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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ㅣ 원전대로 읽는 세계문학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5년 9월
평점 :
『타임머신』 The Time Machine 계급과 문명의 마지막 미래를 보여주는 시간 여행
🔺 저자 : 허버트 조지 웰스 Herbert George Wells
🔺 옮긴이 : 이정서
🔺 출판사 : 새움

🎯 솔직히 시간여행 이야기는 이미 어릴적 영화와 드라마에서 질리도록 본 소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도 “고전이니까 한 번쯤 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되었다.그런데 첫 장부터 네 번째 차원으로서의 시간을 설명하고, 친구들이 둘러앉아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받아치는 장면을 읽는 순간, 오래된 공상과학이 아니라 지금 내 머릿속을 직접 두드리는 철학 수업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연 미래로 떠난 시간 여행자는 돌아올까,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정말 ‘진보의 초입’일까? 마음 한쪽에 조용히 쌓이기 시작했다.
🔖 시간 여행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들
『타임머신』의 초반부는 거대한 미래 모험이 아니라, 시간의 4차원성을 두고 친구들과 티격태격 토론하는 거실 장면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전제를 슬쩍 비틀어 버리는 철학적 농담에 가깝다. 읽다 보니 나는 그의 실험이 가능한가보다, 그가 본 미래가 어떤가보다 “우리가 믿어온 현실의 틀은 정말 제대로 된 것일까”라는 질문이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 서기 802,701년, 엘로이와 몰록을 마주하다
시간 여행자가 도착한 서기 802,701년의 세계는 처음에는 그저 동화 같은 황금시대처럼 보인다. 햇빛 아래서 장난치는 엘로이들의 연약하고 예쁜 모습, 지상 위에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이 오래된 유토피아 그림엽서처럼 펼쳐지는데, 곧 지하에서 몰록들이 등장하는 순간 이 장면 전체가 싸늘한 풍자화로 뒤집힌다. 엘로이와 몰록의 관계가 당시 영국 산업사회의 계급 구조를 떠올리게 하는 것을 넘어서, 언젠가 우리 문명도 저렇게 뒤틀린 형태로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몸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간다.

🔖 직역으로 되살린 웰스의 숨결과 문장 리듬
이정서 번역가 특유의 “원문 문장 구조를 그대로 살리는 번역” 방식 덕분에, 웰스의 문장이 가진 호흡과 리듬이 꽤 생생하게 느껴진다. 때로는 한국어 문장으로는 조금 길게 느껴질 만큼 숨을 길게 들이마시게 만드는 구문이 나오는데, 그 길이가 오히려 시간 여행자의 숨가쁜 설명이나 불안한 독백과 묘하게 어울린다. “정말 이런 문장으로 쓰여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단어 선택과 시선이 살아 있다.

🔖 19세기 공상과 오늘의 AI 시대가 겹쳐지는 순간
흥미로운 건 이 소설이 19세기 공상과학인데도, 지금 우리가 사는 AI와 우주여행의 시대와 너무 잘 겹쳐 보인다는 점이다. 웰스가 걱정했던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탐욕과 무심함, 그리고 그 끝에서 맞이할지도 모를 문명의 피로와 붕괴였다. 스마트폰과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번역기를 쓰는 오늘의 나에게도 똑같이 유효한 물음처럼 가슴에 남는다.

💬 책을 덮고 나면 미래를 마음껏 상상하게 해준 소설이지만, 시간과 과학, 계급과 진보에 대해 생각하다가도, 결국 나를 붙잡는 것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어떤 마음으로 미래를 맞이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 이 책은 과학기술의 내일보다 인간의 내일이 더 궁금한 당신에게 건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