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범우사상신서 3
에리히 프롬 지음. 방곤,최혁순 옮김 / 범우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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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에리히 프롬의 사상의 가장 완숙한 경지를 정리한 저서로서, 현대사회와 그 문제점에 대해 탁월한 관점으로 풀어낸 명저이다.

프롬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 생존의 양식을 '소유의 양식'과 '존재의 양식'으로 구별하여 고찰하고,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에 대해 희망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심리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철학, 신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인간을 관찰 연구하여 인간 존재가 가진 비극적 한계를 구명하고자 한다.

프롬에 의하면 '소유양식'은 현대 산업사회, 특히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의 주도적인 존재 양식인데, 이러한 삶의 태도에서 현대사 사회의 모든 해악이 기인된다고 정의한다. 또한 '소유양식'은 주체와 객체를 사물로 환원시켜 버리기 때문에 그 관계는 '살아 있는 관계'가 아니라 '죽은 관계'로 귀착되며, 따라서 사회적으로는 끝없는 생산과 끝없는 소비의 악순환을 초래하는 결과를 보여 준다는 것이 프롬의 관찰이다. 특히 그는 현대의 물질 문명, 소비 지상주의의 와중에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 가고 있는 현대인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프롬에 의하면 현대인은 소비하고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소외된 삶의 형태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프롬은 인류가 생존을 계속하며 평화와 안녕을 되찾는 길은 우리의 인간성 구조를 '소유지향'에서 '존재지향', 즉 '존재양식'으로 전환시키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존재양식'은 어떤 사물이나 추상적인 개념까지도 소유의 대상으로 치환하여 집착하는 태도를 버리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모든 관계를 살아있는 관계로 파악하려는 태도임을 여러 인류의 스승들을 예로 들어 명확히 한다.

마지막으로 프롬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간 변혁의 조건과 새로운 인간의 특성을 언급하며, 새로운 사회의 실현 가능성을 타진하고 몇 가지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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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
김민수 지음 / 생각의나무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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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현전은 비동시적인 상이한 시간들의 혼합이며, 한 시대의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사실 다음에 올 뿐만 아니라 시차로 다가온다.”(p.245)

제5장 「시각 예술의 관점에서 본 李箱 詩의 혁명성」을 소실점으로 해서 벡터적 궤도의 형태를 지닌 이 책이 담아내고 있는 담론의 궤적은 압도적이다. 읽어내기가 수월하지도 않을뿐더러 읽었다고 해도 건질 수 있는 건 - 얄팍한 전공 지식을 뽐내는 피리스틴들을 포함하여 - 비선형의 곡선을 그리는 내 무지의 궤도라고 하면 지나칠까?

저자는 ‘인문학의 위기’ 담론이 팽배한 이 시대에 위기의 정체는 학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하는 사람들의 지적 태도라고 꼬집으면서, 「이미지 시대, 학문의 道」(제1장)를 설명하면서 이 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디지털 풍경에 대한 논의 -「전자적 가상 공간의 문화적 정체성과 디자인의 미래」(2장), 「사이버커뮤니케이션의 삶과 죽음」(3장), 「디지털 주사위 던지기:하이퍼미디어와 시각문화」(4장) -를 전개한다. 이러한 논의는 제5장 「시각 예술의 관점에서 본 李箱 詩의 혁명성」으로 모아지며 이 논문의 탄탄한 백그라운가 되어준다. 마지막 장 「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는 이제까지 논의에 대한 저자의 재발견, 이상 시의 재문맥화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부제-디지털 풍경・마음의 道‘가 말해주듯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풍경을 좀더 침착하게 바라보고 마음을 추스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리 가볍게 읽어 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절대 아니다.

“현대시의 모든 이론은 다만 「詩學」에 붙여진 정교한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 책은 이상 시에 대한 정교한 주석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지나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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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불연속 -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共進化)
브루스 매즐리시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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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저자는 ‘인간과 기계는 함께 진화한다’는 테제를 역사적으로 밝히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이제껏 인류는 세 가지 불연속을 거치면서 그 불연속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작금에 있어서 네 번째 불연속과 마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인간은 자신이 기계보다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라는 믿음이다. 저자는 이러한 믿음, 즉 기계에 대한 궁극적 불신이 인간의 본질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방해인자라고 보고 인간과 기계의 위상에 대해 진화론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이제껏 인류는 세 가지 불연속을 경험하였다. 그 첫 번째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님을 밝힌 것이고,, 두 번째는 찰스 다윈이 인간이 동물의 후손이라는 점을 밝힌 것이며, 세 번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존재를 밝혀 인간이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제 저자는 인류가 경험한 세 가지 불연속을 지나 네 번째 불연속에 직면해있다고 주장하며, 그 불연속을 걷어내고자 진화론적 관점으로 기계와 인간의 본질을 추적하여 인간과 기계 사이의 불연속을 걷어내고자 한다.

저자는 I부에서 17세기의 쟁점이었던 ‘동물-기계’문제로부터 출발하여, 그 후의 광범위한 자동인형-현대 로봇의 전단계-에 관한 논의를 다루고,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인간 진화의 새로운 방향-기계를 향한-을 분석한다. II부에서는 주로 다윈을 효시로 한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를 검토하면서 프로이트와 파브로프를 통해 인간 본성이 가진 두 부분의 접점, 즉 동물과 기계가 만나는 곳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한다. III부에서는 이 시대까지 있어온 동물의 ‘기계화’를 위한 인간 노력의 절정인 ‘유전자 혁명’그리고 컴퓨터와 뇌과학, 특히 인공지능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해간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이제까지의 논의를 평가하면서 기계가 점증하는 추세에서 진화- 넓은 의미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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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11
J.G. 헤르더 지음, 강성호 옮김 / 책세상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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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헤르더가 기술하고 있는 것은 단순하다. 계몽의 중심이 되는 이성은 역사의 진보를 보장해주는 것이고, 자연법칙은 이러한 이성의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귀결될 것이다. 신의 대리인인 인간만이 이러한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며, 사용하게 될 것이며, 완벽한 인간성을 실현할 것이다. 헤르더가 기술하고 있는 것은 명쾌하다. 그러나 그것은 관념론에 지나지않는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는 점도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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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죽음 1
진중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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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에 우리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

이 대전제 아래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서양미술에 나타난 죽음의 미학을 밝혀보겠다는 필자의 기획은 자못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가 죽음에 관한 역사적 고찰을 위해 세운 틀을 원용하여, 서양 미술사에 나타난 죽음을 역사적이 아닌 미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필자가 원용한 틀은 1. 우리의 죽음(중세 초기에서 중세 전성기), 2. 나의 죽음(중세 정성기에서 르네상스), 3. 멀고도 가까운 죽음(르네상스에서 바로크), 4. 너의 죽음(낭만주의 시대), 5. 반대물로 전화한 죽음(현대)의 다섯 가지로 분류된 것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머리말에서 독자로 하여금 유럽의 역사 속에서 죽음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첫 번째 목적)과 도상적 지표에 대한 초보적 이해(두 번째 목적), 죽음의 미학적 성취(세 번째 목적)을 의도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는 동안 필자가 의도했던 세 가지 목적 중 두 가지는 어느 정도 실현된 듯 보이나 마지막 목적, 즉 독자로 하여금 ‘죽음의 미학적 성취’를 이루게 하겠다는 목적에는 다다르지 못한 것 같다.

혹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미학 오딧세이> 1,2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도 반복되는 그의 서술방식에 식상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그의 서술방식은 키치적 스타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또한 도상학 혹은 도상해석학에 관한 입문서를 한 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아니면 그에 준하는 교양서) 그의 해석도 그저 그런 수준이라는 것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그가 의도했던 마지막 목적(이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인데, 밝혀 보겠다던 죽음의 美는 그의 글쓰기에선 실종된 듯 보이고, 초보적 수준의 도상해석학만이 누수된 미학적 분석의 여백을 땜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칭찬할 만한 것이다. 그가 의도했던 두 가지 목적은 충분히 실현될 수 있을 만큼 재기발랄하게 꾸며져 있으며, 도록을 수집하기 위해 발품을 판 그의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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