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중석의 한국사 강의록
이중석 지음 / 다반 / 2026년 6월
평점 :
『이중석의 한국사 강의록』- 정답보다 먼저 남은 질문들
🔺 저자: 이중석
🔺 출판사: 다반

🎯 연표가 있고, 사건이 정리되어 있고, 중요한 단어를 외우는 방식. 저자는 한국사를 설명하려고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역사 앞에서 자꾸 생기는 미안함과 질문을 붙잡으려고 한 것 같았다. 배고픔, 가난, 차별, 죽음. 이런 단어들이 먼저 들어왔다.
🔖 고구려의 진대법을 복지의 시작으로 2천 년 전에도 국가는 배고픈 사람을 그냥 두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가난을 너무 쉽게 개인의 게으름으로 돌리는 건 아닌가. “우리는 사람이니까.” 이 문장은 설명보다 낮게 들어왔다. 역사 수업에서 배운 제도가 갑자기 오늘의 노동자, 오늘의 밥값, 오늘의 시선과 이어졌다.

🔖 신라 골품제를 이야기하다가 사건과 드라마 대사로 건너가는 방식은 조금 거칠지만 이상하게 설득된다. 태어나 보니 3루에 있었던 사람이 스스로 3루타를 친 줄 안다는 말. 골품은 교과서 안에서 사라졌지만, 사람을 대하는 마음속 계급은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성골도 진골도 없고, 성심과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회. 그 문장이 쉽지 않아서 더 오래 남았다.

🔖 조선의 외교를 다룬 부분에서는 저자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로워진다. 죽은 명나라를 붙잡고 조선의 백성을 보지 못했던 정치, 명분 속에 갇혀 현실을 놓친 사람들. 읽다 보면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말싸움처럼 들린다. 세계는 변하는데 오래된 지식으로 현재를 재단하는 태도.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에 세계가 부러진다는 문장이 괜히 웃기면서도 불편했다.

🔖 투쟁과 인물의 장에서는 책의 중심이 더 분명해진다. 홍경래, 동학 농민군, 의열단, 노동자, 민주화 운동 속의 사람들. 그들은 거창한 이름으로만 남아 있지 않았다. 배고팠고, 밀려났고,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던 사람들로 읽혔다. 역사를 왜 배우는가. 이 질문을 누가 나에게 던진다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답하게 될 것 같다.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 『이중석의 한국사 강의록』은 한국사를 잘 정리한 책이라기보다 한국사를 다시 묻게 만드는 책에 가깝다. 27년 동안 강의해 온 저자는 사건을 단순히 설명하지 않는다. 고구려의 진대법에서 오늘의 복지를 묻고, 신라의 골품제에서 지금의 계층 감각을 본다. 조선의 외교에서는 명분에 갇힌 정치의 위험을 꺼내고, 의열단과 민주화 운동에서는 사람이 자기 시대를 어떻게 통과했는지를 바라본다.이 책이 애초에 중립적인 사건 요약보다 “역사가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에 가까운 책이다.시험이 끝나면 한국사를 덮어버렸던 사람, 역사 속 인물들을 이름으로만 기억했던 사람,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누구의 굶주림과 싸움과 죽음 위에 놓였는지 다시 묻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정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