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 문명
권용립 지음 / 삼인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본 저서는 미국에 대한 기존의 입장들, 예를 들어 선망과 두려움이 섞인 통속적인 시각과 지나치게 개별 현상들의 분석에만 치우친 실증적 시각, 혹은 좌파 쪽의 경제환원론으로부터 한 발 벗어나서, 미국을 하나의 독특한 정치적 문명으로 보고자 한다. 저자의 시각에 따르면 미국은 그리스-로마 문명과 기독교 문명의 구 서구세계와 연관되지만 혈연, 영토, 민족, 역사, 계급 등과 같은 요소보다는 독립 초기의 정치적 담론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나라란 점에서 구 서구와 다르며,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으로 명명된 그 독특성은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 외교 정책의 근본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고 본다.

나에게 저자의 이러한 논지는 애국주의적 미국 예외주의가 외부자적 시선으로 변형된 또 다른(애국과는 상관없는) 예외주의(나는 이를 '자폐증'로 부르고 싶다)로 보였다. 미국의 보수적 애국주의자들이 미국을 타락한 세계로부터 예외적인 것으로 분리시켰다면, 저자는 미국을 그 독특성으로 인해 자폐증에 걸린 나라 쯤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 자폐증적 현상은 일방주의가 거친 방식으로 준동하는 미국의 현 상태와 자주 오버랩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부분적으로만 우리에게 유용한 것 같다. 유용한 부분이 있다면 미국의 정치인들이 자국민들에게 행하는 정치적 담론들 속에 나타나는 반복적 행태를 이해하도록 돕는다느는 점이다. 이런 반복을 통해 미국은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반복 확인하고 미국적인 것과 비미국적인 것을 분리한다. 이런 식으로 저자의 시각은 미국 내 정치적 선전(및 담론)이 내부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는데는 유익하다. 반면 이런 시각은 자칫 미국에서 있었거나 있을지도 모를 유의미한 변화의 조짐들 마저 거의 원형론적 틀 속에서 질식시켜 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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