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에 반대한다 -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우중몽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보에 반대한다 』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  

Against Progress 

🔺 저자: 슬라보예 지젝  Slavoj Žižek  

🔺 출판사 : 우중몽  

🔺 엮은이  : 강우성  


🎯 나는 ‘진보’라는 단어를 의심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은 현대 사회의 상식처럼 느껴졌고, 정치나 기술, 문화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도 자연스럽게 그 단어를 사용해 왔다. 그래서 『진보에 반대한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약간의 당혹감이 먼저 들었다. 과연 어떤 의미에서 진보를 반대한다는 것일까. 단순한 반동적 주장일까, 아니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믿음의 구조를 뒤집는 이야기일까. 


🔖도둑맞은 ‘진보’라는 개념  


이 책은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사용하는 ‘진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의심한다. 지젝에 따르면 오늘날 진보라는 개념은 특정한 정치 진영의 언어가 아니라 여러 세력이 동시에 사용하는 모호한 기호가 되었다. 기술 낙관주의자도, 신자유주의자도, 심지어 포퓰리스트 정치인도 모두 자신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상충하는 주장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현재의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질문하지 않는 태도다. 


🔖 진보 담론이 숨기는 희생의 구조  


지젝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으깨진 새들’이라는 은유다. 역사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서사는 언제나 어떤 희생을 동반하지만, 그 희생은 종종 진보의 이름 아래 보이지 않게 처리된다.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단계론이든 자유주의의 역사 낙관주의든, 대부분의 진보 서사는 결국 단선적 시간 속에서 현재의 고통을 미래의 발전으로 정당화한다. 하지만 지젝은 이런 설명 방식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실제 역사 속에는 수많은 우발적 사건과 실패한 가능성들이 존재하며, 그 잔해들은 단순히 ‘과도기적 희생’으로 설명될 수 없다. 



🔖 파국과 반복의 역사 인식 

 

지젝은 역사가 단선적으로 발전한다는 생각 대신, 우리가 마치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걷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겉보기에는 계속 앞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출발점으로 되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정치적 극단화, 포퓰리즘, 생태 위기 역시 이런 반복의 구조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지젝은 역사를 ‘홀로그램’처럼 사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 절망을 통과한 이후의 사유  


지젝의 글을 읽다 보면 때로는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는 세계가 이미 파국을 향해 가고 있을 가능성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주장 핵심은 단순한 염세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거짓 희망이야말로 현실을 왜곡한다고 말한다. 분명한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행동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정치적 용기라는 것이다. 


💬 지젝의 글은 언제나 그렇듯 거칠고 복잡하며 때로는 과장된 비유와 급격한 논리 도약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던지는 질문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진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이름 아래 어떤 희생이 가려져 있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정치적 대안 역시 비교적 모호하게 남는다. 독자가 스스로 사유를 확장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가능성도 있다.  


📌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시대에, 질문 자체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사유의 출발점을 찾고 싶은 이른 독자가 꼭 읽어주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