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카페를 시원하게 말아먹고, 군대로 도피했다. 만 21세에 전역 후 건축자재 회사에서 주 5.5일을 일하다가, 더 안정적인 회사로 이직하는 것을 반복했다. 안전한 선택의 반복에선 단조로운 행복이 있지만, 내가 추구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높은 급여도, 많은 지인도, 값비싼 물건도 필요 없다. 한 달을 살아낼 수 있는 적당한 금전과 책 그리고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 남들이 하는 것을 반드시 해야 할 필요성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 나인 투 식스. 안전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출퇴근 시간이다. 나는 그것에 과하리만치 염증을 느낀다. 매일 아침 만원 전철에서,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싫음을 넘어서 괴롭다. 안전함을 선택한 후 역한 담배 냄새와 쉰내 그리고 개념 없는 인간들의 추태를 견뎌야만 한다. 그것이 안전함을 선택한 대가니까.
사회생활에 환멸을 느낀 나는 만 30세에 퇴사를 결심했다. 버틸 수 있는 최대치의 시간을 계산한 후 퇴직금을 균등하게 배분했다. 그렇게 각종 학원에 다니며 교육받았지만, 그것 또한 결국 근로자로 향하는 길이었고, 또 다른 안전한 선택일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안전한 것을 추구한다. 다만, 꿈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안전을 원한다. 모니터 앞에 8시간씩 앉아 있는 것에서 벗어나길 갈망한다. 판에 박힌 삶, 똑같은 고민과 시간은 고문과 같다. 나는 원래도 물질적인 욕구가 높지 않기에, 풍족하지 않더라도, 빈곤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살 필요 없는 것을 못 샀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식기세척기 대신 직접 설거지한다. 공기청정기보다는 창문을 열어서 환기하는 게 좋다. 따뜻한 내복을 입으면, 보일러를 가동할 필요가 없다. 최고급 영양제에 금전을 소비하기보다 근력 운동과 달리기를 하면 어떤가. 내면을 가꾸는 무료 명상 덕분에 값비싼 치장이 필요하지 않다. 문명의 이기를 위해 소중한 9시간(출퇴근 제외)을 허비하는 것은 최악이다. 집안일을 위해 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적어도 나의 고유한 선택이 아닌가. 나는 여전히 안전한 삶에 갇혀 있다. 하지만,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젠가, 이 안전하고, 안전한 닭장에서 벗어나겠다는 포부는 여전히 심장에 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