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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지브리 - 지브리를 통해 만나는 불교의 지혜
스즈키 도시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6년 6월
평점 :
『선과 지브리 - 지브리를 통해 만나는 불교의 지혜』- 지브리를 따라가다, 선 앞에 앉았다
禅とジブリ
✍🏻 저자 : 스즈키 도시오 (鈴木敏夫)
✍🏻 옮긴이 : 민경욱
🏢 출판사 : 대원씨아이

🎯 지브리의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도 그 안의 여백을 ‘선’이라는 말과 나란히 놓아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제목부터 조금 낯설었다. 스즈키 도시오가 승려들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모노노케 히메》나 《반딧불이의 묘》에서 내가 지나친 장면도 다시 만나게 될까 싶었다. 불교에 관한 책이라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도 있었다. 그런데 목차에는 ‘모른다’, ‘도락’, ‘죽음’, ‘지금’, ‘프로와 아마추어’ 같은 말들이 뒤섞여 있었다. 선을 배우는 책이라기보다 사람과 일, 영화를 두고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처럼 보였다.

🔖 “상대가 이해해야 ‘전해진’ 겁니다.” 스즈키 도시오의 이 말에서 연락했고, 보고했고, 분명 말했으니 내 몫은 끝났다고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말은 내가 입 밖으로 꺼냈을 때 끝나는 게 아니었다. 상대에게 가 닿아야 비로소 전해진다. 영화의 캐치카피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말 하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의외로 묵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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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락’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원래는 불도를 걷는 일을 즐긴다는 뜻이었다니 내가 알고 있던 말과 온도가 달랐다. 스즈키는 “온·오프를 만들지 마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일, 여기서부터는 사생활이라고 자꾸 나누면 오히려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다 나잖아요!”라는 말을 읽고 조금 멈췄다. 역할마다 다른 얼굴을 꺼내느라 정작 내가 지치는 순간은 없었는지. 도락은 일을 좋아하라는 주문보다 삶을 잘게 쪼개지 않는 태도에 가까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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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선 이야기는 예상과 꽤 달랐다. 분노와 증오, 경쟁심을 무조건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투구꽃이 소량이면 약이 되고 많으면 독이 되듯 그런 감정도 적당히 들어가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대화가 이어진다. 문제는 양이었다. “분노와 증오는 스스로 조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좌선은 비우기보다 내 안을 살피는 일처럼 다가왔다. 나는 불편한 감정을 너무 빨리 밀어내려고 했던 건 아닐까. 없애는 것과 조절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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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자키 하야오가 노나카의 얼굴을 수십 장이나 그리고도 마지막에는 스즈키의 단순한 그림이 제일 좋다고 말한 일화가 재미있다. 정확하게 그리는 능력과 사람을 웃게 하는 그림은 꼭 같은 곳에 있지 않았다. 이어지는 “잘 쓰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래서 더 묘했다. 프로가 된다는 건 능숙해지는 일이지만, 그 능숙함에 자아가 달라붙는 순간 무언가 굳어버릴 수도 있다. 지브리의 그림을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내 손에 들어간 힘을 보게 된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이렇게까지 잘하려고 애쓰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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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즈키 도시오가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곁에서 영화를 만들며 얻은 것은 거창한 답이라기보다 사람과 일과 지금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브리를 좋아하지만 작품 해설만을 기대하지 않는 독자, 요즘 삶을 너무 단단히 붙잡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독자라면 읽어주길 바란다. 덮고 나니 답 하나보다 질문 몇 개가 남았다. 지금 나는 어디를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