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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을 쓰다 ㅣ 한국 문학 필사 5
채만식 지음 / 블랙에디션 / 2026년 3월
평점 :
한국 문학 필사 05, 『 채만식을 쓰다 』 - 탁류 속을 흐르는 풍자와 해학
🔺 저자: 채만식
🔺 출판사: 블랙에디션

🎯 한국 근대문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가, 풍자와 해학으로 시대를 베어낸 사람, 그리고 쉽게 말하면 날카로운 문장을 쓰는 작가 정도로만 막연히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채만식을 읽게 하는 책이 아니라, 그의 문장을 직접 써 보게 만드는 방식으로 다가왔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를 것 같았다. 웃기면서도 서늘하고, 해학적이면서도 끝내 씁쓸하다는 채만식의 문장이 과연 손으로 옮겨 적을 때는 어떤 감정으로 남을지,
🔖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식민지 현실과 가세의 기울어짐을 일찍 체감했고, 와세다 유학과 기자 생활, 동반자 작가로서의 모색, 그리고 친일과 해방 이후의 자책까지 그의 삶은 한 개인의 이력이라기보다 시대의 모순을 통과한 기록처럼 읽혔다. 특히 스스로를 정당화하기보다 끝내 부끄러움을 끌어안고 ‘민족의 죄인’을 썼다는 대목은, 채만식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풍자 작가를 넘어 왜 지금까지 불편하게 남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 그는 언어를 매끈하게 다듬기보다 현실의 거친 결을 그대로 살려냈고, 전국의 사투리와 계층의 말투를 작품 속에 밀어 넣으며 인물의 삶 자체를 말하게 했다. 특히 대화소설 형식에 대한 설명은 인상적이었다. 지문을 줄이고 대화만으로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설명을 듣는 대신 현장 한복판에 서 있게 만든다. 그래서 채만식의 문장은 단순히 재치 있는 풍자가 아니라, 말과 말 사이의 간격으로 사회를 폭로하는 장치처럼 다가왔다.


🔖 「레디메이드 인생」에서는 고등교육을 받고도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인텔리의 허무가, 「치숙」에서는 시대를 읽지 못한 채 자기 논리 속에 갇힌 인물의 위선이, 「미스터 방」에서는 해방조차 생계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남긴다. 시대가 비뚤어졌을 때 사람은 얼마나 쉽게 비루해지고, 또 얼마나 교묘하게 자기 삶을 합리화하는가. 나는 이 장면들을 읽으며 웃다가도 자꾸만 표정이 굳었다. 채만식의 해학은 사람을 편하게 웃게 하지 않고, 웃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을 계속 찌른다.


🔖 빠르게 읽을 때는 장면과 줄거리만 남지만, 직접 옮겨 적기 시작하면 말끝의 억양과 반복, 사투리의 질감, 인물 사이의 힘의 방향이 천천히 드러난다. 손으로 쓰는 동안 문장은 눈으로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오래 몸에 남았고 문장을 쓰다 보면, 왜 어떤 웃음이 끝내 슬픔으로 남는지 문득 알게 되지 않을까.
📌 채만식은 더 이상 교과서 속 작가 이름으로 남지 않는다. 시대를 비웃은 사람이라기보다, 시대의 비루함과 자신의 균열까지 함께 끌어안고 문장을 밀어붙인 사람으로 남는다. 그래서 그의 문장을 따라 쓰는 일은 단순한 필사 습관이 아니라, 편하게 읽고 지나칠 수 없는 한국 근대문학의 상처를 천천히 만져 보는 일에 가깝다. 웃음 뒤에 숨어 있던 자조와 분노, 그리고 끝내 무너뜨리지 못한 현실의 무게가 손끝에서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