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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닻 / 2026년 6월
평점 :
『흔들릴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서 버티는 법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자기 몫의 삶을 다시 드는 사람에 관하여
🔺 저자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Fyodor Dostoevsky
🔺 출판사 : 닻

🎯 흔들릴 때마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말이 조금 익숙했고, 고통을 견디라는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요즘은 단단해지라는 말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이미 버티고 있는데 더 버티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아서 그런데 첫 장에 등장한 사형대 위의 5분 앞에서 나는 잠시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너무 쉽게 흘려보냈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죽음을 바로 앞에 둔 사람이 마지막 시간을 나누는 방식이, 이상하리만큼 구체적이다.
🔖 도스토옙스키에게 남은 시간은 단 5분이었다. 동료와 작별하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마지막 1분에는 세상의 풍경을 눈에 담으려 했다는 대목에서 시간의 밀도가 갑자기 달라졌다. 내가 무심히 흘려보낸 몇 분과 그의 몇 분은 같은 길이가 아니었다. 살아 있다는 감각은 죽음이 멀리 있을 때보다, 발끝에 닿았을 때 더 선명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지금 5분만 남는다면 무엇을 바라보게 될까?

🔖 이 책은 내 안의 추악함을 없애라고 말하지 않는다. 질투와 분노, 욕망과 비겁함을 인정해야 그것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의 도박 중독을 숨기지 않고 『도박사』의 인물 안으로 밀어 넣었던 것처럼.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낸다고 곧 나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모르는 척하는 동안 그것은 더 깊은 곳에서 자란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들을 너무 빨리 덮어두지 않았나.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마음속 거울 앞에서 서성였다.

🔖 “그 사람 때문에”, “회사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문장은 편하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책임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자물쇠가 안쪽에 달린 감옥이라는 비유를 읽으며 조금 뜨끔했다. 내가 만든 결과라고 말하는 순간에는 변명할 곳이 사라진다. 대신 아주 작게나마 다음 선택이 생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더 많은 권리를 얻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무게를 견디는 일이라는 문장도 여기에서 이어졌다. 무게는 나를 누르지만, 그 무게를 내 어깨에 올릴 때 삶의 방향도 다시 내 쪽으로 돌아온다.

🔖 버틴다는 말에는 이를 악무는 얼굴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곁에 있는 일도 버팀의 한 형태였다. 책 한 권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매일 책을 펼치는 행위가 살린다는 문장도 비슷했다. 결국 삶은 한 번의 결심보다 반복되는 사소한 약속 쪽에 더 가깝다.

📌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과 생애를 정교하게 해설하는 평론서는 아니다. 그의 삶과 문장에서 몇 개의 질문을 꺼내 오늘의 언어로 다시 건네는 책에 가깝다. 그래서 고전의 세부 맥락이나 작품별 사상을 깊게 따라가고 싶은 독자에게는 해석이 다소 단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값싼 낙관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잘될 거라는 말보다, 오늘 무엇을 붙들고 버틸 것인지 묻는다. 사형대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회복한 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었고, 마지막에 남은 것은 누군가의 곁과 내일 아침 다시 눈을 뜨겠다는 작은 약속이었다.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느라 더 지친 독자, 타인의 시선과 변명 속에서 자기 삶의 주어를 잃어버린 이른 독자가 꼭 읽어주길 바란다. 책을 덮은 뒤 거창한 답은 없다. 대신 내일 아침 눈을 뜨겠다는 약속 하나쯤은, 나도 조용히 해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