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건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 범죄 실화, 살인자의 얼굴을 읽는 법
박진규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9월
평점 :
『사건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평범한 얼굴과 일상의 틈에서 시작되는 범죄를 따라가다
✍🏻 저자 : 박진규
🏢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사

🎯 범죄 실화라는 말을 보면 먼저 잔혹한 사건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범인의 심리를 떠올리게 된다. 수사 전문지 기자가 직접 취재한 이야기라니 뉴스에서 몇 줄로 지나갔던 사건의 전말이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훨씬 구체적으로 담겨 있을 것 같았다.실제 범죄를 다룬 책일수록 사건의 충격적인 부분이 앞세워지면 읽는 동안 사람보다 범죄 자체에 시선이 붙잡힐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은 이상하게 다른 쪽을 생각하게 했다. 내가 멀리 떨어진 일이라고 여겨온 사건들이 정말 그렇게 먼 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일까. 수많은 사건을 직접 취재해온 사람은 그 거리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지 궁금했다.

🔖 실종된 남편의 돈을 인출한 화려한 차림의 여성을 좇는 장면부터 판단이 흔들린다. 파란 우산과 노란 모자, 미니스커트는 한 사람을 특정할 특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추적을 피하려 만든 위장이다. 살해와 사체 훼손의 이유조차 하나로 묶이지 않는다. 사건을 몇 개의 단서만 보고 치정이나 충동 같은 익숙한 말로 정리하려 했던 내 쪽의 성급함이 보였다. 범죄의 얼굴은 처음 보이는 모습보다 여러 겹이었다.
📓───────── 📓

🔖 박수무당과 킬러 사건에서도 기괴한 케첩과 마요네즈보다 범인을 향한 길을 연 것은 평범한 편지와 혈흔이었다. 책은 계속 눈길을 끄는 것과 진실을 가리키는 것을 갈라놓는다. 에필로그에서 교도소의 사람들이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오히려 인상이 좋은 경우도 많았다는 이야기를 읽자 제목이 다시 걸렸다. 사람의 진짜 얼굴을 읽는다는 건 인상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아니라, 남겨진 흔적을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하나씩 따라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 📓

🔖 모텔 안 지름 1mm의 렌즈를 읽을 때는 범죄와 일상의 경계가 갑자기 얇아진다. 수사관조차 숙소에 들어가 셋톱박스를 수건으로 덮었다는 대목이 그렇다. 안전을 위해 연결된 기술이 누군가에게는 훔쳐보는 통로가 되고, 타인의 사생활이 유료 화면으로 바뀐다. 범죄자는 특별한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보다 평범한 공간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가 더 불편해졌다.
📓───────── 📓

🔖 BJ의 초대방 사건에서는 범행의 잔혹함만큼 수사의 방식에 자꾸 눈이 갔다. 피해자의 상태를 본 형사들도 흔들리지만 범인을 잡는 일은 직감이나 분노로 끝나지 않는다. CCTV 속 캐리어, 공범들의 엇갈린 진술과 그 사이의 모순을 하나씩 맞춰간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절차가 기본”이라는 문장이 그래서 건조하게 읽히지 않았다.
📓───────── 📓
📌 책을 덮고 나서도 범죄자의 잔혹함보다 녹음기를 켜고 “처음 이 사건의 수사를 시작했을 때……”라는 형사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다만 여러 강력사건이 연이어 등장하다 보니 어떤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삶보다 수사 과정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취재 리포트와 작가의 시선 사이를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도 범죄를 자극적으로 소비하기보다 그것을 추적하는 사람과 우리 일상의 변화를 함께 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읽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