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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9월
평점 :
『제로섬』Zero-sum
🔺 저자 :조이스 캐롤 오츠 Joyce Carol Oates
🔺 옮긴이 : 이은선
🔺 출판사 :하빌리스

🎯 처음 이 책의 표지를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서늘했다. 제목부터가 냉정했다. ‘제로섬(Zero-sum)’이라니. 게임이론, 심리학 등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개념 :누군가의 이익은 곧 누군가의 손해라는 말. 그 단어 하나에 인간의 관계, 사랑, 폭력, 그리고 존재의 무게까지 함축된 듯했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늘 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탐색해온 작가다. 『카디프, 바이 더 시』, 『블론드』를 읽어봤던 독자라면 알 것이다. 그녀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번 책 역시 그런 불편함의 정점을 찍는다.
🔖 끈적끈적 아저씨
여고생들이 ‘파리끈끈이 덫’을 설치하는 장면은 단순한 범죄 복수극이 아니다. 사회가 외면한 성매매의 현실 속에서, 그들은 정의를 자임하며 스스로 판을 짠다. 하지만 덫에 걸린 이들이 아버지, 삼촌, 사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정의’는 급격히 붕괴된다. 오츠는 여기서 ‘폭력의 순환’을 보여준다. 피해자는 쉽게 가해자가 된다. 사회의 무감각은 결국 개인의 분노를 기형적으로 성장시킨다. “그들이 벌인 일은 정의였을까, 아니면 복수였을까?” 이 질문이 책을 덮고도 오래 남았다.

🔖 자살자
‘해럴드 호프스테더’라는 작가의 이야기는 냉혹하다. 그는 자살조차 문학의 일부로 만들려 한다. ‘완벽한 서사로서의 죽음’을 꿈꾸며 수없이 시도하고, 쓰고, 고쳐 쓴다. 오츠는 이 광기를 차갑게 관찰한다. 예술이 인간성을 삼키는 지점, 현실이 서사에 흡수되는 지점을 서늘하게 그린다.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우리 시대에도 타인의 불행이 콘텐츠가 되는 세상이 아닌가. 누군가의 절망은 클릭 수로 환산되고, 공감은 소비된다. 이 작품은 그런 ‘관심 경제’의 잔혹한 거울이다.

🔖 괴물둥이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이었다. 뒤통수에서 자라난 혹,쌍둥이의 흔적,이 점차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소녀의 이야기. 가족이 그 혹을 ‘딸보다 더 귀하게 대하는’ 순간, 이야기는 공포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존재가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변하는 과정이 너무 생생했다. 오츠의 문장은 살갗을 긁는 듯 날카롭다.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가장 괴기스럽고도 섬세하게 드러낸다.

💬 『제로섬』은 인간의 내면을 해부하듯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불편하고, 때로는 읽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나’를 다시 보게 됩니다. 관계의 무게, 존재의 의미, 그리고 사랑의 불완전함을. 조이스 캐럴 오츠는 우리 모두의 심연을 비추는 거울을 들이댑니다.
📌 이 책은 ‘무심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느끼는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