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기호 표지
조르주 나타프 지음, 김정란 옮김 / 열화당 / 1995년 4월
평점 :
절판


기호와 상징...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현대는 '기호의 시대'인가 아니면 '상징의 시대'인가? 기호는 뭐고 상징은 뭔가? 기호는 만능열쇠 흉내를 내면서 아무 것도 못 여는 자물쇠이고, 상징은 아무도 열지 못할 것 같은 자물쇠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이 열려고 시도하게 만드는 자물쇠다. 기호는 아무 것도 열지 못하면서 으시대는 현세중심적 낙관주의가 담겨있고, 상징은 열지 못한다는 자괴감으로 똘똘 뭉친 비관주의가 담겨있다.

이런 나의 사고방식을 따르자면 현대의 기호의 시대다. 모든 것이 간략한 이야기로 환원되고 누구든지 쉽사리 개조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별건가? 무한한 절충과 개조, 인용과 장식이다. 모든 것은 수평성으로 환원되고 우리는 그 수평적 얼음을 지치며 유희한다. 신나는 겨울이다. 그러나 겨울은 끝난다. 얼음이 녹으면 우리는 가라앉을 것이다. 기호가 수평적이라면 상징은 수직적이다. 바슐라르가 [공간의 시학]에서 지하실과 다락방이 없는 집(그러니까 오늘날 흔한 아파트)은 별 의미가 없는 집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같은 맥락에서 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에 음침한 지하실이나 번거로운 다락방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삶은 별 의미가 없다.

이 책에는 글자보다는 그림이 더 많다. 제목 그대로 상징, 기호, 표지를 싣고 있다. 주로 기독교 문화권의 것들이다. 기독교 상징들, 카발라 상징들, 연금술과 점성술의 상징들이다. 내게 이 모든 상징들은 인간들이 자신의 삶에 절대적인 의미를 찾고자 온 정신을 집중해 발버둥하는 행위로 보인다. 우리가 이 격렬한 발버둥을 염두에 두고 각각의 상징들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면 우리는 어떤 수직성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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