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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달 ㅣ 알발리 시선집 2
이지선 지음 / 알발리 / 2025년 6월
평점 :
『흰 달』 어둠을 통과해 다시 떠오르는 내면의 빛
🔺 저자 : 이지선
🔺 출판사 : 알발리

🎯 밝은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이 데려갈 곳은 분명 어둠일 텐데, 묘하게도 그 어둠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껏 외면해 온 기억 하나쯤은 마주해도 괜찮겠다 싶은 마음이 천천히 자라났다. 시인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잊힌 감정과 오래된 그림자를 복원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했다.
🔖 가장 오래된 상처의 자리
초반의 시들은 마치 오래된 방을 천천히 여는 듯한 기분을 준다. ‘14살’, ‘새아빠’, ‘피가 흐르는 밤’ 같은 작품들은 말보다 숨결이 먼저 흔들리는 순간을 기록한다. 어둠의 첫 뿌리를 들여다보는 일은 선명하고도 잔혹하지만, 그 감정의 깊이를 인정하는 순간 묘한 해방감이 스며든다.

🔖 어둠을 응시하는 용기
‘흰 달’의 장면들은 밤의 결을 손끝으로 더듬듯 묘사한다. 사슬의 소리를 견디며 잠든 척 숨죽이는 모습은 누구나 품고 사는 공포의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순간 떠오르는 달의 빛이 어둠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을 품은 채 존재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멈춰 서게 했다.

🔖 관계가 비추는 미세한 빛들
뒤로 갈수록 시인은 사람의 체온을 다시 찾는다. 첫사랑의 계절 여름날의 집 앞의 짧은 풍경, 딸기의 맛처럼 사소한 기억들이 어둠 사이사이에 흩뿌려져 숨구멍이 되어 준다. 완전히 밝지도,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는 그 온도는 인간이 버티는 방식의 또 다른 형태처럼 느껴졌다.

🔖 다시 피어나는 자신에게로
‘우리는 살았고, 살고 있다’, ‘꽃은 필 수 있다’ 같은 작품은 과거의 잔해 위에서도 삶은 끝내 다시 솟아오른다는 사실을 속삭인다. 힘주어 외치지 않아도 되는 회복의 언어가, 오히려 더 깊게 스며드는 순간들이었다.

📝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아주 작은 빛이 깜박이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그림자들이 조금은 모양을 바꾸며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어둠을 지나온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달의 자리, 그 조용한 빛을 이 시집은 끝내 보여 주었다
📌 이 책은 오래된 마음의 문을 천천히 열어 보고 싶은 당신에게 건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