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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쿠 - 망자의 터
기타자와 도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6년 8월
평점 :
『온고쿠 : 망자의 터』- 죽은 이를 붙잡는 마음이 저주가 되는 순간,그리움과 소원이 뒤엉킨 자리에서 죽음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をんごく
✍🏻 저자 : 기타자와 도 北沢陶
✍🏻 옮긴이 : 전선영
🏢 출판사 : 반타

🎯 죽은 이를 보내지 못하는 마음과 죽은 이가 떠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욕망은 닮은 듯 전혀 다르다. 기타자와 도가 데뷔작에서 꺼낸 공포는 귀신 자체보다 그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에 가깝다. 간토 대지진 이후의 오사카, 상업 가문의 오래된 욕망까지 겹쳐지자 한 사람의 그리움은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로 불어난다.

⛩️무녀 주변에 몰려든 망자들이 “나도 말하고 싶어” 하며 부러워한다는 대목부터 죽음의 풍경이 이상하게 바뀐다. 처음에는 소이치로가 시즈코를 불러내려는 장면이 무서울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걸린 것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죽은 자들이었다. 말하고 싶지만 들을 사람이 없는 존재들. 강령 의식은 산 자의 미련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죽은 자에게도 아직 끝내지 못한 말이 있다는 상상을 끌어낸다.

⛩️ 얼굴 없는 에리마키는 처음 등장할 때만 보면 가장 위험한 괴이에 가깝다. 그런데 그가 먹는 것은 “죽었는데도 자기가 살아 있다고 믿는” 망자들이다. 먹힌다는 말과 구원이라는 말이 한자리에 놓이는 순간부터 선악의 위치가 흐려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으려는 인간이 망자를 가두고, 망자를 먹는 괴이가 오히려 그들을 떠나게 한다. 소이치로가 에리마키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는 과정도 흥미롭다. 이 소설에서 무서운 존재가 누구인지 쉽게 정해두면 자꾸 판단이 뒤집힌다.

⛩️ 장지문 너머에서 “소이치로 씨”라고 부르는 목소리는 살아 있을 때의 시즈코와 다르지 않다. 하녀는 귀신이라고 말하지만 소이치로에게 목소리의 기억은 그 판단보다 빠르다. 문을 열면 안 된다는 사실과 열고 싶다는 욕망이 한 장의 문을 사이에 두고 맞선다. 나는 여기서 무엇이 진짜 시즈코인가보다, 사랑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완벽히 되돌아온다면 과연 의심할 수 있을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움직였다. 그리움은 때로 눈앞의 기괴함조차 정상으로 보이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 사북을 떼어 망자의 소원을 풀어줘야 할 부채에 오히려 사북을 남겨둔다. 그러면 소원은 끝나지 않고 망자도 떠나지 못한다. 후루세 가문은 그 희생 위에서 장사 번창을 빌어왔다. 어린 소이치로가 복을 달라고 악을 쓰는 아버지를 보며 ‘귀신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은 그래서 섬뜩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탐욕과 죽은 자의 원망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대대로 이어진 소원이 축복이 아니라 빚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이 작품의 저주는 꽤 인간적인 얼굴을 갖는다.
📌 《온고쿠 : 망자의 터》에서 가장 기묘했던 것은 죽음보다 소원이다. 한 번 더 만나고 싶다는 소이치로의 바람도, 장사가 번창하기를 외친 후루세 가문의 욕망도 처음부터 악의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런데 끝나야 할 소원을 끝내지 않는 순간 사랑과 기원이 누군가를 붙드는 족쇄로 변했다. 부채, 백분 향, 목소리, 얼굴 없는 에리마키를 서로 다른 공포로 엮는 방식은 선명하다. 귀신이 무서운 독자보다 ‘보내지 못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가 꼭 읽어주길 바란다. 나는 마지막까지 소이치로가 아내를 불러낸 것인지, 자신의 미련을 불러낸 것인지 그 경계를 쉽게 나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