한 사람들은 총까지 꺼내 들었어요.


사람들은 참새가 총에 맞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참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날아갔어요.

참새에게도 빨간 도미노가 생겨 참 다행이에요.

모두가 기분 좋은 날이었어요.






[서평]

동화 속 사람들은 작은 참새가 자신들의 엄청 큰 도미노 놀이를 망칠 것이라 지레 짐작한다. 우리의 현 상황과 참으로 비슷하다.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나와 다른 남은 적이다라는 고리타분한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다. 너는 나와 다르니 증명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또 해명을 주석처럼 달고 살라며 윽박지른다. 세상은 '보통 사람은 이러니까 혹은 대게 그러니까'라는 명제로 이루어져 있는 듯하다. 나는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동화 속 참새가 된 것만 같다. 때문에 편견에 맞서 독수리가 되고자 했다. 그게 어렵다면 까마귀라도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하면 적어도 내 앞에서 직접적으로 차별의 언어를 살포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본질은 해결되지 않았다. 내가 싫다고 면전에 이야기할 수 없다 뿐이지, 나를 싫어하는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말들에 상처받은 내 마음도 딱히 치유되진 않았다. 나이가 들어 굳어진 뇌에 동화 속 참새가 말한다. 나쁜 일은 잊고, 좋은 일을 만들어 나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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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속에서 봉기하라 -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저항법
다카시마 린 지음, 이지수 옮김 / 생각정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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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는 이념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상황에 이념을 대입하고, 모두를 괴롭게 만든다. 갈라 치기를 좋아하는 그들은 어쩌면 싸움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념을 외치고 그것의 정당성을 내뱉는 그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를 끌어내리는 것에만 심취하는 정신병적인 사상과, 누군가를 죽여야만 마음이 편한 사람들의 다툼은 근처에 있는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가 오게 된다. 제발 나에게 좌와 우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독거노인에게 연민을 느낌과 동시에 현대의 이십 대 젊은 사람들에게도 연민을 느낀다. 바꿔야 할 제도가 있다고 보면서도 유지하는 게 더 좋아 보이는 제도도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 당신들의 이념에 끼워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서평이 불편한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인용문]

나는 적어도 여성 차별 이외의 이슈에 관심을 두지 않는 자세는  페미니스트로서 틀렸다고 본다. 약자의 입장에 놓인 모든 사람을 힘닿는 대로 옹호하고, 누군가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는 공간의 형성을 저지하는 데 있어서 아나카 페미니스트의 사상은 혁멍의 중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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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 책 읽는 샤미 29
정화영 지음, 드로잉민 그림 / 이지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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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어느 날 떠돌이 개 고스트가 무작정 윤수를 따라오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윤수가 살고 있는 할아버지댁은 유기견 보호소였다. 어느 날 윤수는 할아버지가 더 이상 개들을 돌볼 수 없어서 곧 다른 보호소로 보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고스트는 사모예드라는 대형견이었고, 그런 개들은 입양이 잘 되지 않아 안락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윤수는 할아버지 몰래 고스트를 산으로 대피시키게 된다. 하루가 지나고 윤수는 다시금 산에 올랐지만 고스트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날 윤수의 집에 경찰이 찾아왔었다. 경찰은 대형견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하루빨리 고스트를 잡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사살할 수도 있다고 했다. 윤수는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친구 인규에게 고스트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둘은 함께 전단지를 붙여가며 밤늦게까지 고스트를 찾았다.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온 윤수는 낙심한 채 방 안에 있었다. 윤수는 혹시 몰라 현관문을 열고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대문 밑에 어떤 하얀 물체가 있는 듯했다. 윤수는 헐레벌떡 대문 앞으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고스트가 있었고, 윤수는 크게 반가워하며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다음날 윤수는 고스트를 방에 두고 등교를 했다. 그리고 인규에게 고스트가 돌아왔다며 자랑을 했고, 하교 후 같이 고스트를 보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윤수의 바람과는 다르게 고스트는 집에 없었다. 윤수는 크게 놀란 나머지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고스트를 어쨌냐며 화를 내게 된다. 윤수가 생각하기에는 할아버지가 일부러 고스트를 내보낸 것만 같았다. 장대비가 내리는 날 밤 윤수는 무작정 고스트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윤수는 처음 고스트를 대피시켰던 산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비에 홀딱 젖은 고스트를 발견했고, 윤수는 다시금 고스트를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하루는 고스트를 산책시키고 있는데, 고스트가 갑자기 어딘가로 뛰기 시작했다. 고스트가 도착한 곳은 동물농장이었는데, 그곳에서 고스트와 같은 종인 사모예드를 만나게 된다. 고스트가 계속해서 바깥으로 나가는 이유는 동물농장에 있는 엄마를 찾기 위해서였다. 고스트의 엄마는 두 달에 한 번씩 강제로 새끼를 낳는 번식견이었는데,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윤수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다음 날 고스트는 마지막으로 엄마를 보기 위해 또 밖으로 향했다. 윤수는 다시금 고스트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서게 된다. 그때 윤수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전단지에 붙어 있는 사모예드를 보았다는 제보였다. 윤수는 고스트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게 된다.


고스트는 어떤 건물 앞에 있는 경비실에 묶여 있었다. 그것을 본 윤수는 안심을 하며 자신이 가지고 온 목줄로 갈아 끼운 뒤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고스트가 버티며 집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자 이상하게 생각한 윤수가 경비아저씨에게 저 건물에 개가 있냐고 묻는다. 경비아저씨는 저곳에 애견미용실습학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건물 안은 개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윤수는 혼자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마주한 광경은 참담했다. 말이 애견미용실습실이지, 거의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개의 목을 꺾듯이 붙잡고선 강제로 털을 깎았다. 그곳에서 윤수는 배가 봉합된 지 얼마 안 된 하얀 사모예드를 마주하게 된다. 윤수는 그 개가 고스트의 엄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윤수와 고스트 그리고 고스트 엄마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책을 구매해 주세요.]






[인용문]

[50p] 안라사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다. 말이 그럴듯해도 결국엔 죽인다는 건데, 편안하게 죽인다고 안락사라니. 안락한 죽음은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164p] '책임 있는 진짜 보호자가 되어야 해. 나는 너와 진짜 가족이 되고 싶어.'






[서평]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함부로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귀엽다는 이유로 섣부르게 동물을 입양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키우기 어렵거나, 어떤 애로사항이 있으면 쉽게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애견공장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자유롭게 번식을 하는 게 아닌 강제로 번식을 시키고 새끼를 낳을 힘이 없는 개는 배를 절개해서 새끼들을 꺼낸다. 이후 더 쇠약해진 개들은 식용으로 팔거나, 소설 속 개들처럼 애견미용실습학원으로 보내진다.


나는 개를 먹지는 않지만 개식용을 반대한다거나,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아무래도 동물로 하는 실험은 내게 큰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동물 실험의 끝도 결국에는 죽음이다. 그곳에 인도는 없다. 그리고 동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사실 당장 내 입으로 들어오는 것들이 자유롭게 살면서 생활수준이 올라가면, 그만큼 가격도 오른다. 


전 세계에서 가장 고통받으며 새끼를 낳는 동물은 닭일 것이다. 아쉽지만 개가 아니다. 닭은 대략 0.2평 정도의 공간에서 평생 알만 낳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물론 자기 새끼는 보지도 못한다. 그 친구들의 공간을 넓혀보자, 그리고 최대한 인도적이게 행복하게 사육해 보자. 그렇다면  삼십 알에 팔천 원 정도 하는 달걀의 가격은 빠른 시일 내에 만원이 될 것이고, 우리가 눈치채기 전에 만 오천 원이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런 기본적인 식재료의 가격이 올라간다면, 우리의 기본적인 식사의 질은 떨어지나, 가격은 올라가는 것을 초례하게 된다. 동물의 동물권을 생각할수록 인간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고통받고 학대받는 동물들을 보면 마음이 아픈 것은 사실이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에 힘을 쓰는 사람들을 욕할 생각도 없고,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삿대질할 생각도 없다. 나는 그저 지금처럼 방관만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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