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셋째 밤』
✍🏻 저자 : 일월명, 클레이븐, 배예람, 김아직, 차삼동, 영선, 현이랑, 이상준, 창궁 (지은이)
🏢 출판사 : 황금가지

🎯공포는 낯선 존재가 문밖에서 기다리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따라가다 보니 분노해서 문을 연 사람, 자신을 피해자라 믿는 악귀, 효도라는 말에 붙잡힌 딸, 방법이 없다며 죽음 쪽으로 밀려가는 사람들. 시대도 공간도 전혀 다른데 이상하게 한곳에서 만난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보다, 내가 믿고 있던 판단이 누구에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먼저 보게 된다.

🔖 “꼬우면 와서 죽이라고!” 처음에는 밤마다 욕설을 퍼붓는 빨간 코트의 여자가 공포의 중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이 결국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순간, 앞의 열흘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잠을 빼앗고 화를 쌓고 모욕해서 스스로 안전한 곳을 벗어나게 만드는 것. 강제로 끌어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장도리보다 그 과정이 더 섬뜩했다. 나라면 끝까지 문을 닫고 있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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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악귀다, 홍안락!” 이 한마디가 나오자 앞에서 보았던 기괴한 형상들이 거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홍안락은 계속 자신을 억울한 선비라고 여기고, 잘못되는 일마다 어머니와 형을 탓한다. 기억은 사라졌는데 오만과 피해의식은 그대로다. 더 무서운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가 쓴 벽사문이 결국 자신을 겨눈다는 설정도 잔인할 만큼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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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 마세요. 아버지. 딱 아버지가 절 대한 만큼만 해드릴게요.” 알고 있던 「심청전」의 문법이 여기서 완전히 뒤집힌다. 심청을 붙잡고 있던 것은 굴 껍데기만이 아니라 효도와 죄책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착취였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물에 뛰어드는 딸 대신, 자신을 보지 않았던 아버지의 눈을 없애고 바다를 선택하는 딸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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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맞아. 언제나 방법이 없었지.” 같은 말이 작품 안에서 몇 번이나 다른 얼굴을 갖는다. 영우에게는 가족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고, 에리카에게는 도망쳐 살아남을 이유이며, 은하연방과 UN에는 거대한 결정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된다. 그런데 마지막의 ‘방법 없음’은 체념과 조금 다르다. 확신이 없으니 살아서 밖으로 나가 확인하겠다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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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의 얼굴은 제각각인데 반복되는 질문이 있다. 누가 내 판단을 만들고 있는가. 현실 범죄에서 고전 설화, 민속 호러와 우주적 재난까지 폭이 넓어 전환이 다소 가파르게 느껴지는 지점도 있다. 몇몇 반전은 구조가 선명한 만큼 결말을 앞서 짐작하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공포를 괴물의 외형에만 맡기지 않는 작품들이 좋았다. 익숙한 가치와 확신을 한 번쯤 의심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꼭 읽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