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손으로 읽고 마음에 쓰는 붓다의 말 - 한 글자 한 글자 적으며 내 마음을 벼리는 시간
고운기 지음 / 맘에드림 / 2025년 9월
평점 :
『 손으로 읽고 마음에 쓰는 붓다의 말』 한 글자씩 마음을 벼리는 시간
🔺 저자 : 고운기
🔺 출판사 : 맘에드림

📌 읽기 전부터 이 책은 내 손의 속도를 마음의 속도로 낮춰 줄 것 같았다. 『손으로 읽고 마음에 쓰는 붓다의 말』이라는 제목을 펼치는 순간, 나는 기다림과 다짐 사이에 서 있었다. 시인이자 학자인 고운기라는 이름은 오래된 설화와 현대의 언어를 가로지르는 다리처럼 신뢰를 주었다. 오늘만큼은 빠르게 소비하는 독서가 아니라, 느리게 베끼고 천천히 스며드는 독서를 해보고 싶었다.
🔖아함에서 시작하는 나의 공부, 첫 줄의 떨림
책은 아함의 숨결로 나를 불러 세웠다. 전하여 온 뜻이라는 이름처럼, 그 구절들은 먼 시대를 지나 지금의 나에게 안전하게 도착해 있었다. 필사의 첫 줄을 옮길 때 손이 약간 떨린 것은, 문장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했던 오래된 약속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단단히 세우라는 말 앞에서 나는 남에게 휘둘리던 마음을 조용히 거두었다. 한 줄씩 쓰며, 내 마음의 쟁기를 깊게 박아 넣는 기분이었다.


🔖 화엄의 연꽃, 진흙을 딛고 피어오르다
화엄의 장은 마음을 그림처럼 펼쳐 보인다. 진흙탕에 물들지 않는 연꽃의 비유를 따라 쓰다 보면, 세속을 외면하지 않되 그에 잠기지도 않는 태도가 무엇인지 감이 온다. 하루의 피로와 잔상들이 기어이 마음을 흐려놓을 때, 나는 한 줄을 더 베껴 쓰며 스스로에게 안부를 묻는다. 오늘의 진흙은 무엇이었는가, 그 가운데서 무엇이 피어났는가. 흙탕물은 결코 사라지지 않지만, 손끝이 문장을 따라갈수록 물 위의 꽃잎 같은 여백이 생긴다.


🔖 법구의 마음, 말과 행의 균형을 배우다
법구의 구절을 필사할 때 가장 자주 멈춰 선 낱말은 마음이었다. 마음에서 비롯하고 마음이 으뜸이라는 선언은 당연한 듯 보이지만, 막상 하루를 돌아보면 마음 없는 말과 마음 없이 한 행동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구절을 옮길 때마다 오늘 내가 뱉은 말 한두 개를 떠올렸다가 조용히 내려놓곤 했다. 수레가 발자취를 따라가듯 결과가 마음을 따라온다는 문장은 책임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 능엄의 물음, 깨달음의 근본을 묻다
능엄의 장은 질문으로 나를 붙든다. 무엇이 근본이며 무엇이 번뇌인가, 모래를 삶아 밥을 지을 수 없다는 비유는 목표와 방법이 어긋난 노력을 일깨운다. 나는 그 문장을 천천히 베끼며, 지난 시간의 헛수고들을 떠올렸다. 애써 쌓았지만 금세 무너졌던 성취, 남의 시선을 의식해 내 마음을 놓쳤던 선택들. 그때 알았다. 근본을 바로 세운다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정확히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필사는 공부이면서 동시에 점검표가 된다.


💬 이 책을 읽고 쓴 밤, 책상 위에는 잔잔한 물결이 남았다. 한 줄을 쓰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마음의 먼지가 가라앉았다. 언젠가 더 큰 강을 건너야 할 날이 오겠지만, 오늘 나는 작은 개울을 안전하게 건넜다. 당신도 각자의 강가에서 펜을 들어 보길 바란다. 더럽혀져도 좋으니, 펼쳐 쓰며 건너가자. 언젠가 뒤돌아보면 우리가 남긴 것은 얼룩이 아니라 길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한 줄을 오늘의 첫 줄로 삼고 싶을까?