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코 후미코 -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
야마다 쇼지 지음, 정선태 옮김 / 산처럼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자유에 관한 생각이 날카롭지 못한 자의 외국관은 그가 외국에 관한 지식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진부할 수 밖에 없다.' - p.400

자기 자신을 국민이나 민족 등, 집단의 일원으로 밖에 구현할 수 없는 사람은 외국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이 속한 국민, 민족, 집단이 규정하는 추상적 외국관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그의 눈과 귀는 이미 국민 혹은 민족이란 틀로 고정되어버렸기 때문에 살아 움직이는 구체적인 사람들로서의 외국(인)을 볼 수 없게 된다. 근대화기의 많은 일본인들이 근대 국민으로 재탄생하면서 필연적으로 다다를 수 밖에 없었던 인식의 한계가 여기서 비롯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박열을 자유에 관한 생각이 가네코 후미코보다 날카롭지 못한 인물로 판단한다. 그는 아무래도 자기 자신보다는 민족에 더 육감적으로 반응했고 그가 주장한 '자유'란 실제 경험보다는 상상에 그친다고 본다. 박열에게 자유에 대한 열정은 금새 민족적 억압이란 문제에 흡수된다. 반면 후미코의 경우는 자유 그 자체로 팽창하고 그녀의 자살도 그 자유를 억누르려는 전향공작에 대한 최후의 저항으로 해석된다.

저자 야마다 소지의 그런 관점은 적어도 결과적으로 사실에 부합한다. 박열은 전향공작에 굴복하여 천황제를 긍정한다. (심지어 해방 후 친일 잔재 청산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한다.) 일본에서 여러 좌파 계열 중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천황제로 돌변하고 독일의 좌파 계열 중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나치즘으로 전향했던 것처럼 말이다. 반면 후미코는 정반대의 길을 간다. 그녀는 국가(천황)의 공작도 뿌리치고, 천황-가부장제적 일본 근대의 틀 자체를 목숨걸고 거부한 것이다. 그것은 국가도 민족도 가족도 아닌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다.

일본의 경우 폐번치현과 천황제 확립의 근대화 과정은 개인들을 '국민'으로 동원, 재탄생시키는 과정이었다. 근대화가 국민국가화와 병행되는 것이라면 다나카 쇼조나 가네코 후미코란 존재는 그런 방식의 근대를 뛰어넘어 삶의 구체적 경험에 바탕하여 탄생하는 '자율적인 개인'을 대표한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일본 사상사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위치를 높이 평가한다.

이 책의 부제,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란 말은 일본에서와 달리 여기 한국에서는 퇴행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며 이 책이 추구하는 주제와도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일본의 맥락에서 쓰인 부제라면 '민족적 정체성을 초월한 이상(혹은 개인)'을 의미하겠으나, 한국의 맥락에서 쓰인다면 후미코가 '조선의 민족적 불행'이란 집단적 동원 코드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독자들의 민족주의적 우월감(피해의식)을 노린 상업적 고려로 오인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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