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땀 - 여섯 살 소년의 인생 스케치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스몰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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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적으로 이 책은 우울합니다. 굉장히 우울합니다. 요즘 기분이 우울하신 분들이라면 별로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  표지의 그림은 진지한 표정으로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는 악동 꼬마의 모습인 줄 알고 읽었습니다만... 그나마 그 그림이 주인공을 작품에서 가장 밝게 표현한 그림입니다. 

 

2. 디트로이트 근교의 의사인 아버지와 가정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데이빗이 일견 평온해보이는 가정 속에서 어떻게 자신 안에 있는 우울과 만나고 그 우울이 얼마나 큰 괴물이 되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8살 아이가 30세로 장성할 때까지 그 괴물이 얼마나 주인공을 괴롭혀왔는지에 대해 그리고 있습니다. 보다보면 이건 정신을 갉아먹는 에일리언이 뇌 속을 헤엄지고 다니는 느낌입니다. 

 

3. 데이빗이라는 아이에게 가족은 정말 지옥으로 표현됩니다. 단순히 물리적 폭력의 강도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까지 주위에 정상인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엄마라는 사람이 이렇게 서늘하게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공포의 근원이 '가족'입니다. 작가는 어떠한 타협이나 동정 없이 그 '가족'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4. 작가가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정신세계를 통해 요리한 '작품'을 독자 앞에 내놓는 요리사라고 한다면, 순정만화 작가는 예쁜 케이크를, 윤태호 작가같은 경우는 제대로 우려낸 국물의 해장국을, 이말년은 먹고 벙찌지만 중독성 있는 병맛 불량식품을 내 놓을 겁니다. 이 작품의 작가 데이빗 스몰은 피 철철 흘러넘치는 제대로 익히지 않은 스테이크를 내놓은 요리사같습니다. 보는 내내 불편하고 아슬아슬한 느낌이 듭니다. 

 

5. 이 책은 기본적으로 '만화'입니다. 그래픽 노블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아니면 그냥 만화라고 이야기해야 할 지 잘은 모르겠지만, 네모난 칸 안에 그림과 말풍선으로 이루어진 만화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순간순간 흐르는 감정의 파도는 네모진 칸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예술을 공부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공부할 만한 책이라고 봐도 좋을 겁니다. 인간의 감정을 얼마나 '초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그렇지만 그 초현실적인 표현이 얼마나 독자를 자극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 책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에일리언을 디자인한 H.R. 기거의 작품을 보는 듯 했어요. 물론 결은 완전 다르지만 기거가 탄생시킨 생명체는 40년이 지나도 에너지를 잃지 않았듯, 이 작품도 그런 힘이 있다고 봅니다. 

 

6. 이 작품이 가장 공포스러운 지점은, 이 모든 이야기가 모두 회고록, Memoir... 실제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라는 점입니다. 다행히 후기를 보니 작가가 지나왔던 수난의 시간들이 사랑으로 치유된 듯 하여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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