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下동문
한상경 지음, 김보근 그림 / 메이킹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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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동문』


🔺 저자 : 한상경

🔺그림 :  김보근

🔺 출판사 : 메이킹북스



🎯 너무 많은 것을 단숨에 말하려는 시보다, 차라리 한순간을 오래 붙들고 있는 시에 더 마음이 가기 때문이다. 『이하동문』은 처음부터 그런 결로 다가온다. 제목부터 쉽지 않았는데, 읽고 나니 오히려 아주 오래 남았다. 모두의 삶은 각기 다른 문장과 발자국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본질적인 여정은 결국 닮아 있다는 뜻.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와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어도, 각자의 흔들림이 결국 같은 방향의 외로움과 같은 방향의 기다림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다.



🔖 이 시집을 가장 또렷하게 붙들고 있는 말은 역시 ‘이하동문’이라는 제목 자체였다. 우리는 보통 반복되는 문장을 줄일 때 쓰는 말로 이 표현을 기억하는데, 저자는 그것을 삶의 본질로 옮겨 놓는다. 각자 밟아온 길과 마지막에 쓰일 글자들은 모두 다르지만, 그 끝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여정은 결국 같다는 해석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시선처럼 느껴졌다.



🔖 이 책의 시들은 대체로 큰 목소리로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움직이는 방식을 오래 바라본다. 「흘러가는 대로」에서는 오는 순간을 맞이하고 가는 순간을 떠나보내는 태도가 담백하게 놓이는데, 그 문장들 사이에는 체념과 수용이 동시에 배어 있다. 무엇인가를 붙잡으려 하기보다 결국은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마음의 자세가 이 시집의 중요한 결로 보였다. 반대로 「잠기다」는 아주 작은 놀이 같은 장면에서 시작해 마음과 밤이 함께 잠겨 가는 감각으로 번져 간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일상이라는 표면 아래 감정이 얼마나 쉽게 가라앉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가라앉음이 얼마나 조용해서 더 오래 남는지를 떠올렸다.



🔖 ‘문답과 무답’, ‘만남, 헤어짐, 재회’, 그리고 ‘그리고’로 이어지는 구성은 한 권의 시집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 기록처럼 읽혔다. 묻지만 답을 얻지 못하는 시간,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보내는 시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남아 삶을 계속 살아가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히 이 시집은 관계를 거창하게 해석하지 않는다. 가랑비, 인사, 방울, 곁 같은 제목에서 보이듯 아주 작은 접점들로 감정을 불러낸다. 



🔖 종이컵, 초록 뚜껑, 가로등, 옷장 정리, 복숭아 같은 일상의 사물은 이 시집 안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을 받아 적는 매개가 된다. 그래서 문장들은 화려하지 않은데도 오래 남는다. 김보근의 그림이 더해졌다는 점도 이 책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 시집 전체가 어떤 결론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던 감정의 가장자리를 살짝 보여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 『이하동문』은 선명한 해답을 주는 시집은 아니었다. 대신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슬픔으로 몰아가지 않고, 그 안에서 각자의 순간을 정답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시집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았다.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 지나갔지만 완전히 지나가지는 않은 시간, 가볍게 보였지만 실은 꽤 무거웠던 기억들을 억지로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곁에 두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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