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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National Book Award Finalist) (Paperback) - 애플TV '파친코' 원작/2017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작
이민진 / Grand Central Pub / 2017년 11월
평점 :
1. 어느 순간인가 대하드라마라는 장르는 인기가 많이 사그러들었습니다. 어릴 적에 보았던 [토지], [조선왕조 500년], [여명의 눈동자]같이 가졌던 이야기의 힘이 느껴지는 드라마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2000년대까지도 한 작품에 100부가 넘는 대하드라마들이 존재했지만, 이야기의 힘이 많이 딸린다는 느낌이 강했고요. 2010년대에 들어오자 아예 사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2. 대하소설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맞서는 사람이든, 흐름에 떠내려가는 사람이든 역사와 시대가 주는 감정들이 그대로 주인공에게 스며들기도 하고, 폭풍처럼 밀려들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선택의 순간이 생겨나고, 주인공이 선택하게 될 미래에 따라 자신의 삶 전체 혹은 후대의 삶까지 송두리째 바뀌게 됩니다.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의 이야기가 됩니다. 아무리 보잘것 없는 존재일지라도 소설속 인물들이 가지는 감정은 절대 사소하지 않게 됩니다. 그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고, 감정이입을 했던 것이죠.
3. 15년전 쯤이었을 겁니다.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의 유명세 때문에 드라마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젊은 세대'였던 한 청년이 도서 게시판에 글을 올렸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너무 지어낸 이야기같은 느낌인데.'
...이었답니다. 주인공들에게 펼쳐진 상황이 너무 급작스럽고, '요즘' 세대들이 느끼기에 개연성이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물론 이야기 자체는 썩 재미있긴 했지만, 일제시대-한국전쟁-민주화와 경제성장기 등의 가파른 세월들을 '몸소' 경험한 세대들과 다소 완만한 세월을 보내 온 세대들과 대하소설(드라마)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4. 제가 소개할 이 책 <파친코>는 오랫만에 '대하소설'이라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과 그 속에서 운명에 맞서기도 하고, 시대와 운명에 끌려다니기도 하면서 개성있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진 그런 이야기지요.
5.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첫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굉장히 역설적인 말입니다. 일제강점기에서 시작되어 1980년대에 이르는 거의 100년을 아우르는 역사는 이 작품과 떼놓을 수 없는 존재이며, 아무리 가볍게 다루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오랜 기간 주인공들은 때로는 씩씩하게, 때로는 고뇌하면서, 때로는 약삭빠르게 살아나갑니다만,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라는 원죄와 같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주인공들이 만일 일본인으로 태어났더라면 이렇게 고민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수십번도 더 들게 됩니다.
6. 이 작품은 '여성'의 눈으로 본 세상과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세상에 '징징'거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박경리님의 [토지]나, 최명희님의 [혼불]같은 작품에서 봤던 운명에 당당히 맞서는 거대한 여성들의 모습이 이 작품에서도 보입니다.
P.S. 번역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나 추가해볼께요. '해녀'라는 단어를 이 작품에서는 'Abalone Diver' 직역하면 '전복 잠수부'라고 번역을 해 놓았더라고요. '바다에서 조개나 해초 등을 채취하는 여성'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본질을 꿰뚫은 꽤 그럴싸한 멋진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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